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초기 폐암, 칼 없이 방사선으로 수술한다"

오상훈 헬스조선 기자

[전문의에게 묻다]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공문규 교수

이미지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공문규 교수./사진=경희의료원 제공
부동의 암 사망률 1위는 폐암이다. ‘2021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한 해 10만명 당 36.8명이 폐암으로 사망했다. 간암(20.0명), 대장암(17.5명), 위암(14.1명), 췌장암(13.5명)이 뒤를 이었다. 폐암은 증상이 없다. 그래서 3, 4기에 진단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때는 수술이 어렵다. 정기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해야 하는 까닭이다. 초기 폐암 수술법은 외과적 절제술과 방사선 수술로 나뉜다. 효과는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방사선 수술을 받는 환자는 많지 않다. 초기 폐암 방사선 수술에 대해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공문규 교수에게 물었다.

-폐암이 암 사망률 1위인 까닭은?
증상이 없어서다. 있더라도 기침, 가래 등 비특이적인 증상만 나타난다.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는데 병기로 따지면 3, 4기다. 3기는 완치율이 20%정도고 4기는 5%밖에 안 되므로 폐암은 10명 중 2명만 완치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대다수 환자는 오랜 흡연 등으로 이미 폐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진단된다. 폐기능이 떨어지면 적극적인 치료는 어렵다.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사망률을 높이고 있다고 본다. 조기 발견이 중요한 까닭이다.

-폐암 치료법엔 무엇이 있나?
폐암은 크게 비소세포폐암이랑 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비소세포폐암이 전체 약 80%를 차지한다. 1기에서 2기 초기까지는 전통적으로 외과적 수술을 많이 시행하고 최근엔 방사선 수술이 증가하는 추세다. 2기 후기엔 외과적 수술과 보조 항암 화학요법을 적용한다. 3기 초기엔 방사선 치료에 보조 항암 화학요법을 주로 시행하는데 경우에 따라선 외과적 수술을 적용하기도 한다. 3기 후기엔 방사선 치료와 보조 항암 화학요법을 적용하고 4기엔 암이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이므로 항암 화학요법만 시행한다.


-방사선 치료와 수술의 차이는 무엇인가?
방사선은 굉장히 강한 에너지로 DNA 사슬을 깨뜨린다. DNA 사슬이 깨진 암세포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방사선 치료란 약한 방사선을 암세포에 여러 번 조사하는 것이다. 암세포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며 보통 25회 이상 반복한다. 반면, 방사선 수술은 강한 방사선을 한 번에 조사해서 칼로 잘라내듯 종양을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과거엔 방사선이 암세포가 아니라 주변 정상 조직까지 타격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방사선 수술이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엔 장비의 발전으로 정확도가 올라가면서 암만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게 됐다. 

-방사선 수술의 예후는 어떤가?
수천 편의 후향적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초기 폐암에 있어서 방사선 수술은 외과적 절제술과 비교했을 때 환자의 생존율은 비슷하고 부작용은 적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까지 방사선 수술을 받았던 환자는 외과적 절제술을 받을 수 없었던 환자들이라는 점이다. 임상에서 건강하고 폐기능이 좋은 환자들은 외과적 절제술을 받지만 당뇨, 고혈압 등 기저 질환이나 고령으로 마취할 수 없는 환자들은 방사선 수술을 받는다. 건강 상태가 안 좋던 사람들이 건강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생존율을 보였다는 건 방사선 수술의 효과가 예상보다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 뒤 후향적 연구가 아니라 무작위로 그룹을 나눈 뒤 외과적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과 방사선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예후를 비교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2015년경에 발표됐는데 방사선 수술의 효과가 유의미하게 높았고 부작용 발생률 역시 우수했다.



이미지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공문규 교수./사진=경희의료원 제공
-방사선 수술이 표준 치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학계에서도 초기 폐암의 표준 치료에 외과적 절제술을 내리고 방사선 수술을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연구는 표본이 적었다. 그룹당 35명밖에 안 됐기 때문에 수십 년간 시행해 왔던 표준 치료를 바꾸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 대규모 연구가 2개 진행 중이다. 하나는 2024년 나머지 하나는 2027년에 발표될 예정이다.

