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일반

[아미랑] 두려움에 약한 환자를 대하는 법

기고자=이병욱 박사(대암클리닉 원장)

<당신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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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박사의 작품 <11송이 노란꽃 정물-쿠키 상자속에 핀 사랑> 24X34cm Acrylic on Wood 2022
암에 걸린 사람들은 육체뿐 아니라 조울증과 우울증 등 정신적인 외상도 큽니다. ‘당신은 죽을지도 모를 병에 걸렸다’라고 하는데 절망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두려움에 약한 사람이 우울증에 잘 걸립니다. 온실 안의 화초처럼 별탈 없이 살아온 사람이나, 여태껏 겪어온 일 중 가장 큰 재난이 암일 경우에는 더욱 휘청거립니다.

암 환자 중에는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의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여성 중에서도 남편에게 존중받으며 큰 부족함 없이 살던 쪽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여태껏 아무런 걱정 없이 보호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단련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강한 심성을 갖추기에 충분한 경험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쉽게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제 환자 중에는 아내를 참으로 잘 섬기는 남편이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며 살아온 덕분에 마음고생 한 번 안 하고 결혼 생활을 30년간 해온 분이었지요. 유방암으로 제게 왔을 때는 이미 한 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는데도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돼 이미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약물 치료 후유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진료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은 이미 깊게 그늘져 있었습니다.

“저 안 이상해요?” 그 환자는 진료를 마치고 나갈 때마다 자신의 안색이 창백하지 않느냐며 간호사를 잡고 몇 번이나 물어봅니다. 그만큼 사는 데 용기와 자신감이 없다는 반증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괜찮아졌습니다. 좋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실제 숫자상으로는 면역 수치가 조금 떨어졌더라도 ‘좋아졌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곧이곧대로 “2주 전보다 좀 떨어졌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환자는 그날 집에 가서 잠을 이룰 수 없을 겁니다. 의사가 거짓말하는 게 옳은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리지 않아도 되는 것들, 말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문제되지 않는 것은 묻어 두는 게 환자를 위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용히 보호자에게는 따로 알려주어야겠지요.


저는 환자가 안심하도록 호탕하게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다잡기 위해 강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보호자는 환자를 세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특히 평소 응석받이 기질을 가진 환자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기분이 좋아졌다 우울해졌다를 반복하는 조울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밥 먹고 싶다고 해서 차려주면 몇 숟가락 들지 않고 금세 입맛 없다며 휙 돌아 앉아 버리지요. 이런 환자들은 한편으로는 받아주면서, 중요할 때는 단호하게 이야기해서 반드시 따르게 해야 투병이 원활합니다.

위의 유방암 환자는 남편이 이것저것 하라고 시키면 또 그런대로 잘 해내곤 했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남편이 다 먹어야 한다고 호통을 쳐서라도 먹이고, 운동을 안 하려고 하면 달래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남편은 더할 나위 없는 신사였는데, 갖은 변덕을 다 받아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엄한 아버지처럼 아내를 다잡았습니다. 그 환자가 잘 투병한 건 전적으로 남편 덕이 큽니다. 심성이 약한 사람에게는 이렇듯 든든한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 환자는 처음 진료실에 들어설 때와 달리 얼굴이 아주 밝아졌습니다. 본래의 멋쟁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끔은 농담도 던집니다. “남편한테 한 쪽만 있어도 많이 사랑해 달라고 했어요.” 유방복원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으로서의 자신감도 회복했습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한쪽 유방을 자신감으로 채운 것이지요. 이렇듯 보호자가 큰 힘이 되어줄 때 환자의 몸과 마음은 더 잘 회복한다는 걸 기억하세요.

오늘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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