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장의 염증이 눈, 피부, 관절에 침투… 하루빨리 치료해야" [헬스조선 명의]
전혜영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2/08 08:0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염증성장질환 명의' 성빈센트병원 소화기내과 이강문 교수
Q. 염증성장질환은 어떤 질환인가?
염증성장질환은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면서 장에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장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모든 장의 염증을 일컫는 것은 아니고, 장염 등 일반적이거나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질환은 제외한다. 쉽게 낫지 않고 만성적으로 진행하는 질환으로 생각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이 있다. 최근엔 가수 윤종신이 투병을 고백하는 등 유명인들의 투병 사실이 밝혀지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Q.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은 어떤 차이가 있나?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은 닮은 듯하지만 다른 병이다. 궤양성 대장염은 주로 직장(장과 항문 사이)에서 처음 시작돼 점차 장의 상부 쪽으로 침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와 달리 크론병은 소장과 대장을 연결하는 부위에서 가장 많이 시작된다. 궤양성 대장염보다 협착과 천공 등 합병증도 더 많이 유발한다. 또 크론병은 항문 주위에 누공이 생기는 '치루'가 잘 동반돼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크론병이 궤양성 대장염보다 정도가 심하고, 경과가 좋지 않으며, 합병증이 심한 병이라고 볼 수 있다. 크론병 환자의 약 1/4은 장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필요로 한다.
Q. 염증성장질환의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유전적 요인, 장내 미생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유전적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유전자로 인해 발생하는 유전병은 아니다. 염증성장질환과 관련된 유전자가 200개가량 밝혀져 있는데, 이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환경적 요인은 서구화된 식습관을 말한다. 산업화 이후 현대인들의 육류·패스트푸드·정크푸드 섭취 등으로 인해 발병이 증가한 것으로 여겨진다.
Q. 염증성장질환도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관성이 있나?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장내 미생물이 다양한 질병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나쁜 음식에 노출돼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달라지면 장내에 염증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유산균 섭취나 대변 이식을 통해 장내 미생물 구성을 이롭게 바꿔주면 염증성장질환이 좋아진다는 게 연구에서 입증되기도 했다. 이를 이용해 염증성장질환을 완치할 수 있는 시대도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러나 아직은 일시적 효과다. 유산균을 먹다가 중단하고, 나쁜 식습관을 유지하면 장내 미생물 구성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Q. 염증성장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은 무엇인가?
궤양성 대장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혈변 ▲설사 ▲급박변(변이 갑자기 급해서 참지 못하는 증상)이다. 반면에 크론병은 가장 흔한 증상이 복통과 설사로, 혈변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체중이 자꾸 빠지고, 항문 주위에 염증이 생기거나, 진물이 나는 치루가 동반된다면 염증성장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염증 자체가 체중을 빠지게 하기도 하며, 크론병의 경우 소장을 침범하면 영양 흡수가 저하돼 체중이 빠질 수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혈변이 있는 데도 단순히 여겨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혈변의 원인이 무엇인지 일반인은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혈변이 지속된다면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
Q. 장이 아닌, 다른 신체 부위에도 염증을 유발한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장뿐 아니라 눈, 피부, 관절, 췌담도 등 우리 몸의 여러 곳을 함께 침범할 수 있다. 이를 '장외 증상'이라고 부른다. 가장 흔하게 침범하는 게 피부와 관절이다. 장외 증상은 장의 염증이 심할 때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장의 염증을 치료하면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일부 장외 증상은 장의 염증 정도와 별개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처럼 염증성장질환은 장과 관련된 합병증 외에도 신체 여러 부위에서 합병증이 발병할 수 있어 안과, 피부과, 류마티스내과 등의 긴밀한 협진을 통해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Q. 염증성장질환으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은 어떤 게 있나?
장의 염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장이 딱딱하게 굳을 수 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아물면서 흉터가 남듯, 장에 상처가 생겼다 나으면서 섬유화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장 기능도 바뀌게 된다. 장이 변을 잘 조절하지 못해 계속 설사를 하고, 복통이 생기는 등이다. 크론병의 경우, 심해지면 장이 좁아지는 협착도 발생한다. 변이 지나는 길이 좁아져 변이 잘 안 나오고, 가스가 차서 '부글부글'한 증상을 유발한다. 더 심하면 장에 구멍이 생기는 천공이 발생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합병증을 막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철저히 치료해야 한다.
Q. 염증성장질환은 어떻게 치료하나? 완치도 가능한가?
기본적으론 약물치료가 우선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에 쓰이는 약제는 비슷하다. 주로 염증을 조절하는 약제들이다. 스테로이드, 면역조절제를 비롯해 최근에는 강력한 항염증 작용을 나타내는 '생물학적제제'도 임상에서 흔히 쓰인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치료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의사와 환자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다만,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병이라 완치는 어렵다. 현재 치료 목표는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이 다 사라진 '관해' 상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평생 재발 없이 잘 살아가기도 한다.
Q. 염증성장질환을 치료할 때 주의할 점이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다. 특히 증상이 있는 급성기에는 식사를 아주 잘 조절해야 한다. 날 음식은 먹지 말고, 채소도 살짝 데쳐서 먹는다.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도 피해야 한다. 관해 상태가 되면 일반식도 먹을 수 있지만, 육류를 너무 많이 먹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자제해야 한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은 물론이다.
Q. 염증성장질환자는 안전한 임신이 가능한가?
여성 환자들의 가장 큰 걱정이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것이다. 염증이 심하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치료를 해서 염증을 잘 조절하면 정상적으로 출산할 수 있다. 간혹 약제 부작용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임신에 약제보다 더 안 좋은 것이 염증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염증성장질환 약제들은 임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입증됐다. 일단은 염증을 가라앉힌 후 임신을 계획하고, 임신 중에도 치료를 계속해 염증 재발을 막는 게 중요하다. 가족력의 영향이 있을 수는 있으나 자녀에게 무조건 유전되는 병은 아니므로 심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Q. 염증성장질환이 암(癌)으로도 발전할 수 있나?
염증성장질환 자체가 암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염증성장질환으로 인해 장에 염증이 반복되면 자극으로 인해 장 점막에 돌연변이가 생겨 대장암이나 소장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적인 염증 또한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외에 다른 부위에 암이 생길 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를 통해 장의 염증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는 암 위험이 커지지 않는다. 암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염증성장질환을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것. 증상이 심할수록, 발병 기간이 길수록 암 위험은 증가한다. 염증성장질환을 오래 앓고 있는 사람은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를 통해 암 발병 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한다.
Q. 염증성장질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염증성장질환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하는 병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분명 좋은 경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약제를 빼먹지 않고 복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성빈센트병원에서는 환자들과 소통하며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활발한 SNS 활동, 환우회, 강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약제의 부작용이나 치료 과정에 대해 오해가 없으시도록 환자와의 소통에 앞으로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힘을 내시길 바란다.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빈센트병원에서 외래진료부장, 국제진료센터장, 내과 과장을 맡고 있다. 과거 대한장연구학회 IBD(염증성장질환)연구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중증도-중증 궤양성 대장염 진단 환자의 1년간의 건강 관련 삶의 질 변화'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아시아 염증성장질환(AOCC) 학술대회'에서 우수 초록상을 수상하는 등 염증성장질환에 대한 활발한 연구도 함께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