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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아니라… 여성이 술 자제할 이유 있다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6/21 16:50
분해효소·체내 수분량 적어… 위·췌장·간질환에 남성보다 취약
술은 성별과 무관하게 성인이면 누구나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여성에게는 임신·출산을 위해 술을 자제해야 한다는 ‘권고’가 주어진다. 여성은 단순히 임신·출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걸까? 여성건강과 음주의 관계를 알아보자.
◇알코올, 남성보다 여성에 악영향
여성이 술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는 임신·출산 때문만은 아니다. 술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치명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위암, 간 질환, 췌장염 등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을 감안해 분석했을 때 남성은 위암과 음주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그러나 여성은 음주하지 않는 사람, 음주를 중단한 사람, 가벼운 음주를 하는 사람, 과음하는 사람 순으로 위암의 발병 위험이 많이 증가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양의 음주로도 만성 간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성인 남성의 경우 매일 40~80g(소주 약 240~480mL)의 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알코올성 간질환의 발생 위험이 커졌는데, 여성은 매일 20g 이상만 마셔도 알코올성 간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췌장염도 여성에게서 더욱 쉽게 발병한다. 췌장염 발생까지의 음주 기간을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은 알코올 노출 후 췌장염 진단까지 약 10년이 걸렸으나, 여성은 급성 췌장염이 6.8년, 만성 췌장염이 9.7년이 걸렸다. 췌장염 발생까지의 음주 기간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짧았다
뇌 건강 측면에서도 여성의 음주피해가 더 크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대진 교수는 "알코올은 다양한 경로로 뇌에 작용해서 신경독성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면 뇌 자체의 용적이 감소하고,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알코올 관련 인지기능 저하는 먼저 알코올성 블랙아웃을 거쳐 알코올성 치매까지 진행되는데, 여성은 알코올 분해시간이 길어 더 오랜 시간 알코올로 인한 신경독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빨리 인지기능 저하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왜 술에 더 취약할까?
여성이 남성보다 술에 약한 이유는 선천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체중이 적고 체지방 비율은 높으며, 체내 수분량도 적다. 또한 위장 점막에 분포하는 알코올 분해효소(알코올탈수소효소)의 수가 적어 일차통과대사(first pass metabolism)율이 낮다.
그러다 보니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음주 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남성보다 높다. 체내 독성물질(아세트알데하이드) 축적으로 인한 질병 위험도 커진다. 알데하이드 분해효소(ALDH2)의 분비가 부족하거나 활성도가 낮은 경우, 알코올 분해 과정의 중간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축적되어 독성 효과를 나타낸다.
김나영 교수는 "유전적으로 알코올의 분해 능력이 낮은 사람이 술을 마시면, 술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전환되고 나서 제대로 분해되지 못하고 쌓이면서 신체에 독성 물질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여성에게 더 많이 축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의 적정 음주량은? "없다"
그렇다면 여성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음주량은 어느 정도일까?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 음주 권고량은 일주일 기준 남성은 14잔 이하(하루 4잔 이하), 여성은 7잔 이하(하루 3잔 이하)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이 기준도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김대진 교수는 "WHO의 기준은 서양인 위주로 산출된 수치라 실제 한국인의 안전 음주 권고량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약 30%가량은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효소 분비 능력이 서양인의 절반 이하이고, 일부는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나영 교수는 "란셋(Lancet)에 보고된 연구 결과, 알코올에 의한 사망률이 여성은 3.8%인데, 마시지 않을 때는 알코올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되는 음주가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익한 알코올이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금주가 최선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세계보건기구 안전한 음주량 권고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특히 알코올 분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개인차를 고려해 음주하는 안전한 음주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