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헬스장서 욕 하면서 운동하는 사람들… 과학적 이유 있다?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3/31 17:00
욕 하면 체력 높아진다는 英 연구 나와
아드레날린 분비 등 직접적인 효과 확인 어려워
습관 되면 효과 글쎄… 강도 심해져 위험
헬스장에서 가끔씩 ‘욕 소리’인지 ‘곡소리’인지 모를 괴성을 듣게 된다. 엄연한 공공장소임에도 대놓고, 그것도 큰 소리로 괴성을 지르곤 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날은 소리를 내뱉는 이의 ‘중량 치는 날(기구 무게를 올려 운동하는 날)’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욕이나 고함은 운동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욕하며 운동했을 때 체력 증가해”… 英 연구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결과가 나왔다. 실험심리학 계간지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특정 행동을 할 때 욕설을 하면 자신감으로 인해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하고 체력 또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킬 대학 리처드 스티븐 박사 연구팀은 학부생 174명을 대상으로 욕설이 신체활동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했다. 참가자들은 ‘의자를 이용한 팔굽혀펴기(의자에 앉아 두 팔로 지탱한 채 엉덩이를 떼는 동작)’ 동작을 취했으며, 이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욕을 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동작을 유지하는 시간을 측정·비교했다. 또한 가상으로 풍선을 부는 테스트인 ‘BART(Balloon Analogue Risk Task)’를 통해 욕설을 내뱉을 때 위험을 감수하는 정도를 파악했다.
연구결과, 참가자들은 욕설을 반복할 때 팔굽혀펴기 동작을 더 오래 수행했으며, BART를 할 때도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8%가량 증가했다. 스티븐 박사는 “욕설은 일상적인 두려움과 우려를 가볍게 여기는 데 도움이 되곤 한다”며 “이는 실험에서 알 수 있듯 일부 상황에서 이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할 때 욕하면 아드레날린 증가? 확인 어려워
실제 힘든 체력·근력 운동 등을 해보면 한 번씩 ‘욕이 나오는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운동 중 힘 들 때 크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덕분에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실일까.
일단 운동을 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은 맞다.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위기 상황 등에 적응할 때 주로 분비되며, 같은 이유로 운동량이 많을 때도 아드레날린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이는 고강도 운동을 했기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욕을 내뱉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 자체가 아드레날린 분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해도, 실험을 통해 욕 하는 순간에 생기는 아드레날린 분비량 변화를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운동능력 높이려면… 욕 대신 ‘할 수 있어’ 자기 암시를
욕이 아닌 문장, 자기 암시로 범위를 넓히면 운동 능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스포츠 경기에서 경기를 앞둔 선수들이 모여 경기에 대한 다짐을 하거나 자기 암시, 기도를 하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고려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준형 교수는 “운동 수행 직전에 ‘넌 할 수 있어’와 같은 특정 문장이나 단어를 되뇌었을 때 운동 수행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 사실”이라며 “다만 이 같은 행위가 순간적으로 아드레날린 분비에 미치는 영향은 파악하기 어렵고, 연구 결과 또한 없다”고 말했다.
◇욕 효과 있어도… 습관 되면 위험
리처드 스티븐 박사의 ‘욕’ 관련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전에도 욕이 우리 몸에 주는 이점에 대해 연구하고 관련 내용을 발표해왔다. 욕을 하면 고통을 더 오래 참을 수 있다거나,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결과대로 욕설이 의외의 이점을 가졌다고 해도 매번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해서도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욕을 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힘들 때 욕을 내뱉는 행동이 습관화되면 거리낌 없이 아무 곳에서나 욕을 내뱉고 욕의 강도 또한 심해질 수 있다. 욕을 하는 행위에서 나아가 폭력, 기물 파손 등 더 과격한 행위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스티븐 박사 역시 욕을 남용할 경우에는 효과를 볼 수 없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욕보다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다. 김준형 교수는 “홀로 욕을 하는 것이 분노·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개인차가 크고 욕이 아니더라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영상을 보거나, 신체를 이완할 수 있는 요가를 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