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문약답

설 연휴가 지난 뒤 떠오르는 걱정 중 하나가 체중 문제다. 가족, 친지와 모여서 음식을 즐기다보면 과식이 이어지고, 결국 체중도 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혹시 체중이 느는 게 내가 복용 중인 약 때문일 수도 있을까? 가능하다. 단, 모든 약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약의 부작용으로 체중이 증가 할 수 있다.

봄철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는 항히스타민제도 체중 증가와 관련되는 약이다. 본래 히스타민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때 분비되어 눈, 코, 피부의 가려움증과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지만, 동시에 뇌 속에서 식욕을 억제하고 대사를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알레르기 증상을 줄여주는 약이 체중을 늘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히스타민제는 문자 그대로 히스타민의 작용을 막는 약이다. 염증을 유발하는 히스타민의 작용을 막으면 알레르기 증상은 줄어든다. 거기에서 멈춰주면 딱 좋을 텐데 불행히도 약에는 자기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능이 없다. 항히 스타민제는 히스타민의 식욕억제 작용도 방해한다. 이로 인해 식욕이 늘고 체중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2005~2006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항히스타민제 사용이 체중 증가와 연관된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단, 이 연구는 관찰연구여서, 약으로 인한 부작용인지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것인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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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약, 식욕 유발 가능성 커
약이 작용하는 기전을 고려하면, 항히스타민제 중에서도 졸음 부작용이 심한 1세대 항히스타민제에 식욕 증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로, 알레르기 때문에 오랫동안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해야 할 때는 가급적 로라타딘, 세티리진, 펙소페나딘과 같은 2세대 항히스타민제를 선택하는 게 좋다. 한편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을 역으로 이용한 경우로 시프로헵타딘이라는 약도 있다. 이 약은 입맛 저하로 정상적 식사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식욕증진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스테로이드제는 체중 증가를 일으킬 수 있는 약 중에서는 대표격이다. 일단 이 계열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식욕이 증가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게다가 지방 재분포라는 특이한 부작용도 생긴다. 특정 부위에는 지방이 더 많이 쌓이고 다른 부분은 지방조직이 도리어 쪼그라든다. 얼굴에는 지방이 쌓이면 보름달처럼 동그래지고, 목 뒷부분과 어깨에 지방이 축적되어서 마치 버펄로 등짝의 혹처럼 솟아 보인다. 지방의 중앙 집중화 현상이 일어나 복부지방이 늘어나고 허리둘레는 두꺼워진다.

스테로이드를 쓴다고 해서 항상 체중이 느는 건 아니다. 단기간으로 짧게 쓰거나, 낮은 용량으로 사용할 때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낮다. 천식 때문에 스테로이드 흡입제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도 크게 걱정할 필요없다. 몸속으로 흡수되는 약의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체중 증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 또한 적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피부연고에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는 경우도 넓은 면적에 매일 바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신적으로 흡수되어 체중 증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대체로 먹는 스테로이드제를 고용량으로 장기간 복용했을 때 체중 증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이런 부작용은 영구적이진 않다. 스테로이드제를 끊고 나서 6개월~1년이 지나면 식욕과 체중이 원상태로 돌아온다.

체중 늘까 걱정되어 약 함부로 끊으면 안 돼
항생제 때문에 살이 찔 수도 있을까? 가축에게 항생제를 주면 체중 증가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꽤 오랫동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항생제가 사람의 경우에도 체중 증가의 원인이 되는지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국의 특정 지역에서 출생한 1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생후 6개월 이전에 항생제를 복용하면 3세 때 과체중 될 위험성이 커지는 걸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항생제가 사람을 살찌우는 장내 균들을 늘어나게 해 체중이 늘어날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놨다. 사람이 먹고 소화시킬 수 없는 부분을 미생물들이 어떻게 처리해서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얻게 되는 칼로리가 달라질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하지만 뒤이어 2016년 발표된 다른 연구에서는 20만 명이 넘는 미국 어린이들의 체중을 분석했는데 항생제 사용과 어린 시절 체중이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이나 과체중에 대한 과도한 걱정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항생제 사용을 기피할 이유는 없다는 결론이다.

이밖에도 체중 증가를 유발하는 약은 많다. 인슐린 또는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는 당뇨치료제는 모두 체중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반대로 메트포르민처럼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되는 당뇨약도 있다). 피임약, 베타차단제 같은 일부 혈압약, 항우울제, 조현병을 치료하는 항정신병 약물 등을 복용 중일 때도 부작용으로 체중이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조현병치료제의 경우 체중이 늘 뿐만 아니라 당뇨 위험도 함께 증가할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약들 가운데 체중 증가 부작용이 적은 약으로 바꿔주는 방법으로 문제를 피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원활한 치료를 위해 체중 증가가 수반되는 약이라도 반드시 써야 할 때가 있다. 약으로 인해 체중 증가가 의심된다고 하여 본인 스스로 약을 끊는 게 위험한 이유다. 약이 체중 증가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요인이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으로 체중이 늘어난 게 아닌지 의심될 때는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먼저 상담하고, 정말 약이 체중 증가의 원인인지 따져보는 게 좋다.

어쩔 수 없이 체중 증가 부작용이 있는 약을 복용해야 할 때에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과식을 피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관리하면 체중 증가를 줄일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게 건강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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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글 정재훈(약사) | 사진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