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SNS가 불 붙이는 ‘청소년 자해’… 취미·트렌드라고?

전종보 헬스조선 기자

청소년 10명 중 1명 자해·자살 생각
스트레스 해소 못해 ‘비자살적 자해’
“자해도 중독”… 주변 관심·협조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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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를 시도·경험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실제 자살 의도가 없음에도 특정 상황이나 감정을 회피하고 긴장을 이완하기 위해 ‘비자살적 자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청소년 자해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자해 또는 자살을 생각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SNS를 통해 자해 후기나 정보를 공유할 만큼 방식이 과감해지고 있음에도 심각성이나 예방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자해는 당사자 의도와 관계없이 생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예방을 위해 청소년은 물론, 가정, 학교 등 전방위적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10명 중 1명 자해·자살 생각… 연령 더욱 어려져

최근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발표한 ‘코로나19 청소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10.2%가 최근 2주 이내에 자해나 자살을 생각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은 만 13세 이상~18세 이하 전국 청소년 570명으로, 남학생 32명, 여학생 26명 등 58명이 지난 2주 간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어떻게든 자해를 하려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있다’고 답했다.

실제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자해 또는 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입원하는 청소년들은 매년 늘고 있다. 자해를 시도·경험하는 연령 또한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으며, 조사에 포함되진 않았으나 만 13세 미만 초등학생들 역시 자해를 시도·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천대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어린 나이 때부터 과도한 학업을 경험하는 반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라며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연령이 낮아질수록 자해를 시도·경험하는 연령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NS 영향 커… ‘자해계’ ‘후기’ 등 모방

최근 발생하는 청소년 자해의 경우 SNS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전과 차이를 보인다. 현재 SNS 상에서는 자해 사진이나 방법, 후기 등을 자세히 공유하는 글과 계정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많은 청소년들은 호기심에 이 같은 글 또는 계정을 접한 뒤 모방하는 식으로 자해를 시도·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이 일상을 공유하듯 SNS를 통해 자해 관련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자해로 인한 피해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승민 교수는 “과거에는 자해 사실을 숨기려했다면, 현재는 자해를 마치 트렌드처럼 받아들이고 취미처럼 표현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며 “SNS 사용 연령이 낮아지면서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자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늘었지만 풀지 못해… 대안으로 자해 선택

전문가에 따르면 많은 청소년들은 자살 의도가 없음에도 특정 상황이나 감정을 회피하고 긴장을 이완하기 위해 ‘비자살적 자해’를 하고 있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 스트레스와 압박감, 불안, 우울 등을 겪고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에 놓이지만, 이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거나 해소 방법 자체를 알지 못해 계속해서 부적절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배승민 교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긴장이 이완되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건강하게 감정을 조절하거나 긴장을 이완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체적 자극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긴장을 이완시키는 행위가 대안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의 심리·신체적 긴장을 유발하는 요인이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이를 정상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여전히 제한됐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이후로는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나 긴장을 풀 수 있는 수단들이 더욱 줄어든 상태다. 배 교수는 “어른의 경우 자율적으로 야외에 나가거나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그나마 해소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학교·학원에 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적고 그마저도 제한됐다”며 “현재로써는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환경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해도 중독돼… 예방 위해 주변 관심·협조 절실”

자해는 더 큰 자극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행위의 강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약물중독, 도박중독 등과도 닮아있다. 때문에 당사자에게 자살 의도가 없어도 자해가 생명에 영향을 줄 위험이 높다. 실제 자해로 인해 의료 처치를 받는 많은 환자들의 경우, 작은 자극으로 시작해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까지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청소년 자해 예방을 위해 청소년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주변의 관심·협조가 반드시 동반돼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보호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이를 숨기기보다 적극적으로 필요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학교에서는 관련 병원 진료를 받는 학생이 친구들의 눈치를 보거나 이로 인해 2차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당사자에 대한 잘못된 낙인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주변에서 부정적인 견해나 언행을 삼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청소년들이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교육·장려하는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 배승민 교수는 “청소년 자해 예방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누적시키지 않고 건강하게 해소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며 “자녀나 학생 등 주변 청소년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를 단순히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으로 보지 말고,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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