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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공생하고 때로는 공격하는… '세균'의 두 얼굴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남궁인의 몸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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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구에 최초로 탄생한 생명체는 단 하나의 세포였다. 물과 전해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원시 세포는 단세포나 세포의 군집 상태로 몇 억 년 동안 지구 환경에 적응했다. 이 세포가 생화학적으로 지구 환경에 어울리는 형태를 갖추고서야 다양한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 즉 세균과 동의어였다. 모든 생명체는 세균으로부터 기원해서 진화했고 현재 지구상에서 무균 상태의 동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균은 최고最古의 생명체답게 모든 생명에 관여하고 공존한다.

최고의 고등 생물인 인간이 다양한 세균을 매개로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인체에는 약 2kg 정도 되는 미생물이 면역계의 허가를 받아 살고 있다. 그 숫자는 인체 세포의 숫자인 37조 개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피부의 상재균이거나 장내 세균으로 소화를 돕거나 기타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인간마다 가지고 있는 세균의 군집은 전부 상이하다. 이들은 소화를 담당하거나 감정을 조정하기도 하며 고유한 채취나 인간적인 개성까지도 드러낸다. 아직 37조 개의 세균이 모두 어떤 종류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균 또한 인간을 이루는 일부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반면 인체에 고통을 주면서 번식하는 세균 또한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중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세균을 병원균이라고 한다. 바이러스, 진균 등의 개념까지 포함하면 병원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인체 면역계의 허가를 받는 대신 면역계를 공격해서 생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잠복기에 다른 상재균과 섞여서 눈을 피했다가 기회가 찾아오면 증식하면서 면역계를 공격해 증상을 일으키고 다른 인간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 병원체가 자주 숙주를 옮기면 인간에게 유행하는 전염병이 된다.

병원체의 가장 흔한 전략은 호흡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호흡을 멈출 수가 없고 인후두와 폐는 점막이 노출되어 축축하므로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또 호흡기가 감염된 인간이 기침을 하거나 가래를 뱉으면 병원체가 퍼져나가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옮기기도 쉽다. 그래서 인간은 호흡기 증상을 동반한 감기에 자주 걸리며, 목이 아프며 시작되었다가 기침과 가래가 나오고 진행되면 폐렴으로 번진다. 코로나19 또한 인간의 호흡기를 통해 생존하는 대표적인 병원체다.


소화기 또한 좋은 생존의 전략이다. 인간은 끝없이 먹고 끝없이 배출한다. 장내 병원균이 번식하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면서 분변으로 배출될 수 있다. 그 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의 손에 묻거나 식수나 음식에 섞여 다른 인간의 위장으로 들어간다. 위산과의 싸움을 이겨내기만 하면 장에서 증식하면서 또 다른 생존과 번식을 노릴 수 있다. 덕분에 인간은 감기 뿐만 아니라 배탈이 자주 나고 병원체가 장 점막에 염증을 일으켜 설사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앓은 뒤 건강하게 회복되고 해당 병원체에 면역을 얻는다. 다만 감기와 배탈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또다시 인간은 감기와 배탈에 시달릴 뿐이다.

병원체의 전략은 매우 다양하며 어디든 생존한다. 가령 간염 바이러스는 인간의 간에서 번식하고 위장관이나 혈액을 통해 배출되어 다시 간으로 들어간다. 보툴리늄 균은 밀봉된 음식 안에서 오래 비활성화되어 있다가 인체가 섭취하면 감염된다. 이 균은 제대로 보관되지 않은 소세지나 밀봉되지 않은 통조림을 먹은 사람에게 처음 발병해서 그 존재가 알려졌고 치명적인 신경 독성으로 근육을 마비시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지독한 인류는 이 독소를 약하게 만들어 얼굴에 주사했다. 이것이 미간에 주름을 펴는 '보톡스'이다. 파상풍 균은 자연계의 흙, 금속, 풀에 오랫동안 비활성되어 있다가 상처를 통해 들어와 신경을 마비시키고, 보툴리늄 균과 같은 속에 속한다. 다른 동물에 기생하다가 감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쥐 벼룩에 기생하는 페스트, 고양이에 기생하는 톡소플라스마, 모기를 통해 혈액으로 들어오는 말라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외부에 오래 생존하는 병원체는 증상이 심하고 치명적인 경우가 있으나 인체를 주로 감염시키는 병원체는 증상이 경한 경우가 많다. 감염된 숙주가 죽으면 병원체는 번식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른 개체로 옮겨갈 수 있는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염병은 자연스럽게 약화 과정을 거쳐서 숙주가 사망하지 않게 힘조절을 하게 된다. 또한 인간에게 면역이 생기면서 맞서 싸울 힘이 생기고 면역이 유전되면서 자연스럽게 약화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병원체와 인간의 면역은 300만 년 동안 공존해왔으며 인간은 가끔씩 앓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삶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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