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인터뷰>

위암 1기를 진단받았다가 1년 뒤 간 전이가 나타나 위암 4기로 병기가 조정된 유승만(67·서울 관악구)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예상보다 암 투병 과정이 길어졌지만, 평소 좋아하던 요리와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치료 받아 이제는 건강히 살고 계십니다. 유씨의 주치의인 중앙대광명병원 외과 박중민 교수도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미지
유승만씨(오른쪽)와 그의 주치의인 중앙대광명병원 외과 박중민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1기에서 4기로…
2014년 12월, 유승만씨는 건강 검진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2cm의 작은 덩어리가 발견됐습니다. 정밀검사를 실시한 결과, 위암 1기였습니다. 암을 진단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하필 나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암을 부정하면서 며칠간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내 ‘암에 걸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 왔구나’라는 생각에,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조기에 발견한 게 다행이니 치료를 열심히 받자’라는 다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약해졌던 마음을 굳게 먹고 암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듬해 1월, 위 3분의 2와 림프절을 잘라내는 로봇 위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금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암은 거기서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받은 그 해의 12월, 간 초음파 검사에서 6cm의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간 전이였습니다. 위암 1기에서 4기로 병기가 조정되었습니다. 위암 1기 환자의 생존율은 90% 이상이지만, 4기의 경우 10%로 크게 떨어집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미 이전에 생긴 종양인데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료하지 못한 건 아닌지 의심도 했습니다. 그래서 6개월 전 시행했던 검사 사진까지 받아와 스스로 비교해보기까지 했습니다. 의료진의 잘못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운이 안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이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암을 이기게 해준 ‘여행의 꿈’
2016년 1월, 개복수술로 간의 40%를 잘라냈습니다. 2월부터 8월까지는 총 열두 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항암 치료 기간 동안, 유씨 역시 여느 환자들처럼 체력 저하, 구역·구토, 설사, 구내염 등의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암 자체보다도 이런 증상들이 유씨를 더 괴롭게 했습니다. 죽기 살기로 버텼습니다. 그 와중에 유씨를 달래주었던 것은 ‘여행의 추억’이었습니다. ‘빨리 나아서 또 다시 여행을 떠나리라’는 다짐 덕분에 힘든 항암 치료 과정을 견뎠습니다. 유승만씨는 암에 걸리기 이전부터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면서 총 68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로 여행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명소가 아닌 자신만의 명소를 찾아내는 데에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암 치료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생존율이 낮은 4기이지만, 나만은 예외다’라고 곱씹었습니다.


여행에 대한 간절함 덕분이었을까요. 항암 치료 후 다행히 또 다른 전이나 재발 없이 2019년 12월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유승만씨>


이미지
유승만씨./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암을 진단 받기 전에는 애주가인데다가 애연가였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명예퇴직을 했는데, 이후 시작한 사업에서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암을 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암을 진단 받은 후에는 술, 담배, 스트레스만은 멀리 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상치 못한 간 전이까지 겪고 나서는 정기적인 건강 검진의 중요성에 대해 주변 분들에게도 널리 알리려 애씁니다.”

-치료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습니다. 항암제가 투여될 때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몸의 모든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운전을 못해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오갔는데, 계단을 오를 때면 난간을 꼭 잡아야 겨우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입 안이 헐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괴로웠고, 그 좋아하던 커피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서 한동안 마시지를 못했습니다. 설사가 계속돼 항문이 헐기도 했습니다. 안 아픈 곳이 없다는 말이 적합할 정도로,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항암제 투여 후 4~5일이 지나 증상이 좀 완화되나 싶으면 또 항암 치료를 받을 때가 돼 이 악순환을 6개월간 반복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항암 치료 중 오히려 7kg가 찌셨다는데?
“토하면서도 살려고 열심히 먹었습니다. 꼭 살아야만 했습니다. 가보지 않은 곳이,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잘 먹기 위해 ‘한식 요리사 자격증’ 경험을 살려 열심히 요리했습니다. 튼실한 돼지고기 앞다리 살로 수육을 만들어 매 끼니 때마다 7~8점씩 꼭 먹었습니다. 규칙적으로 먹었고, 제 시간에 먹었습니다. 전라도가 고향인지라 맵고 짠 음식에 입이 길들여져 있었는데, 이런 습관도 버렸습니다. 싱겁게, 덜 달게, 덜 맵게 먹으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그토록 좋아하신다는 해외여행, 다녀오셨나요?
“완치 판정을 받기 전 2017년 6월에 중학교 동창 50명과 함께 12박 13일 동안 캐나다와 미 서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입니다. 2018년도에는 중국 장가계에 다녀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치료 받으면서도 잘 먹었기 때문에 체력은 문제없었습니다. 이후에는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잠시 중단했지만, 며칠 후에 드디어 오키나와에 갑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내년 1월에는 또 미 서부에 가기로 계획돼 있습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여러 나라의 문화를 느끼고 맛보고 싶습니다.”



