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유전성암 명의’ 고려대 안암병원 이수현 교수
Q. 유전성암이란 무엇인가.
암은 특정 요인에 의해 변이된 유전자가 축적되면서, 자신의 성질을 잃고 무한정 증식하는 상태를 뜻한다. 유전자는 손상된 후에도 복구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여러 암 발생 위험 요인에 영향을 받다보면 손상된 유전자가 복구되지 못하고 축적돼 암이 생긴다.
유전성암은 이와 달리 외부 요인이 없어도 부모로부터 손상된 유전자를 받거나 복구 능력이 저하돼 발생하는 암이다. 쉽게 말해 살아가면서 생기는 유전자 변이가 아닌, 정자와 난자 단계에서부터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어 나타나는 암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유전성 암은 전체 암의 5~10%를 차지하며, 모든 형태의 암으로 발생한다.
Q. 부모나 직계가족으로부터 유전되는 암이라고 보면 되는지.
가족력이 없어도 본인으로부터 유전성암이 시작될 수 있다. 이 경우 본인이 유전성암의 시초가 된다. 또 특정 유전자를 갖지 않았어도 본인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유전성암이 나타날 수 있으며, 같은 유전자를 가진 부모에게 유전성암이 발현되지 않다가 자녀에게서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Q. 유전성암 유발 위험이 있는 변이 유전자는 무엇인가.
APC, MLH1, BRCA1 등이 있으며, 잘 알려진 것 외에도 연구 중인 유전자 포함 수많은 변이 유전자가 있다. 유전자 연구가 발전할수록 알게 되는 유전자들도 많아질 것이다.
Q. 유전자 별로 나타나는 암이 다른가.
특정 유전자 변이가 특정 암을 유발하기보다, 여러 종류의 암을 발생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30대에 MSH2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으면 70세가 됐을 때 대장암 외에도 소화기암방광암이나 신장암이 발생할 확률이 40% 이상 올라간다.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떤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암들이 특정 유전자와 연관될 가능성도 있다.
Q. 유전성암은 어떤 특징을 보이나.
대부분 암은 60대 이후에 주로 나타나지만, 유전성암은 40대나 더 젊은 나이에도 발생할 수 있다. 암 진행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증상이 생긴 후 순식간에 4기까지 발전한 케이스도 있다. 예를 들어 대장암의 경우 대장 내 용종이 암으로 진행되기 까지 보통 10~15년이 걸리지만, 유전성암으로 나타난 경우 2~3년 만에 암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젊은 시기에 암을 발견했다면, 암 유발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의심해볼 수 있다.
Q. 다중암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물론이다. 손상된 유전자가 복구되지 않고 계속 손상되다 보니, 한 가지 암을 치료해도 추후 다른 암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최근 5차례 이상 암 진단과 완치를 반복한 환자가 있었는데,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이 환자의 경우 자녀도 암을 겪고 있었다.
Q. 유전성암일 경우 부모에게 암이 있으면 자녀에게도 동일한 암이 발생하나.
반드시 동일한 암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소인을 물려받지 않아도, 특정 유전자가 손상돼 발생하기도 한다. 반대로 유전자 이상이 아니더라도 같은 암이 발생할 수 있다. 가족 간에는 유사한 생활 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Q.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모두가 암 발생 위험 여부를 알 수 있나.
검사자 중 10%는 특정 유전자가 유전성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50%는 특정 유전자가 있지만, 그 유전자가 암을 유발하진 않는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지만 문제는 없다는 의미다. 이 환자에게 암이 생긴다고 해도, 유전성암으로 볼 수 없다. 남은 40%는 불확실성 변이형(VUS)이다. 특정 변이 유전자가 있지만, 암에 미치는 영향이나 추후 유발 가능성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10%에게만 유전성암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Q. 검사가 필요한 경우는.
▲젊은 나이에 암이 생기거나 한 사람에게서 여러 종류의 암이 발생한 경우 ▲가족 내에 동일한 종류의 암 환자가 많은 경우 ▲직계 가족에게 유전성암이 확인된 경우 ▲암의 가족력 때문에 암 발생이나 암 유전자 변이가 걱정되는 경우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이후 전문의 판단에 따라 NGS 유전자 패널검사를 실시하도록 한다. 또 부부 중 한 사람에게 변이 유전자가 있으면 자녀에게도 있을 확률이 50%에 달하기 때문에, 검사를 통해 변이 유전자가 확인되면 가족 단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직계 가족 중 통상적으로 암이 생기는 나이보다 빨리 암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부터 검사를 하도록 한다.
