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이 전 세계에 10대뿐인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키로 했다. 2022년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연세의료원은 29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일본 도시바, DK메디칼솔루션과 함께 중입 치료기 계약 체결식을 가졌다. 3000억원 이상이 투입될 중입자 치료기는 세브란스 심혈관병원 뒤편에 3만5000㎡(1만평) 규모로 건축된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연간 1500명의 암 환자가 중입자 치료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입자 치료는 탄소 원자인 중입자를 빛의 70% 속도로 가속한 뒤 환자의 암 조직에 투사하는 방식이다. 중입자는 암 조직에 닿는 순간 방사선 에너지를 방출, 암세포의 DNA를 파괴하고 암조직을 사멸시킨다. 특히 경쟁 기기로 꼽히는 ‘양성자 치료기’에 비해 암세포 사멸률이 3배로 높다고 알려져 있다. 중입자치료기 개발사인 도시바는 중입자가 양성자보다 질량이 12배로 무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췌장암 생존율 10%대서 50% 이상으로 향상
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암은 폐암, 간암, 췌장암, 재발성 직장암, 골육종 등 주요 고형암이다. 전체 암 환자의 20% 내외가 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췌장암, 재발성 직장암, 골육종의 경우 기존 방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난치암으로 꼽혔다.
앞서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한 일본 국립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는 췌장암 수술 전 중입자 치료를 시행한 결과,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이 53%로 향상됐다고 주요 의학학술지에 보고했다.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10%대로 매우 낮은 상황이다.
치료 기간 역시 기존 방사선 치료나 양성자 치료보다 짧다. 방사선·양성자 치료의 경우 평균 30회의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중입자 치료는 평균 12회다. 이에 따라 치료기간 역시 5~7주에서 3주 이내로 줄었다. 현재 일본에서 중입자 치료 비용은 약 1억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보다 저렴한 가격을 책정할 계획이다.
◇전 세계 10대뿐…그 중 최신 버전 도입
중입자 치료기는 현재 일본(5대), 독일(2대), 중국(2대), 이탈리아(1대) 등 전 세계에 단 10대뿐이다. 1994년 도입된 이후 전 세계에서 2만 명 이상이 중입자치료를 받았다. 이번에 세브란스병원에 도입된 중입자 치료기는 ‘회전 갠트리 방식’이 적용된 가장 최신 버전으로 분류된다.
중입자 치료기는 입자를 가속하는 장비인 싱크로트론과 치료 장비인 갠트리로 구성된다. 기존 중입자 치료기는 환자가 누워 있는 테이블을 중입자치료기에 맞춰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회전 갠트리방식을 도입하면 360도 회전을 통해 모든 각도에서 중입자를 조사할 수 있어 환자 불편과 치료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정교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 인체에 조사되는 방사선량이 줄고, 이에 따라 치료 후 부작용도 저하될 것으로 기대된다.
윤도흠 연세의료원장은 “5년 전 도입하려다 미뤄졌던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며 “5년의 준비 기간 동안 양성자 치료기 및 기존 중입자 치료기들과의 장단점을 꼼꼼히 분석했고, 결과적으로는 가장 최신 버전의 기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국민이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독일로 떠나는데, 이제는 우리 땅에서 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회 김용배 교수는 “일부 중입자 치료기는 세기 조절이 되지 않아 안전성에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번에 도입되는 중입자 치료기는 세기 조절은 물론 상위의 치료 기술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서 식약처 허가를 받고, 보험까지 적용됐기 때문에 안전성에는 큰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도시바의 쯔나카와 사토시 사장은 “한국에 방사선 치료가 도입된 지 올해로 100년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미 있는 해에 중입자 치료기 도입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