-환자들의 선호도는 어떤가?
해외 환자들에게 직접 물어본 연구 결과가 있다. 2020년 영국에서 초기 폐암 환자들에게 치료법의 종류와 예후 등을 설명한 뒤 어떤 치료를 받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41%는 방사선 수술을, 18%는 외과적 수술을 선택했다. 효과는 비슷한데 하나는 마취하고 가슴을 열며 출혈이 심하고 입원 기간도 일주일 이상이다. 나머지 하나는 당일 수술한 뒤 퇴원하고 통증도 없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도 비슷한가?
연구 결과는 없지만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환자들의 선택권이 없다는 데 있다. 일단 의사들이 방사선 수술에 대해 잘 모른다. 알고 있더라도 의료계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건강하고 젊은 초기 폐암 환자들에겐 외과적 절제술에 대해서만 말한다. 외과적 절제술을 받지 못할 만큼 나이가 많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두 번째 옵션으로 방사선 수술을 권유한다. 대다수는 그렇게 방사선 수술대에 오른다.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환자가 직접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가?
초기 폐암 환자에게 두 가지 치료 옵션을 다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젊고 건강한 사람들도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치료받고 완치될 수 있는데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의사가 ‘외과적으로 잘라내야 합니다’라고 하면 환자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방사선 수술에도 제한이 있나? 
제아무리 초기 폐암이라도 폐기능이 너무 안 좋으면 시행할 수 없다. 다만 외과적 절제술보다는 그 한계치가 높은 편이다. 또 암세포가 식도에 근접해 있다면 어렵다. 식도가 방사선에 굉장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방사선을 조사하다가 식도 조직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웬만하면 적용할 수 있다.

-방사선 수술은 어떻게 진행되나?
방사선 수술은 계획을 수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수술용 시뮬레이션 CT로 정상 조직은 피하면서 종양만 타격하는 방향, 각도, 세기를 미리 설정해야 한다. 이때 호흡에 따른 종양의 움직임까지 고려해야 한다. 환자가 숨을 쉬면 폐가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는데 거기에 따라 종양도 위아래로 2cm 정도 움직인다. 시뮬레이션으로 이상적인 계획을 수립해도 실제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긴장한 환자가 호흡을 흐트러뜨리는 경우가 있다. 5mm 이상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아야 하므로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다.

-움직이는 게 문제면 전신마취를 해도 되지 않나?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마취는 하지 않는다. 마취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약 40%의 환자가 폐암 초기인데도 외과적 절제술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기저질환, 고령으로 인한 전신마취 위험성 때문이다. 움직임을 차단하려고 마취를 하는 건 가혹하다. 방사선 수술은 환자 교육이 가능하고 협조가 잘되는 상황에서 하는 게 안전하다.



이미지

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공문규 교수./사진=경희의료원 제공
-방사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없나?
없다. 아무 느낌이 없다고 말하는 게 맞다. 아침에 입원해서 피 검사하고 상태 보고 양호하면 수술을 시작한다. 보통 10시쯤 수술하면 11시 30분쯤 끝난다. 그다음 병실에 올라가서 상태를 본다. 환자는 오후 3~4시면 퇴원한다. 침습이 없으니까 그만큼 환자의 후유증도 없다.

-방사선 수술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없나?
산소 공급이 안 되는 암세포는 방사선에 저항성을 가진다. 그런데 당뇨병에 의한 고혈당은 혈액순환을 방해해 암세포에 산소가 덜 가게 한다.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교 연구를 해봤다. 그랬더니 혈당이 잘 관리된 환자에 비해 그렇지 않은 환자는 방사선 치료 이후 암이 재발하는 비율도 높았다. 관련 논문을 2편 썼지만 당뇨병이 방사선 수술에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이 외에 특정 유전적 기질이 암세포로 하여금 방사선에 저항하게 한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방사선 수술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해진 건 없다.


-방사선 수술은 장비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던데?
중요하다. 그러나 장비만 중요한 건 아니다. 로봇 수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전해 로봇팔이 종양을 제거한다고 해도 결국 의료기기를 컨트롤하는 건 의사다. 만약 장비만 중요했다면 어떤 외과 의사가 수술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방사선 수술도 마찬가지다. 암의 위치를 파악하고 호흡에 따른 종양의 움직임을 계산하며 방사선의 적절한 방향, 세기, 각도와 회피해야 하는 구조물을 결정하는 건 의사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경험과 숙련도다. 방사선 수술은 숙련도가 없으면 시행조차 못 한다.

-폐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조기 발견이다. 조기에 발견해야 방사선 수술이든 수술적 절제든 할 수 있다. 폐암 검진 국가 권고 사항은 1년에 한 번씩 일반 엑스레이를 찍는 것이다. 여기서 이상 소견이 보이면 그다음 단계로 CT를 찍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55세 이상이면서 흡연자라면 일반 엑스레이에서 정상 소견이 나와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저선량 흉부 CT를 찍어보는 게 좋다고 권고한다. 


헬스조선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