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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철학적 효용

이지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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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와인 열풍이 불 때 포도의 원산지, 출시 연도에 관한 공부와 아는 체가 유행이었던 것처럼 요즘엔 등산의 효용에 대해 말하는 이가 많다. 팬데믹을 거치며 등산 인구가 증가해서다. 하지만 내용은 단조롭다. 심폐기능이 확 좋아졌어, 내 허벅지 딴딴해진 것 봐…, 수준이다. 등산의 효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다르다. 효과가 몸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거대한 토양의 적분으로 이뤄진 산의 효용은 미분해야 제대로 드러난다.

◇당뇨가 걱정이라면 하산 코스를 잘 짜라?
등산 때와 하산 때의 효과가 같을까. 산행객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올라갈 때, 다른 쪽은 내려올 때 곤돌라를 타게 했다. 올라갈 때 걸은 그룹은 상대적으로 중성지방 수치가 많이 줄었다. 내려올 때 걸은 그룹은 혈당이 더 떨어졌다. 심혈관질환이 걱정될 땐 오르는 코스를, 당뇨가 걱정될 땐 내려오는 코스를 신경 써서 잡으란 얘기로 들린다. 산악지대 많은 오스트리아의 연구진이 두 달에 걸쳐 성인 40명을 훈련하듯 등산시켜가며 얻은 결과다.

‘허벅지 딴딴’ 얘기가 나왔지만, 등산을 논하며 허벅지에 대한 고찰을 게을리할 수 없다. 우리 몸 근육의 3분의 2가 허벅지에 몰렸다. 산행을 통해 허벅지 근육이 늘면, 그 근육이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에너지는 물론 혈관을 돌아다니는 포도당을 잡아다 만든다. 등산이 심폐기능 못지않게 혈당 관리에 직접적으로 좋은 이유다.


◇실존주의자였다가, 유물론자였다가
산은 우리 마음에도 변화를 준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우리 모두는 헉헉거리며 산에 오르는 동안엔 실존주의자였다가, 정상에 우뚝 서면 유물론자가 된다고. 중성지방과 혈당으로 등산/하산의 효과를 구분한 오스트리아 연구진처럼 숫자로 실증하긴 어렵겠지만 숫자가 다는 아니다.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산행 중의 겸손과 자신감을 번갈아 느낀다.

그런데 실존주의와 유물론을 오가는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변화가 혹시, 우리 몸의 생화학적 변화에 기대는 건 아닐까. 해발 1000m보다 높은 산을 오르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우리 몸이 다양한 생화학적 변화를 시도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등산과 관련해서라면 실존주의보다 유물론을 믿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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