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가장 아름다운 시절… '이대녀'는 왜 우울할까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2/09 17:39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 우울증·자살 시도 빨간불
혼자 살며 직업 불안정한 20대 여성 고위험군
영우먼 보살피는 사회 프로그램 필요
돌이켜보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20대. 그런데, 20대 여성들(이대녀)의 마음이 아프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간한 '2021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20대 여성 우울감 인지율은 2020년 8.9%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다. 여성의 스트레스 인지율도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여성의 정신건강은 단순히 우울감 뿐만이 아니다. 우울증 진료 환자수에도 드러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우울증 진료인원은 25~29세 여성 환자가 3만9850명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우울증은 자살을 부르는 원인이기도 한데, 2020년 응급실에 실려온 전체 자살 시도자 5명 가운데 1명이 20대 여성이었다는 충격적인 보건복지부 통계가 있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2017년부터 여성 우울증·자살 시도가 늘었고, 코로나 이후 증폭됐다"고 말했다.
◇단순히 호르몬 때문만 아냐
여성들이 남성보다 원래 우울증이 2배 정도 많은 것은 맞는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희 과장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생리·임신·폐경 등 호르몬의 변화가 많기 때문에 우울증 등 기분 장애가 더 많은 것으로 의학계에는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생물학적 요인’만 가지고는 최근 5년 간의 변화가 설명되지 않는다. ‘사회적 요인’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현수 교수는 "지난 5년 간 N번방 사건과 같은 여성 성착취물 범죄, 설리·구하라 등 유명인의 악플에 의한 자살, 유리천장 등 여러 사회적 요인이 우울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차별적인 요소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해도, 아직 사회가 여성들의 자유로운 삶을 받아들여주지 않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잔재하며,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는 절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20대’의 특성도 주목할 수 있다.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김진세 원장은 “20대는 학교 졸업을 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등 변화가 큰 시기”라며 “과거 세대만 해도 결혼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나이에 외출 제한 등 묶여 생활하는 것도 우울감을 유발한다. 김 원장은 “여성들은 남성보다 관계지향적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으면서 더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 살며 직업 불안정한 20대 여성이 고위험군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분석에 따르면 20대 여성 중에서도 우울증과 자살 시도 고위험군은 서울에 혼자 살고 있는, 대학에 다니지 않으며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고, 직업이 불안정한 여성이다. 이들은 코로나 이후로 알바나 취업 자리가 줄고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워지자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 시도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서울에 1인 가구는 20대 여성이 가장 많다. 김현수 교수는 “부모들은 아들과 달리 딸은 혼자 살아도 밥을 잘 챙겨 먹고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정이나 사회의 이런 ‘소극적 챙김’이 20대 여성들을 더 외롭게 한다”고 말했다.
10대 여학생들도 주목해야 한다. 10대의 문제가 20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10대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은 편”이라며 “외모도 좋아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여학생들이 훨씬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영우먼' 마음 건강 보살피는 프로그램 마련 돼야
김현수 교수는 ‘영우먼’을 위한 사회 시설과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는 2020년 20대 여성의 마음건강을 챙기고 생명을 살리는 모임인 '시스터스 키퍼스'를 발족했지만, 젠더갈등의 이유로 지금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김 교수는 “20대 여성의 우울 예방 프로그램을 지자체나 여성 공공 단체에서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며 “지금까지 대부분 중년 여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많았다”고 했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다. 여학생의 자존감을 높이고, 성평등을 위한 개입 등 교육의 역할이 절실하다. 10대 때 절망감·우울감이 20대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이런 교육은 학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평생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사회의 역할을 넘어서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다는 것.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우울감이 심하다면 적극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사회적 프로그램이 ‘예방’ ‘재발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당장 마음이 아플 때는 개인 스스로 병원 문을 두드려야 한다.
김진세 원장은 “하루 거의 대부분 우울한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병원에 와야 한다”며 “우울감과 함께 불면증·식욕장애·무기력 등이 동반되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앞선 서울시 성인지 통계에서 20대 여성이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는데, 운동은 우울증에 약만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진세 원장은 “운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감이 심하다면 치료 먼저 해야겠지만,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