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WHO 전문가 "한국도 설탕세 도입 검토할 때"
김진구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8/09/12 15:57
“한국도 설탕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글로벌 비만정책 전문가들이 한국에 ‘설탕세’ 도입을 촉구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베리 팝킨 교수는 대한비만학회가 최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를 찾아 이렇게 전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8개 국가의 비만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높아지는 비만율의 원인으로 식품 제조·유통 시스템의 변화를 꼽았다. 신선한 식자재를 공급하던 전통시장이 사라지고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역할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고도로 가공된 음식(ultra-processed food)의 판매가 늘었다는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멕시코의 경우 한해 섭취하는 열량의 58%를, 중국의 경우 29%를 가공식품으로 섭취하는 상황이다. 그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며 “전체 식품의 3분의 2 이상이 완제품(간편식)으로, 동물성 식품과 정제 탄수화물 같은 고열량 음식”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이보다 낮지만, 빠르게 가공식품 섭취량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칠레, 가당음료에 과세+경고문구 도입…소비량 60% 감소
그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공적인 비만정책의 사례로 칠레의 예를 들었다. 칠레는 2014년 가당음료에 과세를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뿐 아니라 전면 경고 표시(Front of package warning, FOP)를 전체 식음료를 대상으로 적용했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제품 전면에 패키지 면적의 10% 이상에 ‘위해성분 함유’ 경고를 부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런 규제는 실제 가당음료 섭취량 감소로 이어졌다. 특히 소아청소년의 섭취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칠레의 경우 1인당 가당음료 섭취량이 2014년 전까지 세계 1위였지만, FOP 도입 6개월 만에 60%나 감소했다. 팝킨 교수는 “칠레에선 이 정책의 시행에 따라 블랙라벨(위해성분 경고 마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가당음료와 같은 반(反)건강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의 구매율을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지만, 공급자에게 보다 친(親)건강의 식음료를 생산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며 “실제 가당음료 과세정책이 발표되고 유예기간이 주어지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조정된 과세율에 맞게 제품을 재설계한다”고 말했다.
◇“한국 비만정책, 신체활동 증진만으론 효과 제한적”
그는 얼마 전 발표된 한국의 비만정책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팝킨 교수는 “한국의 비만 종합대책은 신체활동 증진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신체활동을 통해 소모하는 에너지량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상황에서 신체활동 증진만으로는 비만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WHO의 비전염성 질병예방국 전략담당관 주안나 윌럼슨 박사는 “WHO는 2014년 비만의 예방·관리를 위해 88개의 중재 방안을 마련했다”며 “이 가운데 식품 기업의 산업용 트랜스지방 사용 금지법 시행, 가당음료 과세를 통한 설탕 소비 감소를 비용효과적인 중재방안으로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 김대중 정책이사(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는 “많은 해외의 사례를 검토해보면, 세금과 같은 강력한 정책이 없이는 날로 심각해지는 비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가당음료 등에서 걷힌 세금을 비만예방을 위한 사업에 사용하도록 강제하면 된다. 비만 극복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정책을 도입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