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전화공포증, 이른바 ‘콜 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콜 포비아란 전화 통화를 하는 데 어려움, 두려움 등을 느끼는 것으로, 심한 경우 전화가 오기만 해도 심장이 뛰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등 신체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메신저 사용에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이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자체적인 노력에도 증상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것을 권한다.
◇일상적인 통화조차 그들에겐 ‘두려움’
전화 통화는 하루에도 몇 통씩, 필요에 따라 수십 분 이상도 할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전화 통화로 회의·보고를 하는 등 업무를 보거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매우 평범한 행동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려움을 넘어 두려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바로 ‘콜 포비아(전화 공포증)’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통화하는 것을 어색해할 뿐 아니라, 공포와 기피의 대상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진동 소리가 조금만 길어져도 부담을 느낀다거나, 용기 내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가 받지 않아 회신을 기다려야 할 때 초조함·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소극적인 사람만? 적극적인 사람도 의외로 많이 겪어
‘콜 포비아’라는 개념이 나온 것은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스마트폰과 메신저를 사용해온 사람들이 성인이 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문제와 심각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전화 통화량이 늘면서 본인에게 콜 포비아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는 사람도 많다.
이들을 단순히 ‘전화 받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면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들, 위축된 사람들이 겪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의외로 적극적·외향적이면서 과감한 사람도 콜 포비아를 호소하곤 한다. 가천대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사람들은 본인에 대한 기대가 높다보니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완벽과 실수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경우, 불안의 유형으로 콜 포비아를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콜 포비아 증상은 전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전화 통화에 부담을 느끼는 정도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조함으로 인해 식은땀을 흘리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인 경우 전화 문의·상담·주문, 업무상 통화 등도 아예 불가능해져,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도 지장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배승민 교수는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일도 통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쉬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우울함을 느끼는 악순환으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전화 예절 강조하고 문책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
콜 포비아는 중·장년층보다는 20·30대에서 주로 나타난다. 대면보다는 비대면, 전화 통화보다는 메신저 소통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전화 통화가 어색함을 넘어 불편함이 된 것이다. 배 교수는 “전화는 메신저에 비해 예의가 엄격(업무상)하고 ‘시작과 끝’이라는 절차도 명확하다”며 “상대방과의 호흡도 중요하다보니 어릴 때부터 메신저 사용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전화 통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메신저 사용 외에도 지나치게 예절을 강조하거나, 실수에 엄격한 반응을 보이는 등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분위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많은 사회 초년생들은 첫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로 복잡한 전화·이메일 예절을 꼽곤 한다. 이들 입장에서는 복잡한 예절을 지키는 게 어려울 뿐 아니라, 예절을 지키지 못해 혼나는 것도 두려운 셈이다. 간혹 40·50대 중에도 콜 포비아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 역시 과거 전화 통화 실수와 이로 인한 문책이 트라우마로 작용한 경우가 많다.
◇피하기보다 연습 통해 극복해야
콜 포비아는 그 자체가 정신과적 질환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는 사회불안장애의 한 가지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전화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상담을 받거나 병원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사회불안장애 증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 중 콜 포비아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배승민 교수는 “대면 소통 중 실수에 대한 공포,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 등 사회불안을 보이는 환자 중 전화 통화를 두려워하는 환자들이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콜 포비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습관적으로 전화를 피하기보다 사회적 기술 훈련을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 친한 친구 등 자신이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전화 통화 연습을 하고, 다른 사람과 통화가 힘들다면 혼자서라도 연습해보도록 한다. 공포감이 심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면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게 좋다. 특히 트라우마에 의해 공포감이 생겼다면 상담 치료 등을 통해 트라우마를 지워야 한다. 콜 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인 사전 시나리오 작성 역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지나친 불안감에 시나리오를 여러 개 만들거나 시나리오에 지나치게 의지할 경우, 시나리오가 없으면 전화를 못 받는 등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