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불면... 노인들만의 우울 증세 따로 있다"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우울증 명의’ 고려대 구로병원 한창수 교수



 



우울증은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을 넘어 살고자 하는 의지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특히 그 대상이 노인처럼 정서적·신체적으로 쇠약한 상태라면 더욱 무서운 기세로 심신을 파고든다. 실제 우울감에 빠진 노인들은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한다. 문제는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로 이 같은 ‘증상’을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인 우울증은 정신적인 문제는 물론, 환자 삶의 질 자체를 저하시키고 자살과 같은 심각한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평소 주요 증상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적극적으로 검사·치료에 임할 필요가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를 만나 ‘노인우울증’에 대해 들었다.


▲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노인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노인우울증은 젊은 시절에 생긴 우울증이 노년기까지 이어지는 경우와 나이가 든 후에 우울증이 발생한 경우로 구분된다. 보통 노인우울증이라고 하면 후자에 해당한다. 젊은 나이에 생긴 우울증이 60·70대까지 이어졌다면 우울증이 반복됐거나 만성적으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지속된 우울증 때문에 사회·경제활동이나 가족관계에도 영향을 받는다. 또한 만성적으로 신경에 염증이 진행된 것과 마찬가지다보니, 기억력, 감정조절 등 인지기능이 떨어져있는 경우도 많다. 나이가 들어 생긴 우울증의 경우 노년기 경제력·체력 저하, 신체질환, 가족과의 이별, 외로움 등이 주요 원인이다. 때문에 노인우울증 환자를 만날 때는 가장 먼저 환자의 신체 상태를 확인하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우울증, 불안, 수면 등 마음 상태의 변화를 진단한다.

-국내 노인우울증 환자는 증가 추세인가?
최근 보건복지부가 조사·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정신건강 실태에 따르면 우울증 증가율은 20·30대가 가장 높다. 그러나 전체 환자 수를 살펴보면 60대 이상 노인층이 훨씬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는 환자 또한 노인 인구가 훨씬 많다. 코로나19 발생 후, 최근 2~3년 동안에도 전체 우울증 환자 중 노인 환자 비중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코로나19는 우리가 오래 전부터 예상해온 사회의 개인화, 고립화, 인터넷을 통한 간접연결의 활성화 등과 같은 변화를 앞당겼다. 또한 모두가 전망하듯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안정기에 접어들어도, 화상회의 시스템과 온라인 업무 등 지금의 변화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젊은 층의 경우 이 같은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온라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사회적 고립감이 점차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행위 자체가 극단적으로 제한돼, 운동량, 일광 노출이 부족해지고 전반적인 신체 건강상태도 악화됐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이어져온 가족과의 만남도 줄어들다보니, 외로움이 증가하고 노인우울증이 늘어나는 원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는 노인들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계속해서 줄 것으로 예상한다.

▲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노인우울증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을 보이나?
노인의 경우 일반 성인에게 나타나는 우울증과 대표되는 증상이 다르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초기 우울증 증상은 심한 피곤함과 무기력감이다. 여기서 더 진행돼 우울, 불안 증세가 나타나면 진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노인은 우울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을 ‘나이가 들어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몸 이곳저곳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부위에 통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로 인해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으면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인우울증 환자의 경우 이 같은 신경성 신체증상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치매가 아님에도 기억력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다만, 이를 노인우울증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변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질문이나 눈여겨 볼만한 말·행동·상황이 있다면?
평소에 습관적으로 자주 하는 말보다는 행동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전보다 말 수가 급격히 줄거나, 다른 생각을 많이 하고 집중을 하지 못해 말을 잘 이어가지 못하는 식이다. 또한 감정 변화와 인지기능 변화, 감정조절 능력 등을 함께 확인해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님이 다니는 내과, 가정의학과 등 동네 단골 병원을 함께 방문해 주치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함께 가보면, 전부터 해당 병원 의사로부터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권유받은 노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노인의 경우 본인이 우울증 가능성이 있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받았어도, 자식들한테 피해가 된다고 생각해 그때그때 증상을 완화하는 약만 처방받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노인우울증이 신체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하는지?
우울증이 발생할 경우, 통증을 다스리는 대표적 신경 호르몬인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에도 변화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요통, 치통, 두통이 생기거나 심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노인의 경우 신경 호르몬 균형이 깨진 후 돌아오는 ‘자기회복력’이 낮기 때문에, 통증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로 인해 만성통증, 소화불량, 변비 증상 등이 장기간 이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우울증을 함께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당뇨병, 심장병 등이 있는 경우에는 신체 상태가 더욱 약해져 이 같은 미세한 신경호르몬 변화에도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반대로 암과 같은 신체질환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기도 한다. 실제 종합병원 내과에서도 신체 상태를 진단할 때 우울증, 스트레스 정도를 함께 파악하고 있다.

-치매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연관성이 있다. 과거에도 노인이면서 우울증이 있는 경우 기억력, 집중력, 언어능력, 감정조절능력 등과 같은 전반적인 뇌 인지 기능이 조금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뇌 인지 기능 중 한 가지 능력이 부족해도 치매 진단을 내릴 수 있는데, 특히 노인우울증 환자의 경우 집중력과 기억력 등이 먼저 저하됐다. 이들에 대한 국내외 추적 관찰 결과를 분석해 봐도, 우울증을 오래 앓은 환자일수록 기억력을 비롯한 뇌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치매로 진행되는 속도 또한 빨랐다.

