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머무는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필자는 해부용 시신과 씨름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연구용 시신 때문이었다. 시신을 통해 척추의 해부학적 구조를 샅샅이 알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여러 다양한 수술기법을 연구했다. 어렴풋하게나마 당시 막 개발된 내시경과 레이저를 이용하면 보다 정교한 척추수술이 가능할 것이라고 느껴져 이 방향으로 연구를 집중했다. 귀국할 즈음에는 그 '어렴풋함'이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1986년 귀국해서 '이상호 신경외과의원'을 국내 최초의 척추 디스크 전문병원인 '부산 우리들병원'으로 전환하고 내시경 레이저 척추수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연구를 위해 1년에 3~4개월은 해외 학회를 찾아 다녔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에 안 가본 도시나 병원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6년 정도가 흐른 1992년, 마침내 프랑스의 미세수술 기법, 독일의 내시경, 미국의 레이저를 결합한 내시경 레이저 척추수술법을 정립할 수 있었다.
자화자찬 같지만 효과는 엄청났다. 기존 내시경 시술로는 말랑말랑한 디스크 조직만 없앨 수 있었는데 레이저가 접목되니 굳어 있거나 협착으로 진행된 조직까지 치료할 수 있었다. 또, 기존 수술보다 뼈와 근육 손상이 줄어 회복도 빨라졌다. 시술 당일 보행이 가능하고 환자 대다수가 이틀 안에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수술 위험 부담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던 고령 환자도 수술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결과를 필자는 1993년 국제정형외과 및 외상학회(SICOT)에 처음 발표했다. 필자가 개발한 척추 내시경 레이저 수술법이 세계 무대에 공식 데뷔하게 된 것이다.
어렵게 개발한 수술법 덕분에 부산의 우리들병원은 일약 전국구 유명 병원이 됐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로 병원은 인산인해였고, 필자에게 진료 및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은 몇 달씩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국내 의사들 반응은 싸늘했다. '수술도 필요 없는 경증 환자를 수술하고 결과를 과대 포장한다'는 등의 비난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국내 학회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나 어쩐 이유인지 몇 번이나 반려 당했다. 그러나 해외의 SCI급 의학저널에는 필자 논문이 계속 실렸다.
2006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미국신경외과학회(AANS) 본 학회(Plenary Session)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모인 신경외과 의사들을 향해 개막이 선언되고,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필자가 연단에 등장해 내시경 레이저 수술법을 전 세계 의사에게 강의했다. 필자는 이전에도 AANS에서 강의한 바 있지만 이날 강의는 신경외과 분야 최고 수준 논문만을 발표하는 본 학회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척추 의학의 수준을 세계 모든 의사에게 알린 기념비적인 날이었다고 자평한다.
필자가 개발한 내시경 레이저 수술법은 현재 수십권의 의학 교과서에 소개돼 있으며, 45개국 800여 명의 의사들이 수술법을 교육받았다. 작년에는 미국 의료보험에서도인정돼 미국 의과대학 척추수술 아카데미에 정규 과목으로 채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