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의사가 몇 명이나 오면 ‘국제적인’ 학술대회로 인정할 수 있을까. 최근 이 질문을 두고 국민권익위원회와 의료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기준 인원은 100명이다. 권익위는 100명 이상은 와야 국제 학술대회로서 제약사 등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의료계는 외국 의사 참가자 수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외국의사 100명 이상 와야 학술대회 지원 가능”
갈등의 시작은 한 달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토론회를 열고 ‘의료 분야 리베이트 관행 개선 권고안’ 초안을 발표했다. 이 권고안에서 최근 쟁점이 되는 부분은 국제 학술대회 지원 기준에 관한 내용이다. 권고안은 ▲5개국 이상 외국인이 참가하면서 ▲총 참가자 300명 중 외국인이 100명 이상이고 ▲3일 이상 학술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국제 학술대회로써 제약사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마련한 ‘공정경쟁규약’에 따라 ▲5개국 이상에서 전문가가 참여하거나 ▲외국 의사가 150명 이상 참가하는 학술대회가 2일 이상 진행되면 국제 학술대회로써 제약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둘 중 하나의 조건만 만족하면 되기 때문에 상당수 국제 학술대회는 ‘5개국 이상 전문가 참여’라는 조건만 갖춰 개최돼 왔다. 이 때문에 국제 학술대회로 보기에는 규모나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 권익위의 판단이다. 또, 국제 학술대회 개최 과정에서 제약사의 지원이 리베이트 성격으로 의사에게 전달된다고도 보고 있다. 현행 공정경쟁규약에서는 국제 학술대회에 대한 지원의 경우 비용 집행 내역을 별도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두 곳 제외하곤 학술대회 개최 못할 것”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상적인 학술대회까지 위축될 것이란 우려다. 권익위가 마련한 초안의 기준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도 불만이다. 실제 지난 한 해만 20여개 학회가 한국에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했지만, 권익위 권고안 초안을 만족하는 학회는 1~2곳에 그치는 수준이다. 올해 역시 한국유방암학회·대한심장학회·대한암학회·대한폐암학회 등 20여개 학회가 국제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지만, 권익위 조건을 만족할 만한 곳은 극소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제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한 학회 관계자는 “예전에는 겨우 두세 명의 의사가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해 최신 치료법을 배워왔다”며 “국제 학술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하고 세계적인 전문가를 초빙하면 수백·수천 명의 한국 의사가 최신 치료법을 배울 수 있는데, 왜 이를 제도적으로 막으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학회마다 규모가 다르고 모이는 인원수도 다르다”며 “규모가 큰 학회에는 100명이 올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중소형 학회는 권익위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흥행에 실패하면 국제 학술대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며 “학회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참가 외국인 의사 수를 100명으로 못 박은 것은 전형적이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의료 학회의 대표 격인 대한의학회 측은 이런 불만을 수렴, 권익위 권고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의학회 이윤성 회장(서울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은 “권익위 권고안 초안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 회원 학회들 전반의 의견”이라며 “내부 의견을 수렴해 개선방안을 권익위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권익위 “초안일 뿐”이라면서도 “불만 있으면 복지부에”
의료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권익위는 초안일 뿐 아직 권고안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익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서 초안의 내용이 확정된 것처럼 전해졌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아직 초안의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내용이 변경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학술대회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방향성을 권고안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며 “초안을 바탕으로 내달 중 분과위원회, 전원위원회 등 내부 회의를 거쳐 복지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료계의 의견 수렴 여부에 “의견 수렴 절차는 복지부에 권고안이 넘어간 뒤 진행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