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이해나 기자의 정신건강 테라피] "우울증 겪으면서 머리가 나빠졌어요"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9/02/27 11:07
"평생 머리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우울증이 오면서 바보가 됐어요"
"조금 전 들었던 얘기가 기억나지 않고, 글을 읽어도 이해가 잘 안 돼요"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자꾸 말을 더듬어요"
우울증 환자들이 흔히 겪는 증상들이다. 우울증 앓는 것도 서러운데 머리까지 나빠졌다는 데에 자괴감에 빠지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 걱정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실제 우울증을 겪으면 기억력·사고력이 떨어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심지어 뇌가 한창 건강한 10대 청소년에게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니 심각한 일이다. 유범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유범희 원장은 "우울증 기간이 길거나, 자주 재발한 사람일수록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왜 기억력을 떨어뜨릴까? 우울증으로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뇌에서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코르티솔은 뇌세포의 생성과 재생을 방해한다.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창수 교수는 "뇌에서 기억력을 담당하는 부위가 해마인데, 해마를 구성하는 뇌세포는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에 따라 빨리 생성되고, 반대로 빨리 사라지기도 하는 특징이 있다"며 "코르티솔이 과도해지면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미쳐 해마가 쪼그라들고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치매가 앞당겨지기도 한다. 한창수 교수는 "50~60대부터 만성적인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은 70대가 넘어가면서 다른 사람보다 치매가 더 빨리 시작하는 경향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울증으로 생긴 기억력 저하는 치료하면 회복될까? 다행히 회복된다. 건망증을 동반한 우울증을 1년 정도 치료했더니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좋아졌다는 한창수 교수의 연구 결과가 있다(노인정신의학 및 신경학 저널, 2017). 하지만 일부 만성화된 우울증 환자의 경우에는 회복이 더디거나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나이 든 어르신들은 회복 속도가 더 느리고 치매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우울증에 의해 기억력·사고력이 떨어진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 한창수 교수는 "우울증으로 기억력이 떨어진 사람은 우울증이 중증 이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치료를 위해 무조건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는 "상담만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어 약에 대한 부담을 갖지 말고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상에서는 도움 되는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한다. 한 교수는 ▲꾸준히 걷는 운동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술을 자제하고 ▲자신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을 찾으라고 말했다.
우울증이 실제 사람을 '멍청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글들이 많이 보였다. 짐작은 가지만 믿고 싶지 않아서, 혹은 치료받을 만큼 부지런하지 않아 증상을 방치하는 사람이 많다. 우울증 환자는 물론, 자신이 우울증인 것 같다고 넘겨짚기만 하던 사람들 모두 기억력 저하가 느껴진다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섰으면 좋겠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은 시기다. 아니 과거에도 많았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병원을 찾자니 용기가 나지 않고, 주변에 묻기도 애매해 혼자 삭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이들의 심리적 평온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취재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다뤄줬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 메일로 요청할 수 있다.
lh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