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이해나 기자의 정신건강 테라피] 아직 20대인데… 벌써부터 우울증 약 괜찮을까?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우울증이 심해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표정마저 없어질 때. 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 복용'을 고려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를 선뜻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청소년과 20~30대 젊은층이다. '나이가 아직 어린데 벌써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약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우선 어린 나이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고,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19세 이하 우울증 환자 수는 2만7050명으로 운동과다장애 다음으로 흔한 정신질환이었다. 20대, 30대에서는 우울증이 가장 흔한 정신질환 1위로 꼽혀, 환자 수가 각각 6만5141명, 6만8017명을 기록했다.

우울증 약의 안전성은 어떨까? 기자는 우울증 약이 어떤 식으로 뇌에 작용하며, 약을 끊은 후에도 우울증 완화 효과가 계속 지속되는지 궁금했다. 약을 먹어 효과를 보고→증상이 낫고→결국 약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환자들이 어린 나이에 약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울증 약을 먹을수록 약에 의존하게 되고, 평생 끊을 수 없다면 어린 나이에 약물 치료를 시도하는 것이 당연히 두려울 테다.

취재 결과, 다행히 우울증 약이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뇌 전반의 컨디션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울증 약의 종류는 다양한데 보통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뇌에서 재흡수되는 것을 막는 약을 쓴다. 따라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라고도 불린다.​ 우울증 환자는 대부분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적은 것이 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뇌 신경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교환하는데, 세로토닌은 이 시냅스를 통해 뇌세포 사이를 이동한다. 보통 하나의 세포에서 세로토닌을 분비하면 다른 신경세포에서 이를 받아먹는다(쉽게 표현하자면). 그런데 세로토닌이 줄면 다음 세포가 세로토닌을 최대한 많이 받아먹기 위해 세로토닌을 받아먹는 도구인 '세로토닌 수용체'를 늘린다. 세로토닌이 줄어든 상태가 지속되면 뇌세포의 세로토닌 수용체가 계속 늘어나면서 혈중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고, 우울증이 심해진다. 따라서 우울증 약은 세로토닌이 뇌에서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 세로토닌 양을 늘린다. 그러면 점차 세로토닌 수용체 수도 줄면서 뇌 기능이 다시 정상적으로 이뤄진다.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원 교수​는 "우울증 약은 고장 난 뇌의 회로를 고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뇌 회로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약을 끊어도 문제없이 세로토닌 농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돼 약 없이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김 교수는 "우울증 약을 먹으면 뇌세포가 계속 재생된다는 연구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뇌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병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우울증 약을 먹으면 보통 1~3개월 안에 증상이 좋아진다. 이후에는 6개월~1년 정도 유지 치료를 한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지원 교수는 "유지 치료로 뇌의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이후 약을 끊어도 된다"고 말했다. 혹여나 우울증 약을 먹다가 중단하고 싶은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김태원 교수는 "우울증 약이 불편하면 복용하다 끊어버리면 그만"이라며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   

우울증은 치료하지 않으면 50% 이상이 재발하고, 증상이 갈수록 심해진다. 우울증을 치료받은 환자는 병의 재발률이 10~20%인 반면, 그렇지 않은 환자는 80~90%나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청소년기나 20~30대 젊은층은 학업, 취업 등에 열심히 투자해야 할 시기인데, 단지 약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를 거부하면 중요한 삶의 시기를 놓치면서 잃는 것이 훨씬 많아질 수 있다.

우울증이 의심된다고 해서 무조건 약을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선 우울증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보자.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심리상담센터 상담을 받아볼 수도 있다. 그래도 증상이 낫지 않고, 병원에서 우울증 확진까지 받았다면 약물 치료를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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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은 시기다. 아니 과거에도 많았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병원을 찾자니 용기가 나지 않고, 주변에 묻기도 애매해 혼자 삭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이들의 심리적 평온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취재하고 공유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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