Q. 본인에게 암 유발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에 의해 자손에게도 암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갖는 환자들이 있다. 그러나 유전성암은 본인 잘못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유전자 이상이 발견됐다면, 자녀에게 고지하고 검사해 미리 발견·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전성암 관련 유전자를 가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유전성암 위험이 있는 경우, 보험 적용도 어려운 실정이다.
Q. 출산 전 자녀에게 변이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을 막을 수 없나.
가능하다. 출산 전 정자와 난자로 수정란을 만든 후 72시간 내에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 검사를 통해 부모와 같은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출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이상이 없는 유전자를 갖게 된다.
문제는 국내법 상 희귀난치성 질환인 ‘APC 유전자 이상에 의한 가족성 용종 증후군’만 합법적인 검사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다른 유전자 이상이 있을 때는 유전성이 명확히 확인됨에도 수정란 검사를 받을 수 없다. 이 경우 해외에서 검사를 받고 임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시간, 비용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한다면 쉽지 않다. 유연하지 못한 법 제도로 인해 자손에게 미치는 리스크를 사전에 조치할 수 없는 셈이다.
Q. 아이는 언제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나. 어린 아이에게도 유전성암이 생길 수 있는지.
아이가 20세가 되면 유전성암에 대해 설명한 후 의지에 따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20세가 된 자녀의 자기 결정권 또는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 검사는 되도록 자녀가 직접 결정하도록 한다. 의외로 원치 않는 자녀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20세 전 어린 아이에게 유전적 요인으로 암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본인에게 유전성암이 있어 자녀의 암 발생 위험 여부를 알고 싶다면 20세에 해도 충분하다.
Q. 다른 암과 치료에도 차이가 있나.
동일하지만 유전성 요인에 의해 추가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유방 한 쪽에만 암이 있지만 다른 한 쪽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또 치료 범위가 달라지거나, 항암 치료를 할 때 면역항암제 사용을 고려기도 한다. 유전자 검사로 암이 의심돼 지속적으로 암 상태를 확인한 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예방 차원에서 하는 수술도 있다.
유전성암은 변이 유전자에 따라 암의 진행 속도와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유전성암 전문의 판단 아래 진단·치료받아야 한다.
Q. 유전자 검사의 가장 큰 이점은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유전자 검사는 100%가 아니더라도 높은 확률로 암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즉시 암을 발견해 치료하기보다, 유발 위험을 확인해 경과를 지켜본 후 관리하고 조기 발견·치료하는 것이 유전자 검사의 목적이다.
따라서 검사를 통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변이 유전자를 발견한다면, 유전자 특성에 맞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암종을 중심으로 정기 건강검진을 받도록 한다. 예를 들어 BRCA1·2 변이 유전자가 있을 경우 매년 유방검진을 하고, MLH1 변이 유전자가 있거나 APC 변이가 확인되면 매년 내시경 검사를 통해 장내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MLH1, MSH2 유전자 변이가 있는 린치 증후군 환자는 대장암 이외에 비뇨기계암, 다른 소화기암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다. 다중암 또한 유전자 검사로 유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암이 발생할 때마다 조기에 검사·발견하고 완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자신이 가진 위험인자를 정확히 파악해, 식생활을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습관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Q. 검사를 주저하는 환자들에게 당부한다면.
본인의 예방, 본인의 치료, 그리고 자손들의 암 위험 예측 등 세 가지 차원에서 당부하고 싶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암 발생 위험을 확인하고 조기 발견·치료할 수 있다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건강도 모두 지킬 수 있다. 암 치료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앞당길 수 있는 셈이다. 중장년층의 경우 자녀에게 암을 물려준다고 생각해 검사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검사를 통해 암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사전에 인지시키고 조기 발견해 관리·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암병원 암병원에서 유전성암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장암과 소화기암, 유전성암 유전상담을 전문분야로 진료하고 있다. 미국임상종양학회, 미국암연구학회, 유럽종양내과학회, 대한암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고, 대한항암요법연구회 국제협력위원, IRB위원, QA위원과 대한종양학회 무임소 이사 등으로 활약하는 한편,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다양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며 더 나은 암치료를 위한 노력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