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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부족 시대③] 헌혈률 낮은 외국, 이미 ‘아껴 쓰기’에 적응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헤모글로빈 수치 7g/㎗ 넘으면 수혈 불허
"수혈 줄이니 사망률 감소" 연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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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는 이미 수년 전부터 ‘환자혈액관리(PBM)’를 도입해, 혈액을 적재적소에만 사용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는 명백한 피 부족 국가다. 하지만 헌혈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이다. 2018년 기준 5.6%로, 미국 3.9%(2015년), 프랑스 2.4%(2016년), 핀란드 3.7%(2016년), 싱가포르 2.2%(2016년) 등보다 높다. 이 나라들은 혈액보급량이 부족하진 않을까? 도대체 어떻게 공급하고 있는 걸까?

◇해외에선 이미 자리 잡은 개념 ‘PBM’
‘환자혈액관리(PBM)’라는 개념을 도입해 체계적인 관리로 상당량의 피를 아끼고 있다. 특정 몇몇 나라만 시행하고 있는 게 아닌,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집행위원회(EC) 등에서 2010년부터 세계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개념이다. 2011년에서 2015년 사이 인구 1000명당 적혈구제제 공급량을 보면 호주는 35.8유닛에서 27.0유닛으로, 네덜란드는 32.6유닛에서 25.3유닛으로, 캐나다는 24.1유닛에서 21.1유닛으로 사용량을 줄였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만 역행했다. 40.7유닛에서 41.0유닛으로 오히려 사용량이 늘었다.

특히 PBM 도입에서 선두로 앞서나가는 모범국이 있다. 호주다. 호주는 PBM을 국가 차원에서 도입해 관리하고 있다. 국립혈액기구(NBA)를 설립해 병원이 혈액 적정 사용량을 사용하도록 관리해 폐기율을 감소시켰다. 선제적으로 바꾼 이유는 실험을 통해 PBM이 효율적이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호주는 서호주 병원에서는 수혈량을 줄여 수술하고, 동호주에서는 수혈량을 유지한 채 수술하도록 했다. 그 결과 수혈을 줄인 서호주 병원에서 입원기간, 합병증 유병률, 의료비 등이 모두 줄었다. 실제로 수혈 치료에 대한 정책을 바꾼 이후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원내 사망률 28% 감소 ▲평균 재원일 수 15% 감소 ▲병원 감염 21% 감소 ▲심혈관질환 31% 감소 등의 효과까지 나타났다.

◇PBM, 도입 방법은?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실제로 수술실에서 혈액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선 상황별로 언제 수혈할 수 있는지 명확히 밝힌 의무성 있고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수다.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아서 혈액 절약이 시행되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선 혈액 내 헤모글로빈 수치 7g/㎗ 이하일 때 수혈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의료진에게 상기시켰더니 수혈량이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헤모글로빈 수치가 7g/㎗ 이하로 떨어져야 수혈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권고사항일 뿐 10g/㎗ 미만이면서 이전보다 수치가 10% 이상 감소했다는 기준에만 부합하면 수혈할 수 있다.

심지어 호주에서는 수혈 가이드라인을 아예 PBM가이드라인으로 바꿨다. 출혈, 수술, 중환자 관리, 산과 및 출산, 신생아 및 소아과 등 6가지 과로 나눠 각 경우에 맞는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약 2000여 개 넘는 논문 살펴보고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 단체 수립=가이드라인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감시하고 관리하는 단체가 있어야 한다. 지금 있는 단체인 혈액 뱅크는 혈액을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PBM 단체는 꼭 필요한 혈액만 사용하도록 ‘관리’하는 단체다. 특히 폐기율을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다. 건국대 마취통증의학과 김태엽 교수는 “위험 상황에 대비해 수술 전 피를 수술실에 준비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 수술실로 이송된 혈액은 사용하지 않으면 폐기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폐기되는 양도 엄청나게 많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2017~2019년 동안 폐기된 혈액량은 총 11만 5895유닛이다. 대한적십자사가 고령 수혈자 증가로 2030년에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 적혈구제제 사용량이 5만 유닛인 걸 고려하면 무시하기 힘든 양이다. 폐기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혈액인데도 수술 중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실에 혈액을 공급하기 전 정말 필요한 혈액인지 관리하는 단체가 있다면 이런 경우를 피할 수 있다. 수혈에 대한 데이터를 더 꼼꼼히 관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차후 혈액 관리를 위한 계획도 명확하게 수립할 수 있다.

호주는 NBA, 영국은 국민건강보험(NHS)에서 수혈에 대한 적정성을 평가하고, 의사가 얼마만큼의 혈액을 어떻게 쓰는지 관리한다. 미국도 ‘혈액관리증진협회(SABM)'를 설립해 의사가 수혈할 때 적정량의 피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철분제 요법=수술 전 빈혈인 사람에게 철분 주사제를 처방한다면, 혈액 속 산소 포화도를 높여 수혈량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PBM을 도입한 대부분 나라에서 수술 전에 빈혈 평가를 하도록 하고, 빈혈이라면 철분 주사제 처방 후에 수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철분주사제가 혈액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혈액은 1유닛(400cc)에 5만원 정도인데, 급여라 환자는 이 중 5%인 2500원만 부과하면 된다. 반면, 비급여인 철분 주사제는 제약 회사마다 다르지만, 약 20만원 정도다.

철분제 외에도 조혈제, 지혈제, 영양보충 등으로 수술 전 수혈이 필요하지 않도록 준비한다면 수술 중 수혈량을 줄일 수 있다.

▶자가 수혈=수술 중 흘린 자신의 피를 모아 다시 수혈할 수도 있다. 일명 ’자가 수혈‘로, 수술 중 혈액 회수, 수술 후 혈액 회수, 급성동량혈액희석 등의 방법을 이용한다. 급성동량혈액희석은 환자의 혈액을 채혈해 놓은 뒤 항응고제가 포함된 혈액낭에 혈액을 모으거나, 특정 장치를 사용해 모아놨다가 수술 중 환자에게 자신의 피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수술 중 혈액 회수는 ‘셀 세이버’라는 자가 수혈기를 이용해 수술하면서 흘린 자신의 혈액을 회수해 재투여하는 것이다. ‘셀 세이버’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아직 의료현장에서 많이 쓰이지 않고 있다.

피가 급하게 많이 필요한 중증환자는 자가수혈로 호흡부전, 급성 출혈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환자에게는 오히려 타인의 혈액을 수혈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혈액 샘플링 줄이기=수술 전 환자의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 수많은 혈액 검사를 한다. 미국에서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를 너무 잦고 많은 혈액 샘플링에서 찾았다. 이후 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소 침습수술=최소한의 부위만 잘라 수술을 진행하거나, 지혈제 지혈 기구 등을 수술 중 사용한다면 수술 중에 흘리는 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혈장 가루제=적혈구제제 외에 혈장제제도 낭비되고 있다. 국내 혈장제제는 냉동보관과 해동을 통해 공급하고 있는데, 해동할 때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치료가 지연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과량 처방을 유도하게 된다. 유럽, 호주 등에서는 분말 형태의 혈장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해동 시간이 필요 없어 과량 처방을 방지할 수 있고, 혈장액이 제거돼 수혈에 의한 감염성 질환의 전파도 방지할 수 있다. 혈액형에 따른 구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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