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교육] ①​ 한국인 임종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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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람마다 원하는 죽음의 모습이 있다. 대다수는 자택이나 병원 임종실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산이나 들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듯 눈감고 싶은 사람도 있고 자는 도중에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한국인의 죽음은 대체로 비슷하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연명의료를 받다가 사망한다.

연명의료 전까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거나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죽음을 수용하고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는 온데간데없다. 모두가 겪는 죽음이 조금더 ‘존엄’해지려면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가족 부담 적어야 좋은 죽음 “비참하게 죽는다는 증거”
2004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 사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 당시 한국사회복지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고통 없는 죽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는 명을 다하는 죽음, 자녀보다 일찍 맞이하는 죽음, 자녀들이 곁을 지키는 죽음, 부모 노릇을 다한 후의 죽음 등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기대수명이 길어져 명을 다 할 수 있게 된 최근에는 조금 바뀌었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좋은 죽음의 요소로 가장 동의하는 비율이 높았던 건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었다. 신체적·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이 두 번째였고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이 세 번째,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임종이 네 번째였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박중철 교수는 “주변인의 부담이 적어야 좋은 죽음이라는 건 그만큼 한국인의 죽음이 비참하다는 증거”라며 “국가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단계에는 관심이 없다 보니 노인의 죽음과 질병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할 부담으로 낙인찍혔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 권승연(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과거에 임종은 가족 및 이웃들의 돌봄과 지지를 받는 과정이었지만 공동체가 붕괴하고 돌봄 부담이 개인에게 가중되면서 어느 방면으로나 고립된 죽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서 죽으면 경찰 조사, 국민 75% 병원 임종
안타깝게도 좋은 죽음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임종을 스스로 정리하는 자기 결정권부터 오리무중이다. 한국인은 연명의료 없이 자택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 하지만 어렵다. 사망진단서의 사망 원인엔 세 가지가 있다. 병사(자연사), 외인사, 기타 및 불상이다.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려면 병사여야 한다. 외인사나 기타 및 불상이면 사건, 사고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찰이 조사해야 한다. 병사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의사의 진단서 아니면 사는 동네의 통장 및 이장의 증언이 필요하다. 통장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지금, 병사라는 사실을 증명할 사람은 의사밖에 없다.

과거에는 생애말기 환자가 자택 임종을 원한다면 의료진이 방문해서 사망진단서를 써주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호자의 의사에 따라 생애말기 환자를 퇴원시킨 의료진들이 실형을 받게 된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병원이 낫지 않은 환자를 퇴원시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퍼졌다. 해당 사건의 최종심은 2004년에 나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자택에서 임종을 받는 비율을 역전했다. 2016년부터 국민 4명 중 3명은 의료기관에서 사망한다.


권승연 교수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치료를 시도하는 비율이 늘었고 일련의 사건 이후 의료기관은 법적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최대한의 의료를 적용하기 시작했다”며 “생애말기 환자가 어디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지는 고려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모로 가도 종착지는 응급실 아니면 중환자실 
최대한의 의료는 역설적이게도 환자의 고통을 키웠다. ‘최빈도 죽음의 쳇바퀴’라는 개념이 있다. 연명의료에 대한 영국 의사 데이비드 재럿의 표현이다.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이 노화나 질병으로 신체적·정신적 기능 저하를 겪으면 요양시설을 찾는다. 거기서 거의 결박당한 상태로 치료받다가 섬망이나 감염병이 찾아오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연명의료를 받고 호전되면 다시 요양시설로 옮겨진다. 이 굴레는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반복된다. 

문제는 별다른 질환이 없더라도 쳇바퀴가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원래라면 자연스럽게 사망했을 노인이라도 일단 요양시설에 맡겨지면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 박중철 교수는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시설에서 사망하면 자택과 마찬가지로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없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결국 노인이 자연스러운 노쇠로 밥을 못 먹어도 임종 돌봄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응급실로 옮겨서 연명의료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이나 시설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니 가족들의 부담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7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0세 이상 성인의 사망 전 1년 동안의 평균 진료비는 1595만1000원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더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간병 및 돌봄 부담은 투병 기간에 따라 다르다. 말기암은 임종까지의 기간이 3~6개월이지만 치매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안락사도 중요하지만 죽음에 대한 이해부터…
돌봄 부담이 존속살해의 주요 원인이 되자 안락사를 요구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2021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 연구팀이 국민 1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76.3%가 안락사 입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사망하게 하는 건 국내에서 불법이다. 다만 지난해 6월, 생애말기 환자가 약을 처방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걸 합법화하는 내용의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지만, 좋은 죽음에 관한 법적 논의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금 더 근본적인 틀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대하는 인식과 문화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중철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삶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보니 인생의 후반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며 “이러다 보니 정부도 성공적인 삶을 위한 경쟁 과정을 어떻게 제공할지만 얘기하지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북유럽이나 일본 등에선 만족한 상태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문화가 있다”며 “정부도 이에 발 맞춰 노인의 사회적 역할을 재고하고 그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연명제를 받지 않게끔 하는 제도들이 이전부터 논의됐다”고 말했다.

권승연 교수는 “지금과 같은 문화에서 생애말기 환자와 보호자들은 생존 기간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이러면 잘 안 됐을 때, 임종이 코앞에 닥쳤을 때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당황하고 혼란스럽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또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죽음과 임종에 대해 교육할 게 아니라 그보다 이전부터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