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털어넣는 10개의 약… 처방이니 괜찮다?[헬스컷]

신은진 기자

[약, 독이 될 때]① '약 사랑'과 '처방 연쇄'의 위험성​

▲ 헬스조선 DB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건 흰머리와 먹는 약뿐이라는 소리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시원찮은 곳이 생기고, 여기가 아프니 저기도 아프다. 증상마다 약 하나씩만 먹어도 금세 5~6개의 약을 먹게 된다. 5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것을 '다제약물 복용' 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치료하려 더 먹은 약이 생명 위협… 다제약물의 함정
병이 여러 개라 약을 여러 개 먹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약은 여러 개 먹는 일은 그 자체로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다.

건강보험 일산병원 연구소에서 발표한 '다제약물 복용자의 약물 처방현황과 기저질환 및 예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5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4개 이하의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보다 입원할 확률이 18%, 사망할 확률이 25% 높다. 또한 처방약 개수와 입원·사망 위험은 정비례한다. 11개 이상 약을 먹는 경우, 2개 이하 약을 먹는 이들보다 입원 위험은 45%, 사망위험은 54%까지 증가한다. 약 개수 증가 자체가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에 따르면, 먹는 약이 5개를 넘어가면 약으로 인한 문제를 겪을 확률이 상승하고, 처방약을 10개 이상 복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100%에 육박한다.

약을 5개 이상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65세 노인은 약을 5개 이하로 먹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건강보험공단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노인 처방약 개수는 평균 5.3개이다. 3개 이상의 약을 먹는 노인은 60.3%였다. 2017년에도 3개 이상 약을 먹는 노인은 60.0%였고, 5개 이상 약을 먹는 노인은 38.9%로 집계됐다. 이들은 비처방약물도 평균 0.2개 복용하고 있었다.

노인은 젊은 사람과 달리 신진 대사가 느리고, 약물에 민감해 같은 약을 먹어도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먹는 약 개수를 줄이는 게 중요함에도 노인일수록 먹는 약이 많다. 2021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연령군별 다제약물 복용자 비율은 55~64세가 1.95%, 65~74세 6.40%, 75~84세 13.35%, 85세 이상 13.55%였다.

그 때문에 많은 노인이 약을 먹고 나서 오히려 병을 얻는 사례가 흔하게 발생한다. 울산대병원 약제팀에 따르면, 65세 여성 A씨의 경우 다발성근염, 당뇨병, 당뇨병성 신경통,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갑상선 결절 등 여러 개의 질환이 있어 총 15개의 약을 먹는다. 건강기능식품 1종을 제외한 14개의 약은 모두 필요에 따라 처방한 약임에도 A씨는 약을 먹어서 병을 얻었다. 신경통증 약과 진통제 1종이 약물 상호작용을 일으켜 과도한 호흡 저하가 발생했고, 면역억제제와 이상지질혈증 치료제가 충돌해 약효 부작용 위험이 커졌다. A씨의 사례는 드물지 않다. 전국에 수없이 많은 A씨가 존재한다.

◇한국인 약 사랑에 처방 연쇄까지 '다제약물 부추기는 사회'
왜 지나치게 약을 많이 먹어 오히려 병을 얻는 일이 생길까? 다제약물 복용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단 아프면 처방 또는 약 복용을 원하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다른 병원(진료과)을 찾는다. 또한 새로운 병원을 가면 기존에 먹던 약이나 이전에 앓았던 질병 정보를 환자가 자세히 얘기하지 않는 이상 의사나 약사는 알기 어렵다.

정희원 교수는 "병을 치료하려 먹은 약이라도 어쩔 수 없이 부작용은 발생할 수 있는데 환자가 약 부작용을 의심하는 경우는 드물고, 의사는 이전 병력·약력을 알지 못해 추가 처방을 하면서 '병 주고 약 주는' 처방연쇄가 흔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정 교수가 소개한 B 환자의 사례는 대표적인 처방 연쇄로 다제약물을 복용, 그로 인한 부작용이 생긴 사례다. B씨는 치매 때문에 신경과에서 인지장애 개선 효과가 있는 치매약을 처방받았다. 이 약은 소변이 자주 마려운 불편함이 생길 수 있는데, 환자는 이를 알지 못해 비뇨의학과를 찾아갔다. 그는 치매약을 먹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최근에 소변이 너무 자주 마려워 불편하다는 얘기만 하니 비뇨의학과 의사는 방광 민감도를 낮추는 항콜린 제제를 적절하게 처방한다. 약을 먹자 빈뇨는 해결됐으나 어지럼증이 생겼다. 항콜린 제제의 흔한 부작용 중 하나가 어지럼증인데, 환자는 역시 이를 알지 못했다.

