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향적이면 현대 음악, 사교성 좋으면 순수 음악
노래 부르거나 연주하면 효과 더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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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철

답답하고, 기운 빠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날 혹은 그저 화가 나는 날, 이 감정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주변 사람에게 토로해도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드물고, 사실 본인조차도 이 감정의 근원이나 해결책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음악을 들어보자. 음악은 본인보다도 본인을 잘 알게 해주는 도구다.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음악, 감정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답답하기만 했던 감정이 완화되면서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질 수 있다. 뇌가 변하기 때문이다. 재활 과학과 신경 과학을 전공한 토론토 대학 음대 마이클 타웃(Michael Thaut) 교수 연구팀은 선호하는 음악을 드는 것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기 치매 환자 14명에게 3주 동안 하루 한 시간 음악을 듣게 했다. 연구팀은 환자들이 음악을 듣는 동안 MRI(자기공명 영상장치)로 뇌를 관찰했고, 전전두엽 피질의 활성이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했다. 전전두엽 피질은 의사 결정, 사회적 행동 조절, 성격 표현 등 복잡한 정신 행동 계획이 일어나는 곳이다. 특히 새로운 노래보다 익숙하고 본인이 선호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 전전두엽 피질이 크게 활성화했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전두엽 피질 회로 기능이 억제되고, 불안, 공포 등의 감정에 개입하는 편도체 기능이 활성화된다"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전전두엽 피질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편도체와 전전두엽 회로의 균형이 맞춰지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음악 자체가 끓어오르는 감정은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자율신경계 중 몸을 이완하는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혈압이 낮아지고 마음이 안정된다. 조서은 교수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대뇌 겉질 신경계가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좌뇌와 우뇌 신경망 사이 연결이 불활성화되는데 음악을 들으면 신경계는 활성화되고, 신경망은 통합돼 보다 균형 있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서도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약만큼 효과적인 것은 아니고, 보조적인 치료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성격에 따라 효과적인 음악 달라
슬플 때, 화날 때 사람마다 들었을 때 더 효과적인 음악은 다르다. 감정 완화를 위해서는 선호하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성격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명예 연구원 데이비드 그린버그(David Greenberg) 박사 연구팀은 6개 대륙에 걸친 50개국 이상에 거주하는 35만명을 대상으로 23가지 음악 장르에 대한 선호도와 성격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한 뒤 분석했다. 16가지 서로 다른 장르와 하위 장르의 짧은 음악 클립을 듣고 순위도 매기게 했다. 연구팀은 음악을 5가지 범주로 나눈 뒤, 연관성을 확인했다. 음악은 ▲Mellow(그윽) : 소프트 락, R&B, 로맨틱한 가사, 느린 비트 ▲Intense(강렬) : 펑크, 클래식 락, 헤비메탈, 파워 팝 등 크고 공격적인 노래 ▲Contemporary(현대) : 신나는 일렉트로니카, 랩, 라틴이나 유럽풍 팝 ▲Sophisticated(교양) : 클래식, 오페라, 재즈  ▲Unpretentious(순수) : 컨트리 음악 등 편안한 노래 등으로 나눴다. 분석 결과, 비교적 외향적인 사람은 현대 음악, 성실한 사람은 순수한 음악,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그윽한 음악과 순수한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방적인 사람은 그윽한 음악, 강렬한 음악, 교양있는 음악 그리고 현대 음악 모두를 좋아하는 경향성이 있었다. 그린버그 박사는 "음악과 성격 사이 관련 패턴이 전 세계적으로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이 놀라웠다"며 "슬플 때 누군가는 슬픈 음악을, 누군가는 기분 전환을 위한 경쾌한 음악을 듣는 등 성격에 따라 사람들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도 이번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 부르거나 리듬 타면 더 효과적
딱히 선호하는 노래가 없다면 심박수와 비슷한 속도의 69~80 bpm 노래를 들으면 된다.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는 "인간의 뇌는 전기 신호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는 신경 다발로 이뤄져 있어, 정보가 전달될 때 파동이 발생한다"며 "그중 8~12Hz 주파수의 알파파를 보일 때 정신이 안정되고 집중도와 활성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박수와 비슷한 음악을 들으면 알파파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ASMR을 들었을 때 안정이 느껴지는 이유도 한껏 빨라져 있는 파형을 알파파 정도로 느리게 낮춰주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더 효과적인 음악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는 실제 환자 치료법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현정 교수 연구팀은 2015년 연구 결과에서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2번 1시간 이상 음악치료를 시행했더니 일상생활척도검사(S-IADL), 불안 정도를 검사하는 단출형 노인 우울 척도(GDS), 벡 불안 척도검사(BAI)에서 유의미한 호전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한현정 교수는 "실제로 10년간 음악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뇌에 종합적인 자극을 줄 수 있어 효과도 높고, 참여하는 환자의 만족감도 높다"며 "음악 치료에 인지 운동을 더했더니 인지 능력까지 도와진 것으로 나타난 연구 결과를 재작년 발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음악 치료는 환자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핸드벨, 소고 등 타악기로 리듬과 박자를 맞추는 식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