‘희귀질환 치료제 개발과 신치료제 접근성’ 국회토론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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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열린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과 신치료제 접근성' 국회토론회 현장​./사진=이해림 기자
희귀질환은 ‘약’과의 싸움이다. 환자가 10만 명 중 1명꼴로 드문데, 병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8000여 종이고 의학 기술이 발달하며 앞으로 가짓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 환자는 5%에 불과하다. 약이 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자 수가 적어 수익성이 적다 보니 국내 제약사가 수입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이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29일 개최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과 신치료제 접근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회토론회에서는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과 치료제 개발의 최신 지견이 공유됐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축사에서 “희귀질환치료제는 다른 제품보다 우선 심사해 시장에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체치료제가 없는 중증 희귀질환자의 치료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환자가 해외에서 임상시험중인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약사법을 개정했다”고 말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 역시 축사에서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관리법이 제정된 후 새로운 희귀질환을 발굴해 지원 대상을 확대해왔고, 현재 지원 대상으로 지정된 1028개 질환 외에도 다른 희귀질환을 추가 지정해 국가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며 “또한 ‘찾아가는 진단사업’을 통해 환자들이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거주지에서 진단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약이 있어도 써 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치료제에 접근할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식약처 산하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김기영 본부장도 참석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국내에서 아직 허가받지 못했거나 허가받았더라도 제약사가 공급하지 않고 있는 ‘미유통약’을 유통하는 기관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희귀의약품 ▲국가필수의약품 ▲그 밖에 국민보건상 긴급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거나 안정적 공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식약처장이 인정한 의약품(긴급도입의약품)을 공급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기영 본부장은 “구리 대사에 이상이 생기는 윌슨증후군 치료제인 ‘윌리진’이 한때 국내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약을 제때 못 받으면 환자가 사망할 위험이 있었다”며 “이때 식약처가 윌리진을 긴급도입의약품으로 지정해 파트너십을 맺은 해외 제약사에서 동일 성분 약을 긴급수입해,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한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도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약 수입 신청을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식품의약국(FDA)허가를 받은 희귀질환 치료제지만 환자가 국내에 1명뿐이라 제약사를 통한 공급이 어렵다면, 이 약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는지 환자가 센터에 직접 문의할 수 있다. 센터 확인 결과 도입 가능한 물량이 있는 경우 환자가 이 약을 수입해서 쓸 수 있도록 수입요건 면제 서류를 발급해준다.

이 사례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취급하는 희귀의약품 중 ‘자가치료용’에 해당한다. 자가치료용 희귀의약품은 해당 치료제를 사용하길 원하는 환자가 1명뿐이어도 수입을 지원한다. 다만, 센터에서 수입요건 면제 서류를 발급해줘도, 수입에 필요한 비용은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약은 센터에서 환자에게 직접 지급하게 된다. 간혹 환자에게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희귀의약품이라면 긴급도입 희귀의약품으로 분류돼 보험 급여가 적용될 때도 있다. 국내 미허가약이어도 유통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코드를 부여하므로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환자가 약국에서 사서 쓸 수 있다. 김기영 본부장은 “국내 환자가 통계상으로는 4명이지만, 활발히 치료받는 환자는 1~2명으로 파악되는 ‘유전성 10인자 결핍증(혈우병의 일종)’이라는 질환이 있다”며 “이 병의 치료에 쓰이는 ‘코아가덱스주250’을 국내에 급여 인정 긴급도입 희귀의약품으로 들여왔었다”고 말했다.

치료제가 있지만 써 보지 못하고 있는 환자에게 김기영 본부장은 “우리 기관에 연락하면 우리가 직접 제약사에 접촉해보고 환자에게 경과를 공유하겠다”며 “자국 우선 배급 기조가 있는 해외 제약사의 경우 국내 도입 가능한 물량이 없을 때도 있지만, 제약사를 설득해 국내 환자들이 사용할 물량을 확보한 경험도 있으니 적극 이용해달라”고 말했다.


희귀질환 환자 맞춤 치료제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가천대길병원 소아청소년과 김효정 교수는 ‘환자 맞춤형 ASO 치료제’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과거 하버드대 연수 시절, 1년간 희귀질환 환자 1명만을 위한 치료제를 만들어서 환자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접했다. 이 맞춤형 치료제는 ‘안티센스 올리고 뉴클레오타이드(ASO)’라는 단일가닥 RNA를 이용해 만든다. 유전성 희귀질환 환자에게서 문제 증상을 일으키는 pre-mRNA나 mRNA를 찾고, 여기에 결합할 수 있는 ASO를 만들어 증상 발현을 억제하는 원리다. 척수성근위축증(SMA) 치료제 스핀라자에도 ASO 기술이 이용됐다.
김효정 교수는 ”신생아 때 ‘모세혈관 확장성 운동실조증후군(Ataxia telangiectasia)’이라는 유전성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환자가 있었는데,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변이는 ASO로 교정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이에 ASO 기술로 ’아티펙센((atipeksen)’이란 치료제를 1년 반 만에 개발해 환자가 2살이 되기 전부터 치료를 시작했더니, 환자가 일반 어린아이와 다름없이 성장하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효정 교수는 DLG4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 뇌전증, 자폐, 발달지연 등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에 대한 ASO 치료제를 직접 개발 중이다. 다만, 아직은 증상 발현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형태의 ASO를 찾아내는 초기 단계다.

아주의대 의학유전학과 김현주 명예교수(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는 “과거에 축사 요청을 받아 척수성근위축증(SMA) 관련 포럼에 참석한 적 있었는데, 의사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고 환자들과 국회의원들만 애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 있었다”며 “치료제 미개발 상태인 희귀질환이 95%인 현 상황에서, 환자 맞춤형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환자의 질환이 진행되는 어느 시점에서 약을 어떻게 투여했을 때 증상이 호전되는지는 연구자 혼자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희귀질환 치료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어야 하므로, ‘Show your rare(당신의 희귀질환을 알려주세요)’이라는 희귀질환의 날 캠페인 문구처럼 환자들이 자신의 질환을 의료진에게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국민의힘 서정숙 국회의원은 “희귀질환 80%가 가족 내에서 대물림될 수 있는 유전 질환이라 환자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국회에서 희귀질환 치료에 관한 입법 노력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개혁신당 양성숙 국회의원은 “희귀질환은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라고 내버려둘 게 아니라 정치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며 “활발한 신약 개발을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어 환자들의 치료제가 빨리 개발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해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