B씨는 어지럼증을 해결하려고 내과를 찾아 증상을 얘기했고, 내과 의사는 B씨가 이전에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알 수 없으니 항히스타민을 알맞게 처방한다. 그러나 항히스타민은 인지기능 저하 부작용이 있어, B씨는 치매가 오히려 악화했다. 모든 의사가 적절하게 처방을 했으나 B씨는 결과적으로 병만 얻은 셈이다.

병을 낫게 하려고 쓴 약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B씨의 사례처럼 처방약이 늘어날수록 부적절한 처방, 즉, 먹으면 부작용이 발생할 약을 먹게 될 가능성이 커진 영향이 크다. 건보공단 연구에 따르면, 5개 이상의 약물 처방을 받은 사람은 4개 이하의 약물을 처방받은 환자보다 부적절 처방률이 33.2%p나 더 높다. 노인의 약물 부작용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잠재적 노인 부적절 약물(PIM, Potentially inappropriate medications)' 목록이 따로 있음에도 PIM 목록에 포함된 약물을 처방받는 경우가 흔하다.

의사가 처방할 때, 약사는 조제할때 심평원의 DUR(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DUR은 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때 의사와 약사에게 병용 금기 등 의약품 안전성 관련 정보를 제공해 약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게 하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DUR은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허가된 의약품 수는 약 3만 6000개, 성분으로는 약 3000개인데, 이 중 효능군 중복을 점검할 수 있는 건 386개 성분뿐이다. 10분의 1 정도만 DUR을 이용해 오류를 잡아낼 수 있다.

DUR을 사용하더라도 동일 효능군이 아닌 유사효능군은 사실상 잡아낼 수 없고, 약물상호작용이 우려돼 조정이 필요한 약제도 모두 발견할 수 없다. DUR에서 잡아내지 못한 문제는 약사가 조제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 상황에선 이조차도 어렵다.

대한약사회 안화영 지역사회약료사업본부장(약사)은 "여러 질환으로 병원에 다니는 환자는 약국도 여러 곳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의 이전 처방·조제 내역이 모두 공유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아 환자가 기저질환과 복용 중인 약을 얘기하지 않는 이상 약사가 약물상호작용이 우려되는 약물을 조정하거나 유사 효능군을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먹는 약 늘고 건강 악화한다면 약 의심
여러 종류의 약을 먹으면 문제가 생긴다지만, 일반인이 치료를 위해 받은 약을 먹고 나서, 부작용을 의심하긴 어렵다. 부작용이 걱정된다고 약을 안 먹었다가 병이 더 악화하는 건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특정 증상이 나타날 땐 약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의심할 필요가 있다. 정희원 교수는 ▲걷기 등 신체기능에 문제가 없던 사람이 최근 신체 기능이 떨어질 때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체중이 빠질 때 ▲최근 돌봄이나 간병이 필요한 상태가 됐을 때 ▲병과 약이 함께 늘어날 때는 먹는 약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약이 꼭 모든 증상의 원인은 아니지만, 새로운 증상에 일부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 아주 조금이라도 허약해졌다면, 10개 미만의 약을 먹더라도 약물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약으로 새로운 증상을 다스리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등 비약물적 치료를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화영 본부장은 "새로운 의사나 약사를 만날 때 병력·약력을 알려두면 다제약물 복용으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안 본부장은 "또한 복약법을 잊어버려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복약내용을 충분히 익힐 수 있게 약사에게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말했다. 약을 제대로 복용하는 방법으로는 약 요일별 보관용기나 달력, 휴대전화 알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건보공단 다제약물 서비스를 신청하는 방법도 있다. 공단은 건강보험가입자 중 만성질환을 1개 이상을 진단받고, 상시로 복용하는 약이 10종 이상인 자(투약일수 6개월 기준 60일 이상)를 대상으로 약물 점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약사가 가정방문 등을 통해 유사약물 중복 검증, 약물 부작용 모니터링 등 맞춤형 약물이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병을 얻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뀌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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