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슬픈 기억'도 평생 못 잊는 '과잉기억증후군' 환자들

전혜영 헬스조선 기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란 니체의 말, 그들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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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빠짐없이 기억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독일의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망각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있으며, 이성과 욕구의 충동과 모순도 잊어버린다.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현재에 이르러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망각' 기능을 상실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그런 병이 있다. 전 세계에서 80명 남짓 소수가 앓고 있다고 알려진 '과잉기억증후군'이다.

소설이나 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이 병은 실제로 존재한다.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이들은 절대로 '깜빡' 하는 일이 없다. 과거의 지나간 일들이 마치 녹화된 영상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단순히 기억만 남는 건 아니다. 당시 느꼈던 자신의 감정, 기쁨, 슬픔, 분노, 우울 등 여러 감정까지 함께 남는다. 뭐든지 기억한다는 생각에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슬픈 기억까지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전혀 부럽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6년 저명한 뇌과학 분야 학술지 '뉴로케이스(Neurocase)'에 최초로 공식적인 과잉기억증후군 진단을 받은 여성의 사례가 공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제임스 맥거프 박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놀랍게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각종 검사를 거친 결과, 그의 기억 능력은 자서선적인 기억에 치중돼 있었다. 의외로 암기력과 다른 인지능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일화기억의 인출을 담당하는 좌우 대뇌피질의 특정영역이 일반인과 다른 것으로 추측했다.

과잉기억증후군은 원인도,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병이다. 아직도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이 이뤄지는지 정확히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억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일정한 연결 패턴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시냅스'라고 부른다. 언젠가 시냅스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혀낼 수 있다면 인간은 영화처럼 기억을 마음대로 잊어버리거나, 영원히 남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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