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AZ 혈전' 쇼크… "11월 집단면역 불가능"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4/09 10:28
전문가들 "접종 재개해도 지연… 교차접종 등 대안 필요"
정부의 11월 내 집단면역 형성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럽의약품청(EMA)이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19 백신의 혈전 부작용 사례를 검토한 후 접종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보류가 결정된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주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재개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혼란은 여전하다. 과연 연내 집단면역 형성은 가능할까?
◇접종 재개해도 집단면역 형성 이미 늦었다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보류 하루 만에 접종 재개 여부를 이번 주말에 공개하겠다고 했으나, 전문가들은 이미 집단면역 형성 시기는 지연됐다는 공통된 의견을 밝혔다. 당장 이번 주말에 기존과 같은 지침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재개된다 해도 11월 집단면역 형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 집단면역 형성에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9일 기준 2분기 내 우리나라 도입이 확정된 백신 물량은 총 1471만5000회분으로, 이 중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866만8000회분(개별 계약 700만 회분+코백스 166만8000회분)이다. 화이자 백신은 604만7000회분(개별 계약 575만 회분+코백스 29만7000회분)이며, 얀센, 모더나, 노바백스 백신 물량은 확정된 것이 없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김홍빈 감염내과 교수(대한감염학회 특임이사)는 "집단면역은 일정 수준의 인구가 백신 접종을 받아야 형성될 수 있는데, 비중이 가장 높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체할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접종이 중단된 것이기에 당연히 집단면역 형성 시기는 지연"된다고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이미 국민 사이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 백신과 혈전 간 관련이 없다고 해도 백신 접종 필요성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며, 집단 면역 형성은 더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보훈병원 감염내과 김춘관 교수(대한백신학회 총무이사)는 "자연감염이 계속 되고 다른 백신 접종도 진행되고 있기에 접종보류 기간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보류한 기간만큼은 집단면역 형성 시점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1월 집단면역 형성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목표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양대학교병원 김봉영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11월 집단면역 형성 계획에 맞게 백신을 확보했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 확보한 백신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뿐이기에 예상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도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접종까지 보류된 것이기에 집단면역 형성 시기 지연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유럽처럼 연령제한? 집단면역 형성 시기 예측 불가
이러한 상황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지침이 유럽처럼 변경되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자가 가장 많은 우리나라는 연내 집단면역 형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정부의 2분기 코로나 백신 접종 계획만 보더라도, 접종 대상집단 19개 중 17개가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대상이다. 하반기 계획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와 독일은 60세 이상만, 스페인은 60~65세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아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했고, 네덜란드는 60세 미만, 캐나다는 55세 미만 접종을 중단했다. 영국은 30세 미만일 경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외 다른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EMA의 결정을 바탕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재개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을 고령자로 제한한 지침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 역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 연령제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춘관 교수는 "현재 부작용 보고를 보면 30만분의 1의 확률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혈전으로 사망했는데, 아나필락시스 부작용 발생 확률이 100만분의 1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젊은 사람들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을 권고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인과성이 밝혀진 것은 없으나, 혈전 부작용은 상당히 심각하게 봐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코로나에 감염됐다 해도 30만분의 1의 확률로 사망할 나이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춘관 교수는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60, 70대 이상 고위험군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 게 이익이 더 크기에 접종을 계속해도 된다"고 말했다. 김홍빈 교수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100%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당사자로서 비용, 효과, 코로나 사망위험 등을 따진다면, 접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단,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안전성 검토결과에 따른 전략적인 접종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러시아·중국産 백신, 교차접종까지… 선택지 확대해야
그렇다면 집단면역 형성 지연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집단면역 형성이 더 늦어지지 않게 하려면 다양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중국 시노팜·시노벡도 무작정 배제할 일이 아니며, 혼용 접종까지도 검토해야 하는 위기 상황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홍빈 교수는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일단 다양한 백신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 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러시아, 중국산 백신에 대해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전문가들이 과학적·임상적으로 검증을 한다면, 다양한 옵션 확보 차원으로 가지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코로나 백신도 접종이 확대되면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에,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신 교차접종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확보되진 않았으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 접종만으로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2차 접종에 동일한 백신을 접종한다는 건 비윤리적인 행위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 접종자 중 60세 미만인 사람은 2차 접종 때 다른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김춘관 교수는 "조심스럽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기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1차 접종을 한 사람들도 2차는 화이자의 백신으로 접종하는 방법도 윤리적, 과학적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mRNA인 화이자 백신 특성상 추가 물량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