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질까지 낮추는 HPV… 남성도 백신 접종 의무화?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12세 이상 남아 대상 HPV 백신 접종 대안으로 떠올라 비용 대비 효과 낮아… 무료 접종 가능성 불투명

▲ HPV​는 남성 건강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준다. 위의 사진은 HPV 백신 남성 접종의 필요성을 홍보한 방송인 조세호, 유병재. /MSD 제공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부터 12세 이상 여아에게만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고 있다. HPV가 흔하게 유발하는 자궁경부암이 여성에게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HPV에 감염되더라도 자궁경부암만큼 치명적인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접종 대상에서 제외됐다. 23일 개최된 'HPV 예방대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HPV가 남성에게도 음경암, 정자 질 저하 등 치명적인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며 “남성도 HPV 백신 접종을 의무화 해야 한다”고 했다.

◇HPV=자궁경부암? 남성 건강에도 악영향
HPV 감염자 대부분이 자궁경부암, 질 종양 환자다 보니 남성은 HPV에 감염돼도, 백신을 맞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HPV는 성별과 상관없이 두경부암, 성기 사마귀, 항문암을 일으키며, 남성 생식능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실제 HPV로 인한 남성 성기 사마귀 발병률은 여성보다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빅데이터 분석을 보면, 최근 10년(2010~2019)간 남성 성기 사마귀 환자는 2만953건에서 6만295건으로 약 300%가 증가했다. 성기 사마귀 수술 시행 건수도 여성은 1만3144건에서 2만1155건으로 약 1만 건이 증가했으나, 남성은 2만1711건에서 7만8846건으로 5만건 이상이 증가했다.

HPV는 치명률이 높은 음경암 환자 수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경암 환자 수는 많지는 않으나 216명에서 324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음경암이 서혜림프절로 전이된 경우, 5년 생존율은 30~50%, 장골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5년 생존율은 20% 미만이다.

HPV는 남성 정자의 질을 저하해 난임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톨릭의대 비뇨의학교실 배상락 교수는 "정액 검사에서 HPV 바이러스가 검출된 남성은 정자 운동성이 감소했다"며 "뿐만 아니라 HPV 감염 정자는 여성의 질 내에서 ‘항정자항체’가 HPV 비감염군에 비해 증가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했다. 정자 운동성 감소와 항정자항체 증가는 남성 난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배상락 교수는 “남성 HPV 감염 질환은 늘고 있다"라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불임과 난임은 남성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남성 HPV 접종 외치는 전문가들… 실현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남성 HPV 백신 접종으로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HPV 백신의 생식기 사마귀 예방 효과가 99%, 항문 상피 내 종양 예방 효과는 77.5%이기 때문이다.

HPV 백신은 이미 HPV에 감염돼 질이 떨어진 정자의 운동성도 개선한다. 배상락 교수는 "백신 접종 후 자연 임신과 정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보면, 백신 접종 후 정자 운동성은 증가하고, 자연 임신율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성에게도 HPV 백신 무료접종이 시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질병관리청이 2019년 발표한 'HPV 백신 국가예방접종 대상 확대방안' 연구를 보면, 12세 이상 남아 대상 HPV 백신 접종의 비용대비 효과는 여야의 1/8수준이다. 당시 연시 연구를 진행한 질병관리본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2018년 기준 12세 남아 24만 명을 대상으로 HPV 백신을 접종했을 때 투입비용은 450억 원이 소요되나 HPV 관련 질병비용은 200억 원이라고 밝혔다. 절감 가능한 최대비용은 투여비용의 50%에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HPV 백신 무료접종 12세 이상 남성까지 확대'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관리과 권근용 과장은 "두경부암, 음경암 등 HPV로 인한 위험이 증가함을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라며 "정부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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