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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부탄 바로보기
글.사진 최진우(티앤씨 여행사), 셔터스톡
입력 2017/08/26 08:00
힐링 스토리
“부탄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가요?” 부탄 여행 가이드를 하며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지구의 마지막 샹그릴라, 왕이 자발적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유일한 나라 등 부탄을 수식하는 문구는 다양하다. 행복의 비밀에 혹해 부탄을 찾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부탄에 방문할 때마다 이곳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고 할 만한 특징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가끔 그들에게 직접 당신은 행복하냐고 묻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희미한 미소뿐이었다. 지난 7월, 다시 한 번 부탄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이번에는 행복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을까.
행복의 나라로
부탄은 입국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나라다. 부탄 현지의 여행사를 통해 여행비를 전액 지급해야 초청 비자를 발급해준다. 부탄 파로 국제공항까지 운항하는 항공편도 많지 않아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항공 좌석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차량을 이용해 인도 푸엔트숄링을 거쳐 파로로 입국하는 경로도 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부탄 항공권이 너무 비싸서 비용 절감을 위한 대안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부탄을 여행하려면 성수기에는 하루 250달러, 비성수기에는 200달러의 체류 비용을 현지 여행사를 통해 미리 지급해야 한다. 이 비용에는 숙식, 교통, 가이드와 관광세가 포함되어 있다. 항공을 이용해 입국하는 경우, 민영 항공사 부탄 에어 아니면 국영 항공사 드룩 에어 중 하나를 이용해야 한다. 성수기 항공 요금은 방콕에서 출발할 경우 약 800달러 정도 한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주변국인 인도, 태국, 라오스, 방글라데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부탄을 방문하려고 계획을 짜던 사람들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돈을 내고 다녀올 만한 곳인가, 정말로?’
북한? 부탄!
7월 22일, 부탄으로 향하는 날이 다가왔다. 주변 분들께 인사차 출국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 부탄에 다녀옵니다.” “전쟁 나게 생겼구만 북한을 왜 가노.” “전쟁 안 나요. 북한 말고 부탄이요.” “모르겠다. 살아 돌아온내이.” 아직 부탄을 모르는 분이 많다. 아무래도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정보가 부족한 걸 수도 있다. 부탄에 대한 책도 여행기를 제외하면 아직 국내에선 단 2권뿐이다. 그 중 ‘부탄 행복의 비밀’ 박진도 저자가 쓴 책은 여러모로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았다. 내가 얻은 정보의 상당수가 이 책을 근거로 한다.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 권해드리는 책이다.
파로행 비행기를 타고 인도 영공을 지나 부탄에 들어서자 어느 순간 푸른 산과 숲이 우거진 부탄의 산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집 안에서 손 흔드는 사람이 우리와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비행기의 고도가 낮았다. 심지어 산 정상을 비행기 창문으로 내다보면 우리보다 위쪽에 있었다. 부탄 파로 국제공항은 착륙하기 위해 이런 위험한 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파로행 비행기를 운전하는 파일럿은 따로 훈련이 필요하고, 이 구간을 운전할 수 있는 파일럿도 수가 적다고 한다. 안 그래도 오기 힘든 부탄, 더 먼 동네처럼 느껴졌다.
해발 2,195m에 위치한 파로 국제공항에 내리자 거대한 포스터 속에 5대 왕과 왕비가 이방인들을 따뜻한 미소로 반기고 있었다. 부탄은 어느 곳을 가던 왕과 왕비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건 국민이 자발적으로 포스터나 명찰, 사진을 사서 집이나 가게에 장식하기 때문인데, 국민에게 사랑받는 왕이라는 설명해 드리자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북한 김일성과 똑같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자발적인 건 같지만, 왕의 자질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세뇌해서 얻은 강제적 사랑과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얻은 사랑은 비교가 불가하다. 한 예로 부탄의 젊은이들은 유학을 가서 선진문물을 배우면 부탄으로 돌아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많다.
파로를 출발해 부탄의 수도 팀부에 가까워질수록 건물의 수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공기가 탁해졌다. 개발 도상국의 흔한 매연이었다. 청정의 나라 부탄이 아니었던가. 동행한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여기가 정말 행복의 나라 부탄이 맞나? 라는 표정이 여실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재작년 방문했을 때보다 매연이 더 심각해졌다. 팀부 시내의 주차장은 차로 넘쳐났고, 신호등이 없는 시내 도로는 수신호만으로는 통제가 안 되는 듯 보였다.
