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헬스컷] 아픔마저 잊는 ‘알츠하이머’… 간질환보다 사망률 높다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4/26 17:00
식이·위생 상태 문제로 합병증 사망
알츠하이머 사망률 많게는 15% 이상
조기발견해 적극 치료해야 사망 막아
치매에 걸리면 눈앞의 모든 것, 심지어 내 자신조차 생소해집니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은 점점 저하되고, 말기에는 몸이 너무 아픔에도 아픈 게 무엇인지, 아프다는 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치매를 아픈 병이 아닌 ‘슬픈 병’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치매의 대표적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입니다. 전체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치매 증상을 보입니다. 최근에는 한국인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이 과거보다 수십 배 이상 높아졌다는 발표도 나왔습니다. 그저 기억을 잃게 되는 병인 줄 알았는데,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에 이르는 이유는 뭘까요.
◇알츠하이머, 한국인 사망 원인 7위… 지난해 7500여명 사망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 등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 세포가 퇴화되고 인지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질환입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은 14.7%(인구 10만 명당 14.7명)였습니다. 약 7500명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은 2000년 0.3%에 불과했으나 매년 증가세를 이어왔고, 20년 만에 50배 가까이 높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뇌혈관질환(2000년 73.6%, 2020년 42.6%) ▲당뇨병(2000년 22.7%, 2020년 16.5%) ▲간질환(2000년 23.0%, 2020년 13.6%) 등의 사망률이 줄어든 것과 대비됩니다. 2020년만 놓고 보면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이 간질환보다 높았으며 당뇨병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은 한국인 10대 사망 원인(▲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 ▲자살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간질환 ▲고혈압성질환 ▲패혈증) 중 7위에 올라있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은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이 20.5%로, 남성보다(8.8%) 월등히 높았습니다. 남성은 알츠하이머병이 10대 사망원이 순위 밖이었지만, 여성은 5위를 차지했습니다.
◇알츠하이머 합병증, 사망에 직접적 영향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사망하고, 또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걸까요. 먼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이유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사망은 대부분 질환 자체보다는 합병증이 원인이 됩니다.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할 경우 인지 기능과 함께 신체 기능이 점점 저하되고, 외부 활동도 급격히 줄어듭니다. 심해지면 식이·위생 상태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저질환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알츠하이머병을 앓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병, 예를 들어 폐렴, 요로감염 등과 같은 질환들이 발생해 사망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알츠하이머병과 다른 질환들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해외에서도 알츠하이머 사망률을 5~7%, 많게는 15%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강성훈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치매가 발생해 말기에 이르면 운동기능이 떨어지면서 합병증에 취약해진다”며 “‘아프다’는 표현을 못하다보니, 심혈관질환, 폐렴 등과 같은 질환이 발생하고 악화돼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령화·진단 증가… 환자 수 2년새 7.5만명 늘어
최근 알츠하이머병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고령화’입니다. 퇴행성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노화가 주요 원인입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857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6.6%를 차지합니다.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20.6%까지 확대돼 초고령 사회(고령인구 비중 20% 이상)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알츠하이머병 환자도 늘고 있습니다. 중앙치매센터 ‘대한민국 치매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는 2018년 75만488명에서 2020년 84만191명으로 2년새 10만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 중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 또한 55만9214명에서 63만4394명으로 7~8만명가량 증가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알츠하이머병은 생소한 질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질환에 대한 정보가 늘고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하고 병원에서 진단받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강성훈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과거에도 국내에 환자들이 있었다”며 “병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면서 진단받는 환자 수가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인지기능 떨어져도… 신체기능 유지해 합병증 예방해야
국내 알츠하이머병 환자 수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고령화는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며, 그럴수록 알츠하이머병 진단도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단기간 급격하게 사망률을 줄이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질환이 그랬듯, 예방·치료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향후 치료법들이 개발될 경우 사망률 역시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과학자와 기업들이 치료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 또한 언젠가 개발될 수 있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현재로써는 중증화와 합병증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강성훈 교수는 “사망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알츠하이머병을 조기 발견한 후, 약물·인지재활치료, 생활습관 교정 등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며 “이미 중증화돼 인지기능이 저하됐어도,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신체기능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