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선별검사 늘리고, '치료제 있는 질환' 지원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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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조기진단을 위한 신생아선별검사 확대가 필요하다./게티이미지뱅크

'진단방랑(diagnostic odyssey)'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러가지 신체적·정신적 증상이 있는데도 어떤 병인지 알 수가 없어 전국 병원을 전전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희귀질환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기도 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진단방랑 기간은 최소 1년에서 16년까지 소요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는 적지만 종류는 약 6000~7000개다 보니 진단 자체가 어렵다. 치료제가 있는 질환인데도 조기진단을 받지 못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버린 사례도 부지기수다. 희귀질환의 80%는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조기진단이 가능하지만, 병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증상이 심해진 다음에야 정확한 진단을 받는 식이다. 헬스조선은 '희귀질환의 날'(2월 마지막 날)을 맞아, 대표적인 유전성 희귀질환 중 하나인 리소좀 축적 질환을 통해 희귀질환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살펴봤다.

◇발달관련 질환 혼동 쉬워… 조기진단·치료할 수록 경과 좋아

유전성 희귀질환인 리소좀 축적 질환은 고셔병, 폼페병, 파브리병, 뮤코다당증 등 종류가 다양하다. 종류에 따라 증상과 예후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있다. 출생 직후 또는 영유아기 때부터 반복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거나, 여러 종류의 경중증 질환이 동시에 나타나 다른 발달관련 질환과 혼동하기 쉽다는 것이다.

고셔병의 경우, 간과 비장이 커지고 안구 운동 이상 또는 팔다리의 뼈 통증이 나타난다. 폼페병은 근육 약화 증상 및 근육 효소 수치나 간 수치 등이 높아진다. 파브리병은 손과 발이 타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고, 뮤코다당증은 4~5세부터 성장 발달 지연과 함께 관절이 뻣뻣해지면서 걷는 모양이 이상해지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희귀질환보다는 성장질환을 의심하기 쉬운 증상들이다.

리소좀 축적 질환의 경우, 조기 진단과 치료가 특히 중요하다. 리소좀 축적 질환은 소아 시기부터 병이 진행돼 성인이 되면 병세가 악화되는 진행성 질환인데, 병세가 악화되면 장기 손상까지 이어지고, 한번 손상된 장기는 돌이키기가 어렵다.

실제 뮤코다당증이 있는 형제·자매를 대상으로 진행된 '뮤코다당증 1형 형제·자매 대상 효소대체요법 12년 추적관찰 결과'(2016년)에 따르면, 동시에 치료를 시작했어도 치료 예후가 좋은 것은 동생이었다. 연구대상이었던 누나와 남동생은 같은 시기에 진단을 받아 동시에 치료를 시작했는데, 증상이 없어도 생후 5개월부터 치료를 시작한 남동생이 증상이 발현된 만 5세였던 누나보다 치료 예후가 좋았다. 남동생은 성장률도 정상이고, 다발성골형성부전증 이상소견이 없었던 반면, 누나는 다발성골형성부전증 이상소견을 보였다.

◇희귀질환 조기진단, 신생아선별검사 확대로 가능

임상전문가들은 적어도 치료제가 있는 유전성 희귀질환만이라도 조기진단이 가능하도록 신생아선별검사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신생아선별검사(Newborn screening)란, 정상 신생아에게 시행하는 검사로, 증상이 없더라도 조기에 질환을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정호 교수(대한신생아스크리닝학회 총무이사)는 "리소좀 축적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많은 환자가 증상이 발현된 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확한 진단을 받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을 겪는다"고 말했다. 리소좀 축적 질환은 '효소대체요법'이라는 근본 치료제가 1980년대부터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그럼에도 조기진단을 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에 포함돼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리소좀 축적 질환으로는 고셔병과 뮤코다당증이 있다. 폼페병과 파브리병은 비급여로만 검사가 가능하며, 환자 부담금은 10만원 수준이다.

이정호 교수는 "리소좀 축적 질환 중 일부 일환은 출생 몇 개월 이내에 진행되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치료 시기에 따라 이후 치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기 진단을 위해 신생아 선별 검사 시 리소좀 축적 질환이 고려되어야 하며, 이미 치료제가 개발된 폼페병이나 파브리병 등 질환에 대한 지원을 빠르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