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스마트 척추·관절
70대 미국 교민의 호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70대 교민이 진료비서에게 “헬프 미(help me)”라는 연락을 했다. 그는 ‘미국에서 주로 하는 척추수술이 아닌, 좀더 안전한 방법으로 척추관협착증을 고치고 싶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그는 심장이식을 한 적이 있어 매일 걷기 운동으로 심장 건강을 챙기는데, 간헐적으로 생기는 좌골신경통(sciatica) 때문에 오래 걷기가 힘들단다. 오래 걸으면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저리고, 힘이 빠져 걷는 중간에 앉아서 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미국 대학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후, 좌골신경통 원인이 척추관협착증임을 확진받았다. 70대라는 나이 탓인지, 허리를 많이 써서 그런지 그의 디스크는 돌출되었고 척추관절은 비대해졌으며, 인대는 두꺼워져 있었다. 그의 척추관은 연필 굵기만큼 가늘고 좁아졌다고 했다.
원래 척추관은 어른 엄지 정도로 굵은 게 정상이다. 그래야 요추신경, 혈액, 뇌의 척수액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척추관이 퇴행성으로 좁아지면 수도관이 녹슬어 막힌 것처럼 돼, 요통이나 좌골신경통을 유발한다.
척추관협착증은 앉아 있을 때는 괜찮다. 그러나 걸을 때 지장이 있다. 체중과 중력이 척추관 협착을 심하게 만들어 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뇌척수액이 제대로 흐르지 못해서다.
그는 진통소염제 같은 약물복용 외에도 카이로프락틱 척추 교정술·추나요법 등 한방 물리치료, 통증을 없애준다는 허리 주사요법을 받아봤지만 효과는 그때뿐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거리가 500m 정도 밖에 안 되고, 5분만 걸으면 앉아서 쉬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협착증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척추관절을 포함해 뼈들을 조금씩 잘라내고, 돌출된 디스크는 덜어내고, 금속 나사못 등을 이용해 허리뼈를 재건하는 수술법을 제안했다고 한다. 거기다 의사는 수술이 쉽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술은 작지만 뼈를 절제하고, 나사못을 사용하기 때문에 출혈로 인해 수혈이 필요할 수 있다. 환자가 심장이식을 한 이력이 있어 면역 관련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면역 기능 문제로 인한 감염 위험성도 있고, 최악의 경우 심장의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는 고민하다 한국 병원에서 뼈가 아닌 인대를 재건하는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은 교포를 알게 되었고, 병원 정보를 얻어 내가 있는 한국까지 오게 됐다.
뼈 재건 VS 인대 재건
미국 대형병원이 이야기한 수술법은 뼈를 갈아내고(laminectomy), 척추관절을 잘라내고(facetectomy), 디스크를 잘라내(discectomy) 척추관을 넓히는 것이다. 뼈를 다시 재건해야 한다. 수술이 3시간 이상 걸리고 출혈도 크다.
다른 방법도 있다. 두꺼워지고 나빠진 인대를 들어내 척추관을 넓히는 것이다. 이때는 인대만 다시 재건하면 된다. 수술이 1시간 정도로 짧고 피가 거의 나지 않는다. 뼈에 조그만 창문을 낸 다음 인대를 제거하여 척추 관을 넓힌다는 혁신적인 방식은 프랑스 척추 의사 세네가스가 시작했다. 당시 뼈와 인대를 동시에 수술했기 때문에 경과가 나쁜 경우도 있었다. 그후 스웨덴의 척추 병리학자 라우슈닝은 척추관협착증의 주원인이 두꺼워진 여러 종류의 인대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활용해 나를 포함한 우리들병원연구팀은 뼈나 디스크를 잘라내지 않고 인대만 제거하면 척추관이 넓어져 요통도 신경통도 좋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에는 인공인대를 삽입해주면 된다.
구체적으로 수술방법을 설명해보자. 허리 중앙을 손으로 눌러보면 돌출돼 만져지는 뼈가 있다. 그 뼈의 이름은 ‘극 돌기’, 순 우리말로 가시돌기뼈다. 이 뼈 사이에는 약 0.7cm정도의 빈 공간이 있다. 이 사이로 접근해 인대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하면 척추관이 충분히 넓어지고, 뼈나 디스크를 잘라낼 필요가 없다.
돌출되고 퇴행된 디스크라도 보존하면서 인대를 재건해주면 허리가 다시 정상인처럼 강해진다. 프랑스에서 개발된 인공인대는 허리에 삽입한 지 3주째가 되면 자신의 세포들이 자라 들어가기 시작하고 6주가 되면 자신의 인대처럼 강해진다.
나는 미국에서 온 환자를 뼈를 재건해야 하는 척추수술이 아닌, 인대를 재건해야 하는 수술로 치료했다. 나이가 많고 심장과 면역 기능이 약한 그에게 딱 맞는 치료이기도 했다. 출혈이 적어 수혈도 필요 없고, 수술 시간도 짧았다. 그는 수술 다음 날부터 바로 걸어 다니게 됐다. 한국의 척추 의술에 감탄하며 지금도 잘 걸어 다니고 있다.
나 자신도 치료한 인대재건수술
나 역시 2017년 5월부터 걸으면 다리가 저린 증상이 나타났다. 검사해보니 척추관협착증이었다. 예전부터 의사들은 자신이 전공한 병에 잘 걸린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걸음걸이가 마치 90대 노인 같아서, 지난 8월 제자들에게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부탁했다. 미국에서 온 환자와 동일한 인대재건 방법으로 수술했다. 수술을 받은 다음 날부터 요통과 좌골신경통이 없어졌다. 내가 연구한 치료로 혜택을 받다니 감개무량했다. 나와 우리들병원 연구진이 개발한 이 수술법은 여러 편의 논문으로 쓰여 SCI급 의학지에 게재됐다. 또한 공동저술로 유럽척추의학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인대재건술을 세계 최고의 의학저널 ‘Spine’지(誌)에 게재했을 때는 내 논문을 읽은 미국·캐나다 의사들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득(得)이 많은 수술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뼈를 건드리는 척추관협착증 수술에 겁이 난다면 고려하길 희망한다.
이상호 우리들병원 회장. 신경외과 전문의다.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의대 석사·박사를 지냈다. 프랑스 파리 제5대학 데카르트 의과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세계최소침습척추외과학회를 창설했으며, 해당 학회의 명예회장이다. 미국최소침습척추수술전문의이기도 하다. 연세대·동아대·부산대 의대 외래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