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보내는 편지>

환자들이 때가 되어 돌아가실 때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그 중 가장 축복받은 건 지상에서의 마지막을 편안히 보내는 분들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진통제를 쓰지 않아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환자들을 보며 ‘고통은 결코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는구나’라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임종의 순간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죽기 직전 평화로운 ‘스완송’을 아시나요
몇 년 전 난소암으로 난소와 자궁을 적출한 어떤 환자가 있었습니다. 수술 후 1년 즈음 지났을 때 암이 재발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난소 주위는 물론, 골반뼈와 간과 폐에도 암세포가 전이돼 있었습니다. 암센터에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보호자와 함께 대전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온몸이 퉁퉁 붓는데다가 배에는 복수가 차서 만삭 때보다 배가 더 불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에 간 지 3일 만에 복수가 다 빠지고 진통제를 맞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고통이 사그라졌습니다. 제가 그 환자를 문병 갔을 때, 보호자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를 보며 저는 보호자에게 “이번 주와 다음 주를 잘 지켜보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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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박사의 작품, <두물머리에서 행복한 시간> 33.4X53.0cm Acrylic on Canvas, 2020​

스완송(swan song). 백조의 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조가 죽기 직전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일컫는 말로, 예술인들의 마지막 기량 발휘를 의미합니다. 암 환자의 경우에서라면 임종 직전 완쾌가 돼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걸 말하지요. 그 환자의 상태가 좋아진 게 백조의 노래인지, 아니면 진짜로 기적이 일어난 일인지는 1~2주 안에 판명날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모든 것을 비워 버리고 겸허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놀랄 만큼 평온하고 의식도 또렷합니다. 남아 있는 자식 걱정, 살고자 하는 미련까지도 모두 잊어버리면 평화가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이런 ‘놓아버림’ 때문에 좋아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육체를 넘어 영적인 세계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그 환자는 여전히 상태가 좋았습니다. 백조의 노래라는 판단이 섰지만, 어쨌거나 마지막을 고통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 역시 크나큰 축복이라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다음 주, 환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눈부시게 보내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보호자는 제게 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전해주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편히 갔습니다.”

남겨질 이들에게 축복의 말을
환자가 고통 없이 편히 가는 것만큼 남아있는 가족에게 큰 축복은 없습니다. 환자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남기고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임종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마지막을 미리 예감합니다. 마지막을 예감하면 여러 가지 준비를 시작하지요. 목욕을 시켜달라고 하거나, 이런저런 축복과 감사의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얘기하기도 하고요. 가능하다면 정신이 맑고 의식이 있을 때 모든 준비를 끝내는 게 좋습니다.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나 친구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 놓는 방법도 좋지요. 남겨질 가족들에게 사랑을 남기고 가면, 가족들은 그 사랑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그동안 도와줘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당신과 함께해서 고마워요. 행복했습니다.” 남겨질 이들에게 축복이 넘치는 말들을 해주세요. 그러면 그들은 빈자리를 슬퍼하기보다 남기고 간 사랑을 기억하고, 앞으로 다시 만날 날이 기약할 겁니다.


그러나 가끔은 불행하게도 인격적인 죽음을 맞지 못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죽는다”라고 저주나 비난을 하면서 죽어갑니다. 남겨진 가족들도 고통이고, 떠나는 본인도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겁니다. 화해할 일이 있으면 얼른 하세요. 싸운 사람, 원한 맺힌 사람이 있으면 빨리 마음을 풀어 놓으세요.

환자 위해 보호자도 달라져야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에게 임종의 시간이 다가오면 대충 짐작을 합니다. 보호자들은 임종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의사에게 미리 부탁을 해놓으세요. 준비 없이 황망하게 보내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보호자들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위로하고 투병을 격려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마음으로 서서히 보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통곡하거나 까무러치는 행동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삶에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태도는 운명을 담담하면서도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에는 서로를 축복하면서 지상의 마지막 햇살을 함께 감사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비구름 사이 희미하게 보이는 햇살에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어김없이 오늘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