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석의 엔드롤로지
“내가 외출할 때는 언제나 아내에게 ‘베르가모식 자물쇠’를 채운다.”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 나오는 내용이다. 베르가모식 자물쇠는 정조대(chastity belt)로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지방에서 만들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성 억압의 상징물인 정조대는 성(性)을 소유물로 전락시킨 인류 역사의 치부였다. 정조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최초의 정조대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들을 성폭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가죽으로 만든 장치였다. 이후 여성 노예들의 노동력을 최대로 이용하기 위하여 정조대를 채워 임신하지 못하게 했다. 역사적인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속설은 중세 십자군전쟁 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장기간 전쟁에 나가는 기사들이 아내의 부정을 막기 위하여 정조대를 채웠다고 한다. 십자군 기사들이 사용한 정조대는 사라센의 하렘에서 탈취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재 유럽 박물관에 전시된 십자군 시대의 정조대는 대개 후대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한다.

정조대가 일으킨 여성 질환들
정조대는 가죽이나 강철로 만들어진 코르셋으로 한번 착용하면 자물쇠를 채워서 벗지 못했다. 요도와 항문이 있는 위치에 용변용 구멍 하나씩만 조그맣게 뚫어놓았고 주변에는 쇠못을 박아 손가락도 들어갈 수 없게 했다. 이를 착용해야 했던 여성들은 성적 욕망의 억제 외에도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였을 뿐 아니라 심각한 위생적인 문제를 겪어야 했다. 용변을 볼 때 소변이 제대로 흘러나가지 못했고 대변은 거의 정조대 안에 묻어서 처리하기도 어려웠다. 중세는 목욕을 금기시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피부병이나 욕창이나 골반염, 요로감염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요로감염은 외부에서 세균이 침입해 발생하는 감염질환이다. 원인균은 대부분이 대장균(E.coli)이고, 그밖에 포도상구균(Staphylococci), 협막간균(Klebsiella), 프로테우스균(Prosteus) 등으로 모두 대변에 섞여서 배출되는 장내세균이다. 대변에 있는 세균은 일차로 항문 주위에 머물렀다가, 회음부를 거쳐 요도를 통해 방광에 침입해 점막에 염증을 만들어 방광염을 일으킨다. 치명적인 감염질환인 급성신우신염은 방광에 있던 세균이 요관으로 들어가 상행성 경로에 의해 신장에 침입해 발생한다. 중세시대 여성들이 착용한 정조대 내부는 대변과 소변이 묻어있었고 청결하게 씻지도 못했으니 완전히 세균 덩어리였다. 질염이나 방광염은 언제나 갖고 살아야 했고 신우신염으로 진행하면 패혈증이 합병돼 사망에 이르게 됐을 것이다. 그래서 근대의 정조대 폐지운동은 여성 해방의 목적보다는 위생적인 문제가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여성의 30%는 방광염 앓아
오줌소태는 순수한 우리말로써 그 의미는 ‘요도가 쓰라리고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을 말하는데, 가장 흔한 원인이 방광염이기 때문에 보통 오줌소태를 ‘방광염’으로 지칭하고 있다. 방광염이란 몸 밖에 있는 세균이 요도를 통해 방광에 침입해 염증을 일으킨 상태, 즉 방광의 세균성 감염질환이다. 발생빈도는 여성이 남성의 8배로 높다. 주로 20~40세의 연령대에 많이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하게 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18세 이상의 여성의 10%는 최근 1년 내에 1번 이상 걸렸었고, 여성의 30%는 24세가 될 때까지 최소한 한번은 방광염으로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여성이 방광염에 잘 걸리는 이유는 생리, 불규칙한 배뇨습관, 임신, 성생활 등의 여성들만의 생활형태가 위험요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환경적 요인은 세균이 질 입구에서 집락화해서 증식하는 경향과 요도가 짧고 직선 모양이기 때문에 세균의 침입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항문 주위에 있는 세균이 요도까지 얼마나 잘 이동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대변에 있는 세균이 요도까지 이동하는 거리와 관련이 있는데 항문에서 질 입구까지 길이가 2.5cm보다 짧을 경우 방광염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성생활과도 관계가 있는데, 한 달 간 성관계 횟수가 8회 이상이거나 지난 1년간 섹스 파트너의 수가 2명 이상일 경우 위험도가 높아진다. 이는 성병이란 의미는 아니고 단지 질 주변에 서식하던 균이 성행위에 의해 요도로 밀려들어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은 질과 요도가 건조해지고 탄력성이 떨어짐으로써 꼭 성행위가 아니더라도 방광염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배뇨시 따갑고, 소변을 급하게 보면 의심해야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소변을 급하게 자주 보면서 배뇨 시 요도에 따가운 작열감을 느끼고, 하부요통이나 치골상부의 통증이 있다. 절박성요실금이나 혈뇨를 보이기도 하지만, 전신증상인 발열은 없는 것이 방광염의 특징이다. 단순방광염일 경우 3~7일간의 항생제 요법으로 쉽게 치유가 된다. 방광자극 증상을 완화하기 위하여 진통소염제나 방광진정제를 함께 투여하며, 온수 좌욕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6개월에 2회 이상, 1년에 3회 이상 재발되는 경우는 ‘재발성 방광염’으로 분류하고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 여러 차례 재발하면 방광의 기능이상을 초래하고 과민성방광으로 진행되거나 심지어는 우울증까지 유발하기도 한다. 방광염의 예방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 저용량 항생제요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건강한 생활습관과 규칙적인 배뇨습관이 더 중요하다.
방광염 예방에 도움이 되는 행동요법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수분을 넉넉하게 섭취하여 충분한 소변량이 되도록 한다.
② 소변이 마려울 때 억지로 오래 참지 않는다.
③ 배변 후 휴지를 사용할 때 앞(요도)에서 뒤(항문)방향으로 닦는다.
④ 섹스 전후에 생식기 주위를 깨끗이 한다.
⑤ 섹스를 하기 전에 소변을 봐서 방광을 비우고, 섹스를 마치고 난 후에도 바로 소변을 본다.
⑥ 요도나 질 부위에 뿌리는 방향제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⑦ 규칙적인 배변 및 배뇨 습관을 기른다.
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해 변비를 예방한다.
⓽ 하복부와 다리를 꽉 조이는 속옷이나 바지는 가능하면 입지 않는다.
⓾ 용변 후 비데 사용 시에는 앞으로 튀지 않게 주의하고, 질 세정제는 너무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방광염은 흔히 일어날 수 있고 항생제 복용으로 쉽게 치유되며, 크게 해가 없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생활에 불편함을 주고 삶의 질을 악화시키며 요로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높은 유병률과 이환율로 사회적 손실이 크며 최근에는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내성이 증가하고 있어 예방을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의학박사)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 UCSF에서 연수했다. 이대 동대문병원 기획실장·응급실장·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비뇨기과 건강 서적 《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를 출간하는 등 비뇨기질환에 대해 국민들이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