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일반
[아미랑] 완치율은 세계 최고인데… 붕괴된 소아암 진료 체계
김서희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10/18 08:50
“제가 사는 춘천에는 대학병원이 두 곳이나 있지만 백혈병을 치료하는 교수가 없어 서울로 치료받으러 다닙니다. 아이가 미열만 나도 서울로 가야 해요.”
백혈병을 앓는 자녀를 둔 A씨(40·강원도 춘천)의 고충입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아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대부분 거주 지역을 떠나 서울·경기 등 다른 지역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소아암(소아·청소년암)이란 0~18세에서 많이 일어나는 암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백혈병, 뇌종양, 호지킨림프종, 골암 등이 흔한데요.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3월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제4차 암 관리 종합 계획’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소아암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해 환자와 가족이 의사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국 소아암 전문의 ‘67명’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전국 소아암 전문의는 67명입니다. 전공의 지원율은 2018년 101%(정원 대비)였지만 2019년 94.2%로 미달되기 시작해 올해는 28.1%로 급락했습니다. 출산율이 계속 줄어드는 동시에 업무 강도 또한 높아서 소아과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습니다. 소아암 진료 의사는 소위 ‘3D 직종’라 불립니다. 고강도 항암 치료를 받아 면역기능이 떨어진 상태라서 환자들의 위급 상황이 많고, 보호자의 원망 섞인 소송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문의 67명 중 31명이 10년 내 은퇴, 14명이 5년 내 은퇴 예정인 것을 고려하면 진료 공백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관계자는 “지금부터 준비해도 유능한 소아혈액종양 즉 소아암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빨라도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료비가 낮은 것도 문제입니다. 동일한 항암 치료를 받더라도 소아 환자(입원일수 6일 기준 약 135만원)는 성인 환자(약 249만원)에 비해 진료비가 절반 수준으로 적습니다.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과 이준아 교수는 “아이들이라서 체구가 작아 성인에 비해 약을 적게 쓰고,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매출이 적다고 여길 수 있다”며 “그래서 병원 차원의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있는 의료진은 수도권 밀집
그나마 있는 67명의 전문의 중 절반이 서울·경기 지역에 밀집돼 있습니다. 비수도권에서는 항암 치료는 물론 기본적인 처치를 받기 위해 5~6시간씩 이동해 서울로 향해야 합니다. 이는 암 환자와 가족들의 경제적·신체적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가족이 붕괴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준아 교수는 “진료한 환자들 중 아이의 간호를 위해 부모 중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재정난의 악순환에 노출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말합니다.
권역별 거점 병원 만들어야
소아암 환자를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국가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소아암 진료 인력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문의 인력난은 가중될 것입니다. 관련 의료진은 “국가 기반 시설에 준하는 필수체계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소아암 거점병원을 만들어 전국 어디서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아암이 암 정책 사안, 소아청소년과 질환, 희귀 질환 중 그 어떤 것에도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일본은 ‘소아 만성 특정 질환’ 의료비 조성 계획에 모든 소아암 질환을 포함시켰습니다. 일본 정부와 각 현은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현립 어린이병원과 거점 소아암병원에 1년에 200억~300억원의 운영비를 제공합니다. 미국의 경우 2023년까지 소아암 치료에 연간 3000만 달러 지원을 승인한 상태입니다. 이준아 교수는 “소아암을 필수 중증 의료에 포함시키려 노력 중이지만, 전문의들이 전공의 대신 당직까지 서야 하는 현실에서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붕괴되기 시작한 소아암 진료체계. 지금이라도 서둘러 개선해야 아이들이 안전하게 치료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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