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약값 비싸서 치료 못 받는 암환자들… 보험재정 한계, 대안은?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위험분담제 유연화 등 급여 확대 새틀 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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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명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시행된 지 5년이 되어간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병원비가 걱정돼 치료하지 못하는 국민이 없게 하겠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약값이 부담돼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다. 문재인 케어는 정말 치료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고 있을까?

◇효과 더 좋은데 급여 안돼 치료 못 하는 환자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이후 비급여 약제의 급여화, 급여 범위 확대가 적극적으로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5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 주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8~2020) 약제 보장성 강화를 통해 764만명이 총 3279억원의 환자 본인부담금을 줄였다. 위험분담제와 경제성 평가 면제 제도 확대로 최근 5년간 항암제 신약 78품목이 급여권에 진입했으며, 항암제 급여 기준이 확대돼 약 8만4000여명이 치료비 2597억원을 절감했다.

그러나 정부의 신약 급여 등재 및 급여확대 속도가 환자의 절박함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효과가 더 좋은 약이 있는데도 효과도 적고 부작용이 더 큰 약으로 먼저 치료를 해야만 보험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는 비소세포폐암 환자가 보험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백금계 항암제인 도세탁셀을 1차 치료제로 사용해야 하는데, 의학적으로는 면역항암제인 펨브롤리주맙을 1차 치료제로 사용했을 때 환자의 5년 이상 장기생존율이 더 높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진석 교수는 "우리나라 폐암 급여기준은 대부분 백금 기반 화학요법 실패 후 면역항암제를 2차 치료제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면역항암제인 펨브롤리주맙이나 아테졸리주맙을 1차 치료제로 사용한 환자의 5년 이상 장기생존율이 훨씬 높다"고 밝혔다. 안진석 교수는 "글로벌 항암치료 가이드라인인 NCCN도 면역항암제 반응지표(PD-L1)가 높을 경우 면역항암제를 먼저 사용하도록 하고 있고, 지표가 낮아도 면역항암제와 항암요법을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항암제 급여기준 확대를 체감하고 있으나 새로운 약은 계속 나오고 있으며, 급여기준이 이를 따라갈 수 있는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면역항암제가 1차 치료제를 보험급여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재정 부담이 상당하겠지만, 의학적 측면에서 면역치료제의 초기 사용은 절실하다"고 밝혔다.

◇급여 확대 노력하지만… 제약사 재정 분담 조율 한계
환자와 의료진의 불만에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추가 비용 분담을 꺼리는 제약사와의 조율이 오래 걸릴 뿐, 정부는 단계적으로 보장성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매년 20~30개 내외 항암제·희귀질환치료제가 보험에 등재되고 있고, 20개 내외 항암제의 급여기준이 확대되면서 혜택을 받는 이들도 늘어났다. 2019년 중증질환 치료 약제 청구액은 2조2000억원으로, 2015년 이후 연평균 18.5% 증가했다.

보건복지부 양윤석 보험약제과장은 "면역항암제의 사례를 보면, 1차 치료제 급여 확대를 위해 제약사에 재정분담 필요성을 수차례 얘기했음에도 분담되지 않아 지난한 논의가 이어졌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과장은 "고가약제는 비용효과성과 임상적 유용성을 당연히 검토할 수밖에 없으며, 제약사와의 적절한 재정분담이 중요한 부분이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애련 약제관리실장도 "면역항암제 1차 치료제 사용 등 고가약제의 급여확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여되는 일이라 비용효과성 검토가 면밀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애련 실장은 "환자 입장에선 부족해 보이나 점차 나아지고 있고, 향후 고가 신약 초고가 약제는 신속히 검사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건보재정으론 한계… 새 틀 짜야
전문가들은 항암제를 비롯한 중증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급여확대를 위해선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계가 있고, 제약사는 재정 분담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급여 확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단 것이다. 안진석 교수는 "우리나라는 암 등 중증질환 환자의 본인부담액이 5%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95%를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한다는 것으로, 재정 부담을 줄이려면 5%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5%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으로 위험분담계약 제도의 유연화,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 선별급여 등을 제안했는데, 학계에서도 이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학계는 특히 위험분담제(RSA)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위험분담제란 약제의 표시가와 별도로 제약사가 보험자에게 약제비 일부분을 환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표시가는 약가를 정할 때 다른 나라의 약가를 참고하는 경향을 이용해 실제보다 더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가 약가를 책정할 때 참고하는 다른 국가들의 약가 역시 표시가로 환급액을 고려한 실제 거래가격은 알 수 없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서동철 교수는 "현재 정부는 약가를 외국보다 낮게 설정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런 제도로 보장성 확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동철 교수는 "보장성을 확대 혹은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원이 있어야 하기에 보험료를 현실화해 재정을 충당하거나 정부에서 조세의 일부를 더 지원하는 방법, 특정질환분야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동철 교수는 "신약의 등재는 정부와 제약회사가 공동으로 결과에 대한 부담을 공유하는 현재의 위험분담제(RSA)를 확대개편하거나 선 등재 후 경제성평가와 같은 새로운 리스크분담제도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융합보건학과 안정훈 교수도 위험분담제 확대를 제안했다. 안정훈 교수는 "위험분담제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보험재정영향 감소를 목적으로 여러 이름으로 시행 중인 제도이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와 달리 위험분담제에 따른 약제비 환급액을 건보공단이 받아 환자에게 환급해주고 있는데, 소득에 따라 저소득층의 고가약제 본인부담액은 줄이고 고소득층의 환급은 줄이는 방향을 고려해볼 만 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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