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5세 아들 죽음 방관한 엄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면죄부 될까
김수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0/04/29 17:21
오늘(29일) 다섯 살 의붓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계부와 함께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친모의 첫 재판이 열려 화제다. 계부는 목검으로 20시간 넘게 아들을 100여차례 폭행했으며, 친모는 폭행 당시 계부를 제지하지 않아 방조 혐의를 받았다. 계부는 과거 학대 문제로 아들을 보육원으로 보낸 바 있으며, 집으로 아들을 다시 데리고 온지 한 달만에 사건을 일으켰다. 그런데 친모의 변호인은 오늘, 공소사실 전부를 인정하나, 피고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고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말 폭력에 시달리는 친아들을 방치할 정도의 질환일까.
PTSD 있으면 무조건 과도한 반응 아냐…극단적 도피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뒤 생기는 장애 반응이다. 장애 반응은 복잡하고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화를 내거나, 흥분하기도 하지만 회피하거나 도피하기도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정현 교수는 “피고인이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은 게 맞다면, 일반인 기준으로는 이해가 어렵지만 아들이 폭력을 당하는 상황을 현실이라고 자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으면 특정 사건에 과도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많이 알려졌지만, 극단적으로 눈 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현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가장 큰 특징은 ‘침습’이다. 자신에게 충격을 줬던 상황이 원치 않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 영화처럼 떠오르는 상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으면 이 상황을 괴로워하고, 침습을 피하려 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을 스위치 끄듯 ‘OFF’ 시키기도 한다. 즉 이번 사건에서 친모는 구타당하는 아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이를 없던 일처럼 떠오르는 걸 피하려 하며 직접 눈 앞에서 벌어지기까지 한다면 ‘이건 진짜가 아니다’라고 인식해 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추측을 제기했다. ‘친모가 평소 아들과 비슷한 폭력을 당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환자를 직접 봐야 알겠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맞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방치하고 극단적으로 회피했다면 본인도 비슷한 폭력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똑같이 목숨을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다 보면, 일반인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계부의 성향이나 인성 자체가 근원적 문제’일 수 있다는 추측이다.
계부 성향, “공감 능력 부재…분노조절장애 있을 것”
가장 가까이 있는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계부의 행동을 보면, 공감 능력 부재일 가능성이 크다. 타인에게 공감하려면 그 사람이 처한 상황, 생각,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지금 주먹을 휘두르면 저 사람이 아프겠지’ 같은 기본적인 이해다. 그러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정서적 공감을 하지 못한다. 김정현 교수는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한 계부 말이 맞다면, 아이의 고통이나 무서움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을 것”이라며 “여기다 충동이 조절 안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공감 능력 부재나 분노조절장애를 비롯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특정 범죄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다만 진짜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면, ‘처벌 외에 치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