부탄을 다녀온 많은 사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는 수도라고 하던데(혹자는 다른 나라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 유일함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팀부 시내를 다니며 마주친 젊은이들은 이제 그들만의 전통복을 고수하지 않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일할 때 그리고 공공장소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때만 전통복 ‘고와 키라’를 입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외국 문화를 접할 기회는 인터넷과 TV가 전부였다. 하지만 핸드폰이 보급되고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돼버렸다. 그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우들의 머리와 옷차림을 따라 한다. 클럽에서는 유행하는 팝이나 힙합 노래가 흘러나온다. 시내에는 이미 피자 전문점, 카페, 일식 우동집, 한식당 등이 생겼고, 노래방, 당구장 같은 유흥 시설도 들어섰다. 부탄다움을 기대하며 동행한 사람들은 급변하는 과정에 있는 팀부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우선 나부터도 팀부의 급변한 모습에 적응이 되질 않았다.
여름의 수도, 푸나카
부탄에서의 트레킹은 난도도 높고, 비용도 많이 든다. 우리가 흔히 포터로 부르는 짐꾼의 역할은 소나 말 같은 가축이 대신해야 한다. 사람이 짐을 짊어지는 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인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두 명이 트레킹을 하더라도 팀의 규모가 꽤 커진다. 우선 산행 가이드가 있어야 하고, 음식을 전담하는 사람, 텐트 설치하는 사람, 그리고 짐을 나르는 가축을 돌보는 사람이 동행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일반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지리적으로 부탄 북부 지역은 해발 7,000m급 봉우리가 즐비한 산악지대이다. 유명한 코스로는 드룩 패스, 스노우 맨 트레킹 등이 있으나 기간이 길고 어려우며, 갈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 포터가 금지된 이유를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외화를 가져오는 여행자보다 밭에서 일하는 국민이 더 소중하다며 금지했다고 한다.
부탄에서도 쌀을 주식으로 먹는데 붉은색이 감도는 안남미가 부탄에서 생산된다. 푸나카는 기온이 높아 이모작을 한다. 해발 1,200m인 푸나카의 고도를 봤을 때는 그렇게 더울 것 같지 않았으나 마침 우리가 도착하는 날에는 기온이 40도에 육박했다. 마을 논밭을 가로질러 다음 방문지까지 걷는 동안, 태양은 우기라는 시기가 무색할 만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구름이 죄다 히말라야에서 모임이라도 하는지 이 동네에는 구름이 한 점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소들도 그늘에 숨어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논일을 하는 분이 계셨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쟁기질에 몰두 중인 남자의 표정에선 불평도 불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부탄의 농촌 부흥 정책에 관해 설명해줬다. 부탄의 행복 정책은 이미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위하는 게 아니고 못 살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즉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게 나라에서 시행하는 행복 정책의 핵심인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나 시골 마을은 나라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에게는 땅을 빌려주고, 마을은 이주할 기회를 준다. 이주 비용과 정착 비용 등을 모두 나라에서 지원해준다. 우리나라도 빈민 구제책이 있었다. 백성이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겪으면 지배층은 응당 이들을 구제해야 할 것으로 여겨왔다.
전설과 현실의 교착점에서
치미 라캉(Chimi Lhakhang)은 부탄에서 제일 사랑받는 고승 드룩파 쿤리가 검은개 형상을 한 악마를 제압한 후 그 악마를 무찌른 성스러운 무기를 보관한 장소이다. 성스러운 무기가 남근 모양이라 그런지 근처 마을에서는 남근을 상징하는 조각상이나 그림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치미 라캉은 성스러운 무기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커다란 남근 조각상을 들고 사원을 세 바퀴 돌면 아이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가이드가 해주었는데, 그 효과를 직접 본 세계 곳곳의 많은 이들이 증거로 자신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보내온다고 했다. 요새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성공담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전설과 현실의 교착점에 서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손녀, 손자를 보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특별한 이벤트를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우리가 머무르는 숙소는 중심가에서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한 ‘Zhingkham resort(천국 리조트)’였다. 올라가다 운전사가 자칫 실수라도 하면 바로 천국으로 갈 수도 있을 그런 위치에 지어져서 이름이 천국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숙소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이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들의 순진무구한 손짓에 우리 일행은 모두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꼬마 아이는 우리 차가 지나가자 구십 도로 허리를 꺾으며 배꼽 인사를 했다. 그들의 손짓, 표정,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우리를 치유하고 있었다.
행복을 찾아서
그들은 격동기에 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을 통해 해외 유명 팝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외우고 다니며 친구들과 만나 클럽, 당구장을 드나든다. 저녁에는 모여 술도 마시고 안 보이는 장소에서는 담배를 거리낌 없이 피운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탄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는 많이 거리가 있다. 사회적인 문제로 청년 실업률이 대두되고 있으며 마약, 폭력, 자살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발전해도 그 와중에 그 속도를 제어하며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분명히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치며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 비록 몇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천천히 균형을 맞춰가며 약자들을 배려하며 성장 중인 그들은 언제든 그런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어 보였다. 그들에게 물질의 위협은 가혹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더 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