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학

섹스, 총량설과 용불용설

글 심봉석(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 사진 셔터스톡

심봉석의 앤드롤로지

나이 제한이 없는 자유업이라고 보이는 의사들에게도 정년이 있다. 특히 외과 계열의 의사들은 전문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술하는 능력이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과의들이 모이면 평생 몇 건의 수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중에는 한 명의 외과의가 평생 동안 수술할 수 있는 총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 있다. 젊었을 때 많이 하면 나이 들어서 적게 하고, 젊었을 때 적게 하면 나이 들어서까지 수술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관심을 갖는 섹스에 있어서도 비슷한 논리의 이야기가 있다. 한 남자가 평생 동안 하는 섹스의 총 횟수가 정해져 있어, 젊었을 때 섹스를 많이 하면 나이 들면서는 능력이 빨리 떨어지고, 젊었을 때 적게 하면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섹스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섹스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이 들어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두 이야기 모두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평생 할 수 있는 섹스의 총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총량설’보다는,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사용치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이 섹스에 더 맞는 논리일지 모른다.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하는 ‘용불용설’
에라스무스 다윈이 1796년 저서 ‘동물학’에서 용불용설(用不用說)에 관해 처음 언급한 이후, 1809년 장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철학적 동물학’에서 진화생물학적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급속히 발전한 유전학에서 용불용설은 오류로 판명되고, 자연 선택에 의한 대립 형질의 발현이 진화의 원인으로 파악되었다. 이런 논리라면 섹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궁합이 잘 맞는 상대방이 있다면 얼마든지 섹스의 능력은 발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복잡한 유전학적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우리들의 주관심사인 섹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통계에 의하면 남성 한 명이 평생 사정하는 횟수는 평균 7200회 정도이고 자위에 의해 사정하는 횟수는 2000회 정도라고 한다. 사정 1회를 섹스 1회로 계산하면 평생 섹스의 횟수는 5200회 정도로 추정될 수 있다. 20대 이후 40년 간 규칙적으로 섹스를 했다고 하면 일 년에 평균 130회, 3일에 한 번꼴로 섹스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3일에 한 번씩 혹은 더 많은 섹스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특히 50대 이후에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는 것은 남성호르몬 감소 때문이다.

남성호르몬 30대 중반부터 매년 1% 감소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30대 중반 이후 매년 1%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여성의 폐경기처럼 급격한 하락은 없지만, 남성들도 40대 중후반이 되면 남성호르몬 부족으로 인해 성기능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갱년기 증상들을 겪기 시작한다.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의 라이디히세포(Leydig cell)에서 만들어지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호르몬이다. 고환은 뇌에 위치한 시상하부-뇌하수체의 조절을 받는다. 시상하부(hypothalamus)에서 황체형성호르몬분비호르몬(LHRH)이 분비되어 뇌하수체(pituitary gland)를 조절하고, 뇌하수체는 황체형성호르몬(LH)을 분비하여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조절한다.

가장 중요한 테스토스테론의 기능은 성(性)에 대한 것이다. 뇌의 성 중추에서 작용해 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조절할 뿐 아니라, 남성의 성기관인 음경, 고환, 전립선 및 정낭에서 성기능의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성적인 욕구와 성적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에 작용하고, 음경해면체의 강직을 만들어 직접적으로 발기를 일으킨다. 남성호르몬이 감소되면 성에 관련된 증상 이외에, 만성피로·기억력 감퇴·우울·근육 감소로 인한 체형의 변화 등 전반적인 생활의 활력을 저하시킨다.

임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자의 수는 어떨까? 한 번 사정할 때 분출되는 정액의 양은 다양한데 보통 2.3~5mL로 평균 3.4mL 정도이다. 남성이 평생 동안 사정하는 정액의 양은 23L 정도이고, 한번 사정되는 정액에는 1억 마리 이상의 정자가 포함돼 있다.

남성의 생식기관은 고환, 부고환, 근위부 정관, 원위부 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고환의 세정관 내에서 원시 정자세포의 세포분열이 시작되어 정모세포를 거쳐 정자로 만들어진다. 세정관에서 만들어진 정자는 부고환으로 가서 운동성과 수정능력을 획득하고, 근위부 정관에서 성숙해지면서 원위부 정관까지 이동하여 사정을 기다린다. 원위부 정관에서 사정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정자는 보통 2주 정도 지나면 녹아서 몸에 흡수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정자들로 채워지게 된다.

여성은 남성과는 다르다. 사춘기 이후 여성은 평균 한 달에 한 개의 난자가 성숙돼 배출된다. 배란 후 약 14일 경에 월경을 하는데, 배란과 월경은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그리고 난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의해서 조절된다. 매달 난소에서 10여개의 난포가 성숙하는데, 이 중 하나만이 우성 난자로 성장해서 배출되고 나머지는 퇴화한다. 약 35년 동안 배란이 된다면 평생 5000개의 난포만이 사용되고 400~500개의 난자가 성숙돼 배란이 된다. 여성은 태어날 때 난소에 약 40만 개의 난포를 갖고 태어나므로, 폐경 이후에 남은 난포들은 퇴화해 소멸하게 된다.

꾸준한 성생활이 성호르몬 생성 증가시켜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성 능력은 남녀 간에 차이를 보인다. 육체적으로 남자의 성 능력은 20대에 최고조에 달해서 30대까지 유지되다가 40대부터 감퇴하고, 여자의 성 능력은 30대에 최고조에 달해 40대까지 유지하다가 50대에 가서 감퇴한다. 하지만 실제 성에 관한 기능은 남녀 모두 80세 이후까지도 가능하며, 성적 관심이나 호기심은 나이에 관계없이 영원히 지속된다. 성적 욕구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성기능이 급속도로 퇴화되고 건강과 수명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부부의 성생활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활기를 불어넣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남성호르몬의 감소를 지연시키고 건강한 정자를 만들고 남성 활력을 유지하려면 일상의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과음이나 흡연,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이 도움이 된다. 헐렁한 트렁크 팬티를 입어 음낭을 시원하게 하고 신선한 야채나 과일, 순수단백질인 닭 가슴살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이 꾸준한 성생활을 하는 것인데, 주기적인 섹스는 생식기관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호르몬의 생성을 증가시킨다. 유전학에서는 논란이 있지만 남성 건강에서는 용불용설이 적용이 되고 있다. 행복한 노후의 성과 젊음이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열심히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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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석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의학박사)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UCSF에서 연수했다. 이대 동대문병원 기획실장·응급실장·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비뇨기과 건강 서적 《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를 출간하는 등 비뇨기질환에 대해 국민들이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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