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어렸을 때 생긴 트라우마는 오래 간다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김영훈 교수
입력 2019/06/03 07:00
김영훈 교수의 아이 마음 건강
아동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대 유형도 다양해지고,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사건들이 터져서 가슴이 아프다. 과거 부모 때문에 방안에 갇혀, TV만 보며 혼자 지내다가 구출된 8세 아이를 진료한 적이 있다. 경련발작에 정서적 불안도 있어서 2년 이상 치료했고, 얼마 전 건강한 모습으로 진료실을 찾아와 인사를 반갑게 나눴다.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지만 약한 존재다. 신체적, 성적 그리고 정서적인 학대에 취약하다. 학대뿐 아니라, 돌보지 않고 방치해도 아이는 타격 받을 수 있다. 아이의 뇌는 발달 과정에 있기 때문에 취약한 뇌 상태에서 학대를 받으면 후유증이 많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아이들은 저항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당하기 쉬워 받는 학대나 타격도 심한 편이다.
문제는 심리적, 신체적인 트라우마가 영향을 평생 미치는데 있다. 기억은 긍정적인 기억과 부정적인 기억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정적인 기억은 편도체에서 담당하여 상당히 오래간다. 6세 때 창경원에서 부모를 잊어버린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을 지금까지 또렷하게 가지고 있다. 그만큼 편도체의 기억은 질기다. 아동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그 질기고 긴 트라우마의 기억으로 인하여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오히려 가해자로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아동학대가 대물림되는 것이다.
또한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뇌 크기가 작아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긍정성을 담당하는 세로토닌 기능을 떨어뜨리고 뇌에 있는 뉴런의 가지라든지 뉴런의 수를 줄여서 뇌가 위축되는 것이다. 또 해마 기능이 떨어져 긍정적인 기억이 줄어들고,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넘기는 기능이 저하되어 인지발달도 떨어진다. 세로토닌 저하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방치에 의한 정서적 학대 유형도 보인다.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면 애착에 영향을 미쳐서 유사 자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 눈을 피한다든지 서로 교류를 못하는 반응성 애착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최선의 아동학대 예방법은 관심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고 뉴스에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평소에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영양은 잘 섭취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사회나 부모가 아이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