이미지
2017년 다녀온 미국 서부 여행(왼쪽)과 2018년 중국 장가계 여행에서 찍은 사진./유승만씨 제공
-여행을 왜 좋아하시나요?
“제가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입니다. 세 딸이 모두 독립했고, 일에서도 해방돼 온전한 제 삶을 찾았습니다. 삶의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는 게 제게는 여행이었습니다. 암과 싸우는 중에도 여행의 추억이 저를 먹여 살렸고, 여행에 대한 기대로 의지를 다졌습니다. 요즘은 친구들도 만나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해외여행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즐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암 진단 후에 생긴 습관인데, 하루에 만보씩 근처 공원을 걷습니다.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에서 오는 행복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금 암과 싸우고 계신 모든 분들이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는 우리가 느껴야 할 즐거움이 곳곳에 너무나도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행복을 떠올리시면서 암을 잘 무찌르시길 바랍니다!”


<유승만씨 주치의 박중민 중앙대광명병원 외과 교수>


이미지
박중민 중앙대광명병원 외과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국내 위암 치료 성적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위암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기검진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됩니다. 현재는 그 중요성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국가 암 검진 사업 등으로 인해 위암 1기에 진단받는 경우가 6~70%에 달합니다. 위암은 조기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생존율이 90% 이상인 암 종입니다. 수술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이전에는 대부분 개복수술로 진행됐으나 요즘에는 복강경 수술, 로봇 수술 등 최소 침습 수술이 주로 진행됩니다. 대장암, 유방암, 난소암 등의 암 종보다는 더디지만 효과 좋은 항암제도 계속 개발되고 있는 중입니다.”

-위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학적인 치료를 잘 받는 건 기본이고, 유승만씨처럼 영양이 부족하지 않게 음식을 잘 챙겨먹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위생적이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위 절제수술을 받은 이후나 회복 과정일 때에는 먹는 양과 식사 습관을 개선해야 합니다. 과식, 과도한 지방이나 섬유질은 피해야 소화기능에 도움이 됩니다. 또 평소 먹는 양보다 조금 덜 먹어야 위에 부담이 덜 수 있습니다. 발암물질로 잘 알려진 햄이나 소시지 등 가공식품, 탄 음식은 무조건 피하세요.”

-유승만씨가 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봤다는 것입니다. 술, 담배, 스트레스를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하셨고 실천하셨습니다. 마음이 복잡하셨을 텐데 담담하게 치료 받고 꾸준히 생활습관을 개선하셨습니다. 이런 노력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의학적인 치료는 의료진의 몫이지만, 건강 습관은 스스로 개선해야 예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완치 이전이라 할지라도,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시며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간 모습은 모범 사례로 꼽히는 부분입니다.”


-투병 중이신 위암 환자분들께 한 마디.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강조된 말을 인용하자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유승만씨는 1기 진단 후 간 전이가 발생해 4기가 되었을 때, 저에 대한 실망감을 내비치기도 하셨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유씨는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시 한 번 저를 믿고 치료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런 유씨를 위해 ‘어떻게 하면 치료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을까’ 저 또한 많이 고뇌하며 치료에 임했습니다. 위암 4기는 1기보다 생존율이 현저히 낮지만, 치료 잘 받고, 잘 먹고, 잘 견디며 노력하면 유씨처럼 완치에 다다를 수 있는 병입니다. 막연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마음을 꺾지 마세요. 의료진과 함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외롭고 힘드시죠?
암 환자 지친 마음 달래는 힐링 편지부터, 극복한 이들의 노하우까지!
포털에서 '아미랑'을 검색하시면, 암 뉴스레터 무료로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