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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한국화이자제약의 자비쎄프타 급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윤영경 교수./사진=한국화이자제약 제공
항생제는 아껴써야 한다. 정부에서 ‘단순 감기 치료엔 항생제를 쓰지 말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덴 이유가 있다. 남용했다가는 내성이 생겨 꼭 필요할 때 약이 잘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신약이 빨리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항생제야말로 남용할 수밖에 없는 약이다. 균에 감염돼 폐렴 등이 발생하면 보통 경험적 치료를 하게 된다. 원인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낸 후에 약을 쓰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동안 환자 상태가 나빠진다. 원인이 뭔지 몰라도 일단 항생제를 써야 한다. 약을 썼는데 잘 듣지 않으면 항생제를 바꿔서 투여해 본다. 이것이 경험적 치료다. 21일 한국화이자제약의 자비쎄프타 급여 기자간담회에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이동건 교수(대한감염학회 이사장)는 “임상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폐렴원인균이 정확히 지목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며 “경험적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항생제는 오남용이 있을 수밖에 없는 약”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은 외국보다 선택 가능한 항생제 옵션이 적은 편이다. 해외에선 허가돼서 이미 쓰이고 있는 항생제가 국내엔 도입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설상가상으로 베타락탐 등 3가지 이상 계열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균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균에 감염돼 쓸 약이 마땅치 않은 환자에게 궁여지책으로 쓰던 약이 콜리스틴이다. 1960년대에 사용하다 독성이 강해 한동안 쓰지 않게 된 항생제다. 미사용 기간이 길다 보니 다른 항생제보다는 내성이 적어 다시 꺼내쓰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전문가들이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할 정도로 독하다.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윤영경 교수(대한감염학회 보험부 이사)는 “콜리스틴을 환자에게 일주일 정도 쓰게 되면 환자의 콩팥 기능이 저하되고, 체내 독성이 쌓여 호흡근이 마비된다”며 “그래도 대신 쓸 약이 없으니 병동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을 감내해가며 콜리스틴으로 내성균 감염을 치료해왔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최근 내성균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가 국내에 도입돼, 2월 1일부터 건강 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화이자의 ‘자비쎄프타(세프타지딤·아비박탐)’다. 국내에선 새로운 약이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않다. 이 약은 미국 FDA에서 2015년 2월에 허가받았다. 9년이 지나서야 국내에 도입된 것이다. 자비쎄프타는 베타락탐계 항생제인 카바페넴에 내성을 보이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CRE)’ 감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2024년 2월 기준) 신약이다. 윤영경 교수는 “미국에서 2013~2016년 3000여 개의 CRE에 대해 자비쎄프타 감수성을 확인했더니 99.2%에 달했고, 치료제가 특히 제한적인 다제내성 녹농균 1500여 개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86.5%로 확인돼 항균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인구 고령화와 면역저하자 증가로 CRE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자비쎄프타가 급여 적용돼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비쎄프타는 ▲복잡성 복강 내 감염 ▲복잡성 요로 감염 ▲원내 폐렴 감염에 대해 기존에 사용하던 표준 치료제에 비해 치료 효과가 열등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효과가 우월함이 아니라 열등하지 않음을 입증한 것에 대해 한국화이자제약 의학부 최의현 상무는 “우월성을 연구하려면 위약(가짜약)을 쓰는 집단과 진짜 약을 쓴 집단을 비교해 통계적 유의미성을 보여야 한다”며 “자비쎄프타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생명이 위독한 중증 환자다 보니 위약을 주는 것이 연구 윤리에 어긋나 우월성 연구를 시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비쎄프타 도입으로 임상 현장이 한숨 돌리겠지만, 자비쎄프타 역시 언젠가는 내성 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자비쎄프타를 먼저 도입해 사용 중인 해외에선 이미 내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동건 교수는 “감염증 치료는 항생제 내성이 생길 때 즈음 신약을 도입해 사용하는 과정의 반복이다”며 “그러나 신약을 재빨리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새로 도입한 약에 내성이 생기는 시점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감염학회가 정부와 협업해 ‘항생제 스튜어드’라는 이름의 항생제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병원에 배포하고, 이것을 수행하는 병원을 지원하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 중이다”고 말했다.

윤영경 교수는 “코로나 19 기간에 병원 인력이 부족해 항생제 관리에 소홀해진 측면이 있지만, 항생제를 처방해 사용할 때 원인균을 명확히 알아내기 위한 ‘세균 배양 검사’와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병행하려 노력해야 한다”며 “또 학창시절부터 항생제 오남용 방지 교육을 하는 해외처럼 국내에서도 내성 예방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