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기호식품이지만, 커피 속의 카페인은 약물이기도 하다. 커피, 홍차, 에너지드링크 같은 카페인 음료를 너무 많이 마시면 짜증이 나거나 더 예민해질 수 있다. 카페인의 흥분 작용은 잘 알려진 편이다. 자신이 카페인에 민감하다며 커피나 차를 적게 마신다는 분들이 둘러보면 은근히 많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은 감기약도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감기약 사용 설명서에 보면 비충혈제거제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알레르기비염치료제에도 간혹 비슷한 성분이 들어 있다).
비충혈제거제란 쉽게 말해 코막힘 증상을 줄여주는 약인데, 사람을 왜 짜증나게 한다는 걸까? 이 약이 우리 몸속에서 작용하는 방식 때문이다. 이 약의 또 다른 이름은 교감신경흥분제이다. 교감신경을 자극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몸이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긴장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러한 반응을 ‘싸움-도주 반응’ 또는 ‘투쟁-도피 반응’(flight-or-fight response)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가 아주 많이 났을 때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평소에 비염으로 코가 살짝 막히는 사람이라면 코가 뚫리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을 거다. 코 점막의 혈관이 수축되기 때문이다. 교감신경이 자극될 때 나타나는 반응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동공은 확장되고 근육은 활동성이 더 높아지며, 기관지가 넓어져서 호흡을 돕는다. 싸우거나 도망가기에 딱 좋은 모드로 인체 활동이 변환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맥박은 증가하고, 혈압은 상승하며, 소화는 억제된다.
일부 감기약, 잠자기 두세 시간 전에 복용
위 나열한 신체적 반응에 더해, 감기약 속의 비충혈제거제 성분은 뇌 속으로 흘러 들어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덜 피곤하고 정신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일부 사람들이 감기와 무관하게 감기약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소에는 차분하던 사람이 약을 먹고 나서 불안해지거나 신경이 과민해질 수 있다. 그야말로 약 먹고 성격이 나빠지는 부작용이다.
만약 자는 중에 위에 나열한 모든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무서운 꿈을 꾸거나 잠이 안 오는 불면증이 나타난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려면 자기 직전에 감기약을 복용하기보다 두세 시간 전에 복용하거나 비충혈제거제가 들어 있는 감기약은 저녁에는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 그런데 위식도역류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직전에 감기약 복용을 피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며 감기약 속의 비충혈제거약 성분으로 인한 문제다. 우리 몸에는 위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밸브 역할을 하는 하부식도괄약근이라는 장치가 있다. 감기약 속 비충혈제거제는 이 밸브를 느슨하게 하여, 평소 위식도 역류 증상이 있고 속쓰림 증상이 있는 경우에 증상 악화를 초래한다. 이에 더해 위 속 내용물이 장으로 내려가는 것을 늦추어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 들게 할 수도 있다. 저녁에 감기약을 복용할 때는 평소보다 식사량을 줄이고, 식후에 3~4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눕는 게 바람직하다.
일시적인 발기부전 나타날 수도
감기약 속의 숨은 부작용은 아직 더 있다. 그중 하나가 혈당 상승이다. 당뇨병 환자들이 감기약을 복용할 때 조심해야 하는 사항인데, 다른 여러 나라에 비해 국내에 덜 알려져 있는 부작용이기도 하다.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메틸에페드린, 슈도에페드린 같은 비충혈제거약 성분은 혈당 조절을 어렵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감기에 걸리면 그 자체로 혈당 수치가 올라갈 수 있는데, 코막힘 제거 약은 여기에 추가적으로 혈당치를 높일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혈당이 올라간다면 혹시 혈압도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할 수 있다. 사실 그렇다. 감기약의 사용상 주의사항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사람은 약을 복용하기 전에 의사, 치과 의사, 약사와 상의할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고혈압 환자는 항상 이 목록에 포함된다. 혈관을 수축시키면 혈압이 올라간다. 고혈압치료약 중에 상당수는 혈관을 이완시키는 약이다. 감기약을 복용하고 혈관이 수축되면 막힌 코는 뚫리지만, 이때 코 점막의 혈관만 수축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곳의 혈관도 수축되는 게 문제다(감기약 복용 시 때때로 남성의 발기부전이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일시적 현상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로 인해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 감기약을 복용하는 기간에는 고혈압치료제의 효과가 줄어들 수 있으므로 혈압을 더 자주 점검하는 게 좋다. 비충혈제거약은 심장이 더 빨리 뛰도록 자극도 하여 부정맥 환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고혈압, 부정맥 같은 만성질환이 있다면 전신에 작용하는 먹는 코감기약 대신에 코 점막에만 작용하는 뿌리는 비충혈제거약을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에페드린 성분 든 건강기능식품도 유의
때때로 건강기능식품이 약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에페드린 같은 비충혈제거약은 본래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이다. 천연다이어트 식품이라는 말에 안전할 것 같던 건강기능식품에 약보다 훨씬 더 위험한 수준으로 에페드린이 들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03년 미국 프로야구 선수 스티브 베츨러의 사망이 에페드린이 들어간 체중감량 건강기능식품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음해 미국 FDA는 에페드린 함유 건강기능식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해외에서 판매되는 각종 건강기능식품에는 지금도 에페드린 성분이 숨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제품을 사용할 경우 심장에 무리가 가고 혈관이 수축되어 심장 마비와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다.
‘감기약 하나에 이렇게 많은 부작용이 있었냐’며 놀랄 수 있다. 하지만 평소 건강한 사람은 크게 걱정할 일 없다. 반면,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갑상선기능항진증 환자는 감기약 속 비충혈제거제로 인해 불안 증상이 더 심해지고,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고, 전립선비대증을 치료 중인 중년 남성들은 감기약 속 비충혈제거제로 인해 소변을 보기 힘들어져서 응급실에 실려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만성질환으로 치료 중이거나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은 감기약 하나라도 반드시 의사, 약사와 상담한 뒤에 복용하는 게 좋다. 상담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