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알수록 재미있는 피부의 비밀
신규옥(을지대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 사진 셔터스톡
입력 2017/05/31 09:00
대학의 지역사회 봉사 일환으로 50대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2년 정도 피부관리법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피부에 대한 기초 이론을 간단히 정리하고 클렌징하는 법이며 주름완화 마사지법, 간단한 메이크업까지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5주간 진행했다. 자신이 직접 신청하거나, 며느리나 손녀가 신청해준 경우도 있었지만 사실 그 과정이 더 인기 있던 이유는 강의 한 타임이 끝나면 학생들이 손이나 얼굴 마사지를 해준다는 달콤한 조건 때문이기도 했다.
어르신들에게 본격적인 피부생리학 강의를 하기는 어려울 듯해서 강의 초반에 무엇을 주제로,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초반에는 쉽지만 꼭 알아야 하는 몇 가지 필수 질문을 선정했다. 강의 초반에는 학생들도 대답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달랐다. 틀릴까봐 염려하고 친구들 눈치 보느라 정답을 알아도 대답 못 하는 학생들과 달리, 얼마나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답변을 잘 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어머님, 피부가 몇 개의 층으로 돼있을까요?”
“2개?”
“아냐, 그럼 질문이 돼? 20개!”
“에구, 너무 많다. 그냥 10개로 해.”
피부는 표피, 진피, 피하지방 이렇게 3개의 층으로 나뉘어져서 각각 맡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면, “틀렸네”, “맞았네”,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네”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데 그러한 질문들 가운데 유독 답이 하나로 모아지는 질문이 있었다.
“그럼 피부는 물을 잘 먹는 구조일까요, 아닐까요?”
“그거야 당연히 물을 먹지~”
피부가 수분을 지키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오답을 외치는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원칙적으로 피부는 수분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로 돼 있다. 외부의 수분을 흡수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만약 피부가 물을 잘 흡수하는 구조로 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비 오는 날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온몸이 젖었다면 피부가 물을 먹어서 몸이 전체적으로 꽤나 커져야 할 것이고, 반대로 가뭄이 계속된다면 좀 말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인체 내부의 체액 등 수분을 손실하지 않도록 막아내는 제일선의 경비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도 피부다. 특히 각질층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 28주 이전에 세상에 나온 조산아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저체온증에 시달리거나 수분과 전해질의 불균형, 열 손실에 따른 칼로리의 소모, 피부 감염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이는 미성숙하고 불완전하게 형성된 피부 조직 때문이다. 반면 정상적으로 출생한 아기의 경우 출산 직전에 각질층이 확실히 구성돼 성숙한 피부 구조
를 갖고 태어난다.
피부는 날 때부터 외부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인체 보호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 비밀은 최외곽층에 위치한 각질층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한때 각질층은 그저 노화된 세포가 켜켜이 쌓여서 물을 막아주는 역할 외에 별다른 용도가 없다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거듭된 연구를 통해 각질층이 매우 안정화된 구조로 형성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를 ‘벽돌과 회반죽(brick and mortar) 모델’로 설명한다. 층층이 열을 맞추어 벽돌을 잘 쌓아놓고 그 사이사이에 회반죽으로 견고한 장벽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벽돌은 케라틴 단백질로 이루어진 각질세포, 회반죽은 다양한 지질 복합체인 각질세포간 지질에 해당한다. 단일층이 아닌 중첩구조를 이루어서 외부의 이물질이나 세균, 수분이 들어오기 어려운 보호 기능을 완성하는 것이다. 요즘 세라마이드를 주성분으로 하는 다양한 화장품이 출시되고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라마이드가 바로 피부 장벽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각질세포 간 지질의 주성분이다.
피부장벽, 세균은 막고 필요 물질 흡수해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견고한 장벽이라고 하면 마치 콘크리트로 다져진 벽처럼 이동과 출입이 모두 불가능해야 할 것 같은데, 살아있는 세포인 피부는 그것을 참으로 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피부장벽은 피부 보호를 위해서 세균 등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필요한 물질은 선택적으로 흡수시키는 기능도 하고 있다. 피부를 통한 흡수는 모공이나 세포막을 통해 이루어진다. 만약 이런 기능이 없었다면 우리가 비싼 돈을 들여서 화장품을 사고 바르고 관리하는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됐을 것이다. 화장품은 이러한 피부의 구조와 특성을 잘 고려해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각질 장벽의 구조에서 세포 사이사이에 지질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해 영양크림은 피부 흡수가 용이한 유분 베이스를 기본으로 만든다. 한편 토너는 피부 속이 아닌 표면에 적절한 pH를 맞춰주고 세안 후에 남아있는 노폐물을 제거함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수분 베이스를 기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피부에 탄력과 영양을 주는 천연 콜라겐팩을 만든다고 해서 본 기억이 있다. 고등어를 갈아 팩을 만들어 얼굴에 얹어놓는 장면이 나왔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콜라겐 등 단백질은 분자량이 크기 때문에 피부를 통한 흡수가 이뤄지지 않는다. 차라리 고등어를 구워 먹는 편이 피부 영양에 도움이 된다. 단백질 같은 분자량이 큰 물질을 피부에 흡수시켜 효능을 보고 싶을 때는 나노공법(10-9) 등 고도의 화장품 기술이 동반돼야만 한다.
피부생리학이나 해부학을 공부하다보면 정말 인체의 신비에 놀랄 때가 많다. 자연의 모든 생존 원리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사과 껍질을 깎아내면 이내 수분이 증발되고 산화되어 갈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냥 버려지고 마는 사과 껍질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체에서도 평균 두께 1.2mm밖에 안 되는 피부는 매우 효용성이 높은 조직이다. 그것을 잘 관리하려는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신규옥 을지대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한국미용학회 이사이며, 미용산업문화학회 부회장이다. 원주 MBC 편성제작국 아나운서를 지낸 적이 있고, 《New 피부과학》, 《미용인을 위한 New 해부생리학》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