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비참한 죽음 대신 안락사 선택… 합법화 해야 할까? [의사들 생각은…]

오상훈 기자

헬스조선은 인터엠디(InterMD)와 함께 매월 정기적으로 주제를 선정해 ‘의사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터엠디는 4만 3000여 명의 의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의사만을 위한 지식·정보 공유 플랫폼(Web, App)'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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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돌봄 부담 증가와 연명의료에 의한 비참한 죽음이 증가하자 안락사를 요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지만 법적 논의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6월, 생애말기 환자가 약을 처방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걸 합법화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것입니다. 법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국회의원 10명 중 8명이 안락사 도입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걸 보면 논의는 한층 심화할 전망입니다. 그런데 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할 의사들 생각은 어떨까요?

◇의사 1000명 중 785명, “조력존엄사 도입 찬성”

안락사에도 유형이 있습니다. 환자가 요청하면 의료진이 약물이나 주사를 환자에게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의료진이 환자에게 의학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인공호흡기 등의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습니다. 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받은 약물을 스스로 투여해 죽음에 이르는 ‘조력 자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 중단을 통한 소극적 안락사만 가능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조금 더 적극적인 안락사로 보입니다. 스위스(조력 자살만 합법)나 네덜란드(적극적 안락사까지 합법)처럼 치료가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조력‘존엄사’로 통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들은 어쨌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의사조력‘자살’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주장합니다.

의사 1000명에게 어느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88.5%(885명)가 조력존엄사라고 응답했습니다.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응답은 11.5%(115명)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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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엠디 제공
조력존엄사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도 그에 못지않게 높았습니다. 78.5%(785명)의 응답자가 찬성, 21.5%(215명)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 성명 등으로 조력존엄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 왔는데 의사 개개인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 도입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의사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결과, 가장 높은 비율인 43.2%(339명)가 ‘자기 결정권 보장’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편안한 임종을 통한 웰다잉 실현(29.7%, 233명)’이었고 ▲‘병으로 인한 고통 경감(16.3%, 128명)’ ▲‘가족의 정신적 경제적 부담 경감(5.5%, 43명)’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 경감(5.4%, 42명) 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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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엠디 제공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 도입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의사들에게도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가장 높은 비율인 30.7%(66명)가 ‘자살 권유 등 오남용 가능성’을 선택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자살률 증가 등 생명경시풍조 만연(27.4%, 59명)’ ▲‘사회적 논의 부족(24.2%, 26명)’ ▲‘의사의 직업윤리 위배(12.1%, 26명)’ ▲회복 가능성 무시(5.1%, 11명) 순이었습니다. 소송 가능성을 꼽은 기타 의견도 있었습니다.

◇조력존엄사 가능 시점, 임종기, 말기, 중증질환 순


조력존엄사는 언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들은 그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말기 환자나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중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합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의 조력존엄사도 허용하는 스위스는 관련 규제가 없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돕거나 유도한 경우에 처벌한다는 내용만 있다 보니 기준이 모호하고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의사 1000명에게 만약 조력존엄사가 도입된다면 가장 적합한 기준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가장 높은 비율인 44.4%(444명)가 ‘임종기 환자’를 꼽았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상 임종기는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받더라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뜻합니다. 임종기 환자 다음으로는 ▲‘암, 만성 폐쇄성 폐질환, 간경화,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 말기 환자(21.5%)’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중증질환 환자(20.5%)’ ▲‘조력사망 의지가 있는 모든 환자(12.5%)’ 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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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엠디 제공
또 모든 응답자에게 조력존엄사 대신 논의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절반이 넘는 비율인 56.2%(562명)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를 꼽았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 환자와 보호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환자의 통증은 물론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도 치료하므로 웰다잉 실현의 교두보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호스피스 병동 입원 대상 질환이 매우 한정적이고 시설 및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극소수의 사람들만 혜택을 받는 실정입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인프라 다음으로 논의해야할 사안은 ▲연명의료결정법 미비점(25.3%) ▲간병 돌봄(9.9%) ▲죽음 터부시 문화(8.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의 권리 vs 시기 상조 vs 악용 여지


조력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써달라는 문항에는 총 335명이 답변했습니다. 답변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유형입니다. 구체적인 답변을 몇 개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종까지 고통이 계속될 예정이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면 그 삶을 지속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호스피스 환자들을 많이 봐왔는데 환자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건강수명이 아닌 단지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는 본인과 주변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등이었습니다.

시기상조라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조력존엄사와 관련해 의료인이 소송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는 사전절차를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 ‘조력존엄사가 무엇인지 사회 전반적인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확실한 조건과 심의위원회를 정확하게 명시해 악용을 방지해야 가능하다’ 등이었습니다.

절대 반대하는 의견도 꽤 있었습니다. ‘의료비 지출이 부담스러운 환경에서는 환자가 살고 싶거나 좋아질 가능성이 있어도 가족 눈치에 의해 자살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돌봄부담에 대한 사회적 지지 체계 없이는 자기 결정권이 아닌 사회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생명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될 영역일뿐더러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로 선언한 의사가 그 끝에 작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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