-노인우울증 환자는 뇌 기능·활동에도 변화가 생기나?
우울증이 오래된 노인은 뇌 앞쪽 ‘대상회’ 기능이 떨어진다. 대상회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등 사고를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대상회 기능이 떨어지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부정적인 기분에 빠져들 수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소뇌에도 영향을 미쳐, 신체 운동 기능까지 조금씩 떨어진다.

▲ 노인 우울증은 치매를 비롯한 여러 신체 증상을 동반할 수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떤 치료들이 시행되나?
우울증이 오래 되면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감정을 정상적으로 조절하지 못한다. 명상, 운동 등으로 개선될 수도 있으나, 노인의 경우 이 같은 노력만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때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이 우울증 치료다. 우울증의 표준 치료법은 약물·물리치료와 심리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것으로, 노인우울증 역시 치료법 자체는 일반 성인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약물치료는 세로토닌, 도파민, 아드레날린 등과 같은 신경호르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며, 물리치료는 기존에 다른 부위에 사용됐던 전기자극 치료, 자기장치료 등을 우울증 치료에 개발·사용하는 방법이다. 상담치료는 이 같은 치료를 병행하거나 치료 과정을 마친 후 시행한다. 상담치료 시에는 주로 환자들의 마음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울증을 오래 앓은 노인 환자들과 상담할 때는 본인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치료는 자살과 같이 급성기에 나타날 수 있는 심각한 증상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

-치료 효과는 어떤가?
병이 오래 진행되거나 환자의 연령이 높을수록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대부분 질환이 마찬가지다. 환자마다 다르지만, 우울증 역시 일반적으로는 노인이 젊은 연령대에 비해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이 오래됐고, 환자가 신체·정신적으로 약해진 상태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료 효과란 100% 완치 가능성을 뜻하는 것으로, 약물, 상담 치료 시 치료 반응이 생기는 것은 젊은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 절반만 치료 반응을 보여도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만큼 증상이 호전된다. 때문에 완치가 어렵다고 해서 치료를 포기해선 안 된다.

특히 노인 우울증 환자는 기본적인 체력과 신경계가 약해져있기 때문에, 당뇨병, 고혈압과 같이 일정 기간 치료를 받아도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병원도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한다.

-최근 치료법에 변화가 있다면?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환경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메타버스, 증강현실 등과 같이 약물치료, 상담치료의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 관련 연구개발이 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에서도 여러 건의 우울증 디지털 치료제 관련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노인들에게 디지털기기나 온라인 사용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젊은 성인에게 먼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추후에는 새로운 기술들이 노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인간과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면?
실제 노인우울증 환자를 만나보면 치료에 대한 의지나 삶의 의지가 없고, 자식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오히려 노인우울증은 당장 목숨을 잃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남은 생을 살아가는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라도 빨리 치료받는 게 좋다. 또한 노인우울증 환자의 경우 대부분 심장질환, 당뇨병 등을 함께 앓고 있기 때문에, 이들 질환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우울증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질환이 악화되거나 치료 기간이 훨씬 길어질 수 있다. 실제 재활의학과에서 통증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경우, 우울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서 통증이 더 심해지고 약물 효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국내 노인 자살 문제 또한 심각하다. 노인우울증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은?
앞서 설명했듯 노인은 뇌 기능이 떨어져 감정 전환, 사고 전환이 잘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우울, 절망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한 번 빠지면, 다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고 치명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만약 극단적인 생각이 든다면 일단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아야 한다. 지금은 호르몬 균형이 깨져 나쁜 생각에만 빠져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치료 과정을 거치다보면 감정조절 능력이 좋아지고 부정적인 감정, 생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노인 스스로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이유라고 해서 특정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사는 데 의미를 두고 자신이 남은 생을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주변 이웃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방을 위해 노인과 가족, 사회 전반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노인 스스로는 인간관계와 신체·정신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인간관계 관리는 남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함께 대화하고 산책할 만한 친구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의 경우 시간이 생기는 대로 걷는 것을 권한다. 몸을 움직이면 전체적인 순환이 잘 되고 신경호르몬도 원활하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쁜 생각을 하게 만드는 호르몬이 줄면서 자살 생각, 우울감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일주일에 최소 3일 이상, 30분~1시간씩 걷는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는 빈도가 현저하게 낮다는 연구도 있다. 걷지 못한다면 베란다에 나가서 햇빛을 보는 것도 좋다.

나이가 들어 건강과 함께 사회적·경제적 능력이 저하되면 자존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게 가족의 역할이다. 옆에서 그동안의 노력이 충분히 도움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노인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매번 부모님을 만나기 어려울 경우 주기적으로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노인은 전화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가족이 노인을 보살필 수는 없다. 때문에 사회에서는 가족들이 노인을 책임지지 못하고 노인 스스로 경제적인 여력을 만들어놓지 못했다고 해도, 관리 받을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한창수 교수는
고려대 의대에서 학, 석사, 박사 학위 및 듀크대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현재 고려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문 진료 분야는 우울증, 스트레스장애, 기억력 장애, 치매 등으로,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학술이사, 대한정신약물학회 연구윤리이사, 세계노인정신의학회 국제대회 사무총장 등 국내외 주요 학회 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질병관리센터 건강검진 질관리 자문위원, 질병통제본부 국가건강영양조사 우울증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수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축적된 경험과 진단·연구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문과 서적을 여러 차례 펴냈고, 마음과 정신 문제를 연구한 의사이자 학자로서 계속해서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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