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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하면 분위기 싸해진다… 혹시 ‘SCD’? [헬스컷]

이슬비 기자

맥락·환경 고려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말해
인지능력은 정상이지만, 사회생활 어려워
어릴 때부터 사회적 의사소통법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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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꺼내면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이들은 대화하면 묘하게 요점이 어긋난 얘기를 하고, 농담을 던져도 진지하게 받아치곤 합니다.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다기엔 공부도 일도 다 잘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간혹 알면서 일부러 이상하게 행동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인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SCD)'를 앓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SCD 환자는 인지 기능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언어적·비언어적 신호를 이해할 수 없어 의사소통이 어렵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등 사회생활이 일반 사람보다 무척 힘들어도 다른 장애 유형보다 경증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질환인지 모르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대구로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지수혁 교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화가 안 된다거나, 눈치가 없다는 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고, 사회생활이 어렵다면 진료를 한번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4가지 의사소통 결함 증상 나타나
SCD는 정신질환 진단·통계 매뉴얼 5번째 개정판(DSM-5)에 실린 정식적인 질환입니다. 다른 증상 없이 딱 의사소통에만 문제가 있을 때 진단하는데요. 크게 4가지 증상을 모두 보입니다. 먼저 SCD 환자는 맥락에 맞게 대화하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봐야 하는데요. 상대방과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와 상관없이 자기 머릿속으로 진행된 얘기를 불쑥하곤 합니다. 처음 보는 사이에서 상대방이 인사를 시도했는데, 자기 앞에 마음에 드는 사물에 대한 얘기를 갑자기 하는 식이죠.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주제가 달라지거나 여러 주제를 한꺼번에 말하거나 핵심적이지 않은 단어에 꽂혀 대화가 새는 일도 흔합니다. 상대방의 의도는 물론이고, 자신을 향하는 언어적·비언어적 신호도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게 두 번째 증상입니다. 시끄러운 곳에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해야 상대방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SCD 환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비슷한 톤으로 얘기하곤 합니다. 지수혁 교수는 "아이나 어른, 친구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하는 방식은 모두 달라야 한다"라며 "SCD라면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의사소통 스타일을 잘 못 바꾼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다소 딱딱한 문어체로 높낮이 없이 얘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의사소통 규칙을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했으면 직접적인 질문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이야기할 차례죠. 그러나 SCD환자는 암묵적인 의사소통 규칙을 몰라 아무 대답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했더라도, 더 쉬운 말로 바꿔 다시 한번 얘기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듣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말하는 도중 '응?' 등 언어적·비언어적 행동을 취했을 때도 고개를 끄덕이는 등 상대방에게 듣고 있다고 표현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돌려 말하기, 관용구, 농담, 은유, 문맥에 따른 다중적 의미 등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속뜻을 모르고 문자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 엉뚱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이런 네 가지 증상들이 나타나지만, 인지 능력은 좋다 보니 매우 이성적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죠. 환자 본인은 답답한데, 주변 사람들조차 이해해주지 못하니 사회활동에 지장이 생깁니다. 지수혁 교수는 "아직 질환으로 정의된 지 10년도 채 안 돼 연구된 게 많이 없어, 원인 등 명확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면서도 "선천적인 질환으로,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형성된 만 4세 이전엔 알아채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때 알아채고 치료하면 예후 좋아
모든 질환이 그렇듯, SCD도 빨리 알아채고 치료해야 예후가 좋습니다. 지수혁 교수는 "아무래도 어릴 땐 주변에서 받아들여 주는 환경이 더 너그럽지만, 점점 그렇지 않게 된다"며 "SCD는 인지능력이 좋으므로 사회적 의사소통 규칙을 공부해 익힐 수 있는데, 어릴 때 시작할수록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더 길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은 만 3세쯤 형성되는데요. 이때부터 SCD 성향이 있는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 표정, 의도 등 반응을 읽는 능력 발달이 떨어지는 게 보입니다. 책을 읽어주면 언어를 학습하는 능력은 좋지만, 줄거리 전체적인 맥락을 보기보단 특정 상황이나 부분에만 집중해 이해하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짓말, 농담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사소한 장난을 칠 때도 하나하나 따지거나 과도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감정 표현은 격한 편인데요. 화가 날 땐 자신의 감정에 빠져들어 과격하고 충동적으로 표현하고, 행복할 땐 쉽게 흥분하고 과도하게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보통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합니다. 지난 4월 방송된 채널 A '금쪽같은 내새끼' 95화에서 오은영 박사에게 SCD 진단받은 금쪽이는 "친구 100명 갖고 싶어요"라며 "같이 놀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어요. 부끄러워서. 대화가 잘 안 돼요. 그래서 저는 혼자 놀아요"라고 말하기도 했죠. 계속해서 친구와 이야기가 안 통하는 경험을 하면서 점점 사회생활엔 소극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선 타고난 성격이 쑥스러움을 잘 타는 아이, 주변 상황에 관심이 없는 아이, 눈치 없는 아이로 간주하곤 합니다. 지수혁 교수는 "보호자는 우리 아이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언어 발달 자체가 지연되기도 하고, 또래 친구와 문제가 생기고, 학교나 다른 아이들에게서 벗어나있고, 아이와 대화하면서도 요점이 어긋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SCD는 원래 자폐스펙트럼 장애에서 시작된 질환인데요. 비슷하지만 자폐스펙트럼 장애 환자와 달리 반복되고 제한적인 몸짓이나 행동을 보이진 않습니다. 이 차이점 때문에 새로운 진단 질환으로 분류됐습니다. 아직 의료계에서는 SCD를 경증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언어·사회적 치료로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 학습
SCD 환자는 아무래도 인지 능력은 정상이라 학습과 관련된 과제는 잘 해냅니다. 그래서 매우 늦게 진단받거나, 성인이 돼서도 치료받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 없이는 사회적 상황의 맥락을 익히거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발달시키긴 어렵습니다. 보통 치료는 언어 치료와 사회적 치료로 진행됩니다. 언어 치료는 사회적 의사소통 규칙을 공부하듯 배우는 건데요. 대화의 시작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화자와 청자 교대는 언제 이뤄지는지, 언어마다 의도된 의미가 어떤 게 있는지,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려면 어떤 몸짓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익히게 됩니다. 사회적 치료는 보통 여러 명이 함께 모여 진행합니다. 시선, 표정, 동작, 자세, 목소리 톤 등으로 다른 사람의 의도나 뜻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웁니다. 보호자는 사진에 나타난 표정을 이해하도록 돕거나, 상황이나 그림 등을 제시해 다른 사람이 한 행동과 말로 감정이나 의도를 생각하도록 교육할 수 있습니다. 지수혁 교수는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은 없다"면서도 "우울증 등 이차적 정신건강의학적 문제가 생긴다면 질환에 맞는 약물 치료는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주변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오해하기 전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세요. 또 지금까지 다룬 증상이 본인 이야기 같다면 진료를 한번 받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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