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
재사용 수술 가운 생산하는 ‘스테리케어’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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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 의료가운 생산업체 스테리케어의 청결구역 내부. 세탁 후 건조한 수술용 가운을 멸균하기 전에 접어서 포장하는 단계가 이곳에서 진행된다./사진=이해림 기자
어느 산업 분야든 친환경이 화두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대부분 물품이 일회용이다 보니, 의료계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유독 의료계만큼은 친환경에 동참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분위기다. 각종 의료 도구와 수술용 가운 등을 일회용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감염 위험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의료용품도 잘만 관리하면 안전하게 재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멸균 후 재사용 가능한 의료용 가운을 개발해 대형 병원에 납품 중인 업체가 있다. ‘리젠75(ReGen75)’라는 이름의 재사용 가운을 생산·관리하는 스테리케어다. 해당 업체의 세탁 공장을 방문해, 재사용 가운이 멸균돼 병원에 납품되기 전까지 거치는 전 과정을 따라가 봤다.

◇공정별로 공간 분리… 세탁된 가운 재오염 방지
스테리케어는 이미 사용한 의료용 가운을 병원에서 거둬와 멸균하고, 네모난 투명 포장백에 진공포장해 병원에 다시 납품한다. 이 과정은 모두 ‘일방통행’으로 이뤄진다. 각 과정이 수행되는 공간이 순서대로 분리돼있어 가능한 일이다.

세탁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일렬로 나열된 양문형 세탁기들이 가장 먼저 보인다. 일부 세탁업체에선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고 빼는 일이 한 공간에서 다 이뤄진다. 이미 세척된 세탁물이라도도 빼는 과정에서 다시 오염될 위험이 있다. 스테리케어는 이를 방지하려 세탁물을 넣는 공간 건너편에 빼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줄지어 선 양문형 세탁기들이 벽처럼 두 공간을 가른다. 세탁물을 빼는 공간에는 건조기 여러 대가 놓여 있다. 세척을 마친 세탁물은 곧바로 여기 투입돼 습도가 10%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 건조된다.

침대 시트나 환자의 보호자가 입는 가운 같은 일반 세탁물은 건조 후에 접으면 납품 준비가 끝난다. 그러나 의료진이 입는 수술용 가운은 별도의 멸균 과정을 거치게 된다. 환자의 감염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다. 건조된 가운은 카트에 담겨 청결구역으로 이동한다. 역시 세탁실, 건조실과 분리된 별도의 공간이다. 머리망을 쓰고, 신발을 갈아신고, 위생복을 입은 후에 청결구역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니 위생복을 갖춰입은 사람이 커다란 탁자 위에 펼쳐둔 수술용 가운을 접고 있었다.


굳이 사람의 손을 거치는 이유가 있다. 포장된 가운을 꺼내 입는 과정이 복잡하면 가운에 손을 많이 대야 해 멸균된 가운이 다시 오염될 수 있다. 최대한 손대지 않고 꺼내 입을 수 있도록 접어야 하는데, 기계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수술용 가운은 긴 소매가 달린 커다란 앞치마처럼 생겼다. 착용법은 간단하다. 포장을 뜯은 후, 접힌 가운을 펼쳐서 우선 양팔을 끼운다. 앞치마 끈을 매듯 가운에 달린 끈을 몸통에 매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끈에 씌워진 종이 태그를 잡고 가운을 입는 사람의 몸에 한 바퀴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생물학적 지표와 화학적 지표로 멸균 여부 이중 확인
청결구역 한쪽 벽면에는 멸균기가 있다. 포장된 가운을 여기 넣고 멸균하면 청결구역 건너편의 멸균구역에서 멸균을 마친 가운을 꺼낼 수 있다. 멸균된 제품과 멸균되지 않은 제품이 접촉하는 일을 막기 위해 두 공간 역시 분리돼 있다.

멸균이 제대로 됐는지는 생물학적 지표(Biological Indicator, BI)와 화학적 지표(Chemical Indicator, CI)를 활용해 이중으로 점검한다. 우선, 매일 멸균을 시작하기 전에 멸균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체 검사를 시행한다. BI를 멸균기 상단 가장 안쪽에 넣고 멸균기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해당 부분은 멸균기 제조업체에서 실험한 결과 멸균 실패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 부분에서 멸균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면 멸균기 내부의 다른 곳도 이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기기 작동이 끝난 후에 BI 상단의 동그란 스티커가 흰색이라면 멸균이 안 됐다는 뜻이고, 검은색이라면 멸균이 됐다는 뜻이다. 스테리케어에선 이 스티커를 장부에 붙여 기기 성능 검사 이력을 관리 중이다. 장부를 펼쳐보니 검은색 스티커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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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스테리케어에서 관리하는 멸균 점검 장부 사진 (오른쪽)포장팩 안의 수술 가운./사진=이해림 기자
CI는 가운을 넣은 포장팩 가장자리에 붙어있다. 원래는 핑크색 막대 모양인데, 멸균이 잘 되면 역시 검게 변한다.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뿐 아니라 개별 가운이 제대로 멸균됐는지도 CI로 확인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그날은 멸균 과정을 일단 중지한다.

스테리케어에선 가운을 최대 75회 재사용한다. 이를 위해선 각 가운의 사용 횟수를 집계하고,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엔 유성매직으로 가운에 사용 횟수를 직접 적었다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가운의 옷단에 내장된 칩을 리더기에 인식시키면 사용 횟수가 스크린에 숫자로 뜬다. 가운마다 부여된 고유 번호까지 확인할 수 있다. 75회까지 사용을 마친 가운도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수거해 에코백 등을 만드는 데 쓴다.

◇일회용 가운에 경제성 밀리지 않아… 대형병원 이미 도입
재사용 가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스테리케어는 원래 의료 소모품을 유통하는 회사였다. 스테리케어 박선영 대표는 “다양한 의료용 일회용품을 발주해 수년간 납품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차에 실어 보내는 물건들이 다 쓰레기가 될 거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회용품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양이라도 줄여보자는 게 재사용 가운 개발의 시작이었다.


수십 회 재사용해도 가운 성능이 유지되게 하려면 내구성이 좋은 원단이 필요했다. 박 대표는 수많은 원단 업체를 만난 끝에 효성이 10년 전에 해외 연구진들과 공동 연구해 만든 의료용 신소재 원단을 찾았다. 공동개발자인 세종병원과 약 3년간 원단·제품 테스트를 거친 후, 지난 9월 대한병원협회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제품을 선보였다. 도입을 문의하는 병원들이 생겼고, 부천·인천 세종병원은 전면 도입해 사용 중이다. 

“일회용 가운만큼 경제적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회용 가운은 제품 가격의 9~10%에 달하는 폐기 비용이 든다. 폐기 대상 가운을 모아서 보관하는 폐기 통을 발주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폐기 통을 위생적으로 보관하고 관리하려면 또 별도의 공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이에 박 대표는 “일회용 가운을 사용한 후, 이것을 폐기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이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력 면에서 재사용 가운이 일회용 가운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