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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 탈모된다는데… 단순 속설일까?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3/17 17:00
운동, 탈모 유발할 만큼 남성호르몬 수치 높이지 못해
'대머리는 강하다'
애니메이션, 게임 등 수많은 매체에서 강한 대머리 캐럭터들이 인기를 얻으며 나온 속설 중 하나다. 로니콜먼, 드웨인 존슨 등 현실에서도 비슷한 인물들이 실재해, 설득력까지 얻은 이 속설은 꽤나 신빙성 높아 보이는 근거까지 있다. 남성형 탈모인 안드로겐성 탈모는 남성 호르몬 분비가 많을수록 유발될 가능성이 큰데, 운동은 실제로 남성 호르몬 수치를 높인다. 이쯤 되면 농담처럼 말했던 속설이 진지하게 다가올 법하다. 혹시 정말 운동이 탈모를 유발하는 건 아닐까? 안심해도 좋다. 다행히도 대다수 피부과 전문의들은 운동이 탈모를 유발할 확률은 적다고 말한다. 오히려 적당한 운동은 탈모를 예방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유가 뭘까?
◇운동, 탈모 유발할 만큼 호르몬 수치 높이지 않아
먼저 운동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겁먹게 했던 근거부터 살펴보자. 탈모의 90%를 차지하는 안드로겐성 탈모는 남성호르몬에 의해 발생하는 건 맞다. 다만 중간에 한 과정이 더 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모낭에서 5α-환원효소와 반응하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ihydrotestosterone, DHT)이라는 물질로 바뀐다. 탈모는 정확히 말하면 이 DHT라는 물질 유발한다. DHT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모낭을 자극해, 모발이 얇아지거나 빠지게 한다. 메커니즘만 따져보면 운동이 탈모 유발의 시작점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이기 때문에 낙수효과로 당연히 탈모도 더 잘 생길 것만 같다. 이런 연관성 때문에 실제로 관련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하게 운동과 탈모 사이 인과관계를 밝힌 연구 결과는 없다. 고대안산병원 피부과 유화정 교수는 "이론적 가능성을 고려해도 운동으로 없던 탈모가 생길 수는 없다"라며 "모근이 DHT에 반응하는 정도는 유전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지 운동과 탈모 사이 인과관계를 조사한 연구 대부분 유전적으로 탈모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이현주 교수는 "안드로겐성 탈모는 일생 전반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라며 "테스토스테론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운동이 탈모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운동하며 올라간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영구적이지 않다. 운동 중 올랐다가, 운동을 멈추면 다시 서서히 다시 감소한다. 분당서울대 피부과 허창훈 교수는 "근력 운동으로는 탈모에 영향 줄 만큼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올리지는 못한다"면서 "다만, 호르몬 수치를 과도하게 높이는 보조제는 탈모를 악화하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간 고강도 운동, 휴지기 탈모 유발할 수도
다만, 단기간 과도한 고강도 운동을 하면 실제로 머리가 뭉텅뭉텅 빠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때 생기는 탈모는 안드로겐성 탈모가 아닌 휴지기 탈모다. 유화정 교수는 "극심한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무리해서 자기 체중의 10% 이상을 단기간에 빼거나, 수분·영양소 등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다면 스트레스로 코르티솔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 휴지가 탈모가 유발될 수 있다"며 "휴지기 탈모는 이마·정수리부터 나타나는 안드로겐성 탈모와 달리 여러 부위에서 한꺼번에 머리가 빠지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모발은 약 5년의 긴 성장기, 성장이 멈추는 3주 정도의 짧은 퇴행기, 빠질 때까지 모낭의 결합 조직 힘으로 붙어 있는 약 3개월의 휴지기 사이클을 돈다.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로 몸에 변화가 생기면 모낭에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이는 휴지기 모발 수를 늘리고, 모낭이 모발을 제대로 잡고 있지 못하게 해 우수수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한다. 유화정 교수는 "과도한 운동으로 몸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약 3~4개월 뒤에 휴지기 탈모가 유발될 수 있다"며 "원인이 없어지면 대부분 다시 3~4개월에 걸쳐 회복되는데, 원인을 해결했는데도 6개월 이상 탈모가 지속한다면 전문의를 찾아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성 탈모는 운동해야 지연돼
안드로겐성 탈모 가족력이 있다면 적당한 운동이 오히려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이현주 교수는 "과하지 않은 운동은 신진대사를 활성화해, 두피 쪽으로 영양소와 산소를 싣고 가는 혈류량을 늘려 탈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운동이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인자들도 늘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운동을 해야 안드로겐성 탈모가 예방된다는 연구도 많다. 2020년 중국에서 진행된 안드로겐성 탈모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60분 이상 운동을 하도록 했더니, 탈모가 지연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2009~2011년 시행된 일란성 쌍둥이 49쌍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운동 부족인 사람은 정수리 탈모 진행이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안드로겐성 탈모는 한번 진행하면 되돌아갈 수 없어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운동 외에도 탈모 예방을 위해서는 생활 습관 교정과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 식단은 모근으로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도록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한 균형 잡힌 식사를 끼니에 맞춰 먹어야 한다. 두피는 깨끗이 씻어 피지 등 노폐물이 모공을 막지 않도록 해야 탈모를 예방할 수 있다. 허창훈 교수는 "정수리 모발이 가늘어지고, 약해지는 것 같을 때 병원을 방문해 조기치료를 받으면 남성은 99% 정도 모발량을 지킬 수 있다"며 "여성은 쓸 약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조기 치료를 받으면 70%는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