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환경과 병원·운동시설 접근성 등 종합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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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도별 기대수명 격차는 2.2년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보다 0.5년가량 줄어든 수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인간의 수명은 타고난 건강 상태와 함께 여러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사고, 환경, 직업 등은 인과관계로 맞물려 수명에 영향을 주며, 지역은 이 같은 외부요인을 포괄하는 한 가지 큰 요인이 된다. 문제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에 의해 만들어진 요인임에도 지역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 간 수명 격차를 해소하는 일에 지역사회뿐 아닌 사회 전체적인 관심과 협조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지난해 시도별 기대수명 격차 2.2년, 작다고 볼 수 없어
이달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 시도별 기대수명(남녀 전체)은 ▲서울 84.8년 ▲​세종 84.4년 ▲제주 84.0년 순으로 높았으며 ▲경북 82.6년 ▲충북 82.6년 순으로 낮았다. 기대수명이란 출생 후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로, 지난해 시도 간 기대수명 차이는 최대 2.2년이었다.

표면적인 수치만 보면 ‘2.2년’이 작은 격차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표본(인구 수)이 많은 광역시·도 특성상 기본적으로 지역 간에 큰 차이를 보이기 어렵고, 지역 내 시군구 간의 경우에는 더 큰 차이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서울과 충북·경북 간 기대수명 격차가 2.2년이라고 해도, 서울 내에서 가장 기대수명이 높은 곳과 충북 내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낮은 곳의 격차는 이보다 클 수밖에 없다.

국내 수명 증가 폭이나 국가 간 기대수명 격차 등과 수치를 비교해 봐도 2.2년이 적은 격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전남대 예방의학과 신민호 교수는 “기대수명 격차가 크거나 작다고 판단할 만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면서도 “다만 우리나라의 전체 기대수명 증가폭(2020년 기준 전년 대비 0.2년 증가)과 OECD회원국 중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일본과의 격차(남성 1.1년, 여성 1.2년) 등을 고려한다면 표면적인 수치만큼 작은 격차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새 0.5년 줄었지만… 서울과 지방 격차 여전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는 ▲2011년 2.6년(서울 82.7년, 충북 80.1년) ▲2014년 2.3년(서울 83.6년, 울산 81.3년) ▲2017년 2.2년(서울 84.1년, 부산·충북·경남 81.9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줄고 있다. 문제는 격차는 줄고 있으나 조사 때마다 특정 지역의 기대수명이 계속해서 높거나 낮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 두 가지 특정 요인이 아닌, 지역 내 다양한 요인들이 종합·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기명 교수는 “수명 격차는 종합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 복합적 현상이자 지표”라며 “보건의료정책뿐 아니라 주거 환경과 병원·운동시설 등에 대한 접근성, 사고 예방이 가능한 환경, 지리적 특성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계명대 공중보건학과 박진욱 교수 또한 “출생·성장 과정에서 본다면, 임신·출산 과정부터 영유아 시기 부모·지역사회·시설의 보육환경, 학령기 학교 환경, 건강한 생활 습관을 얻게 되는 환경 등 지역 내 삶을 둘러싼 대부분 환경이 수명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적인 측면에서는 지역 별 의료 서비스·접근성에 개인의 경제적 여건 차이가 더해지면서 기대수명 격차가 벌어지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신민호 교수는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면 1차적으로 질병 발생 위험도가 높고, 2차적으로는 질병을 빨리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3차적으로는 질병을 갖게 된 후 관리가 어려워진다”며 “의료 격차 문제는 지역 의료 서비스 격차 외에 지역 간 소득 격차, 개인의 경제적 여건 차이도 함께 영향을 미친 결과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지역 간 수명 격차 더 벌어질 수도”
기대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태생적 요인, 즉 타고난 건강상 문제는 의료 기술 발전과 함께 점차 극복 가능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반면 여러 외부요인은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지역별로 이를 해결하는 능력에 따라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는 좁혀지거나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현재보다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기명 교수는 “여러 요인이 있는 만큼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를 쉽게 예상할 수는 없다”면서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지고 이 같은 양상이 지역 간 불평등까지 확대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정도로 기대수명을 포함한 건강 불평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역과 지역, 특히 도시와 시골 간 생활 격차가 커질수록 수명 격차 또한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민호 교수는 “의료 접근성, 인프라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직까지는 도시와 농촌 간 기대수명 격차를 줄이는 요인보다는 늘릴 수 있는 요인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과 같은 수명 격차가 유지되거나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수명 격차는 형평성 문제… “누구나 기대수명 누려야”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 문제는 ‘형평성’의 문제기도 하다. 특정 지역에서 태어나거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 하루라도 수명에 영향을 받는다면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보다 많은 연구와 지원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진욱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최고 수준의 기대수명을 누릴 권리는 지역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있다”며 “건강 수준이 좋지 못한 지역의 수명을 끌어올리는 일은 사회 전체적인 건강 수준, 기대수명을 높이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특성과 위험 요인 등을 연구·관리하는 동시에, 사회 구성원의 건강관리에 대해 관련 전문가나 의료 기관은 물론, 개개인, 중앙 정부, 지자체 등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명 교수는 “건강 격차는 보건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라며 “전문가뿐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고, 지역 보건, 사회복지, 주거 환경 모니터링·개선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