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맛집
돌로미테, 그곳엔 걸어야 할 이유가 있다
글 김종우 교수(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 /사진 헬스조선 DB
입력 2017/05/24 09:32
알프스 돌로미테 트레킹
눈을 들면 어디서나 거대한 바위산을 볼 수 있고, 푸른 초원 위로는 야생화가 한들한들 춤을 추는 곳. 이탈리아 북서쪽 알프스 자락인 돌로미테는 ‘천상의 트레일’로 불린다. 마음건강에 조예가 깊은 김종우 교수는 이곳에서 손에 꼽는 ‘인생길’을 만났다고 한다. 걷기 여행을 사랑한다면 올여름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그곳으로 떠나자.
천상의 풍경과 새소리로 맞이하는 아침
지난해 7월 2일, 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돌로미테로 향하는 버스 안에 있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동 시간, 헬스조선 비타투어 프로그램인 돌로미테 걸어서 여행하기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이번 여행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돌로미테란 곳의 매력 때문에 온 여자, 암을 극복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걷기 위해 찾은 남자, 70세를 훌쩍 넘기고서 나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짐을 꾸린 노신사, 가족 간의 관계를 위해 함께 온 모녀와 부부…. 다양한 목적의 사람이 있었다.
돌로미테 트레킹의 베이스캠프는 ‘코르티나 담페초’다. 1956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현재 이탈리아 영토이기는 하나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 땅이었다. 주민들은 라틴어를 사용했다고 해서인지 이탈리아라기보다는 왠지 알프스의 작은 마을 같았다. 코르티나 담페초에 도착하니 비가 흩뿌렸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이른 아침보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 빗소리 대신 새소리가 들려왔다. 간밤에 내린 비가 그쳤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는 폭포 소리처럼 우렁찼고, 새소리는 이런 환상적인 풍경을 놔두고 아직도 자고 있냐고 꾸짖는 듯했다.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저 풍경 속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산중에서 비가 그친 후 맞는 새벽의 신선함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전날 일행들과 아침 산책을 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먼저 밖으로 나갔다.
약속한 시간에 일행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나처럼 아침잠을 도저히 잘 수 없는 사람이리라. 새소리, 냇물소리가 잠을 깨우고, 새벽의 신선함은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새벽 산책은 많은 것을 준다. 다른 어떤 것보다 오로지 걷기에 집중할 수 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자신의 리듬에 맞춰 걷기만 하면 된다. 새소리나 바람소리 같은 자연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감흥을 느끼기 위해 대화마저 조심스레 나누었다. 잠시 눈을 감고 즐기는 명상도 빠질 수 없었다.
푸른 초원의 피아자 산장 트레킹
돌로미테 지역의 트레킹 코스는 무궁무진하다. 코스별로 반나절에 거리마다 있는 산장에서 식사와 숙박을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무거운 배낭 대신 가벼운 봇짐 하나만 메고 걸으면 된다. 지나가다 보니 놀랄 만큼 거대한 암석이 무리 지은 곳이 있었다. 영화 <클리프행어>의 촬영장소라고 하니 그 말이 실감났다. 먼발치에서 암벽등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경외감이 느껴졌다.
우리 일행의 첫 트레킹 코스는 피아자 산장을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오를 때는 계곡을 타고 내려올 때는 버스로 내려오는 코스로 이른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코스였다. 천상으로 가기 위해 개울과 야생화를 넘고, 폭포와 수직으로 솟은 바위 곁을 아슬아슬 지났다. 마지막 돌계단은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힘들었다.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떼니 피아자 산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광활한 알프스 초원 한가운데 세워진 피아자 산장에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산장 앞 야생화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고생의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돌로미테의 심장을 향하는 길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어제의 트레킹은 시작에 불과했다. 드디어 오늘 ‘돌로미테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를 향해 가는 날이다. 돌로미테의 상징과 같은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는 커다란 바위 3개가 모여 있는 군상이다. 가장 작은 봉우리는 치마 피콜로(2856m), 가장 큰 봉우리는 ‘크다’는 뜻의 치마 그란데(3003m), 동쪽에 있는 봉우리는 ‘동쪽’을 뜻하는 치마 오베스트(2972m)라는 이름을 지녔다. 늠름한 모습이 남성적이면서도 강인하다.
이곳을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등산 혹은 산책. 자신의 체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트레킹에 앞서 등산코스를 걷다가 힘에 부칠까 걱정도 됐고, 산책코스는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등산 개념의 트레킹 코스는 산 밑에서부터 바로 걷기 시작한다. 해발 1600m의 트레치메 호텔에서부터 반나절 동안 계곡을 걸은 후 2400m에 위치한 로카텔리 산장까지 치고 올라가는 8km의 코스다. 어제 코스와 유사하지만, 2배 정도 긴 코스이고, 마지막 치고 올라가는 코스가 급경사다. 반면 산책코스는 2300m의 오론조 산장까지 버스로 올라간 이후 로카텔리 산장까지 4km의 길이다. 이 코스는 구름 위를 걷는 능선코스로 편안하게 자연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나는 산책코스를 택했다. 조금 여유 있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산책하면서 명상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싶었다.
오론조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끼더니, 정작 산장에 올라오니 온 세상이 구름에 완전히 덮여버려 한치 앞도 안 보였다. 가이드는 이곳부터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미주리나 호수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환상적인 풍경을 하나도 볼 수 없다니 가이드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산장에서 따뜻한 초코음료를 마시며 무엇을 보러온 것이 아니라 무엇을 느끼러 왔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로카텔리 산장이었다.
로카텔리 산장으로 가는 길은 사륜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잘 정비돼 있었다. 로카텔리 산장에서 하룻밤을 머물 계획이었지만, 짐은 먼저 차로 보내 가벼운 배낭만 메고 걸을 수 있었다. 안개 낀 산에 가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경치는 감칠맛이 난다. 보일 듯 말 듯한 풍경은 상상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먼발치의 큰 바위 군상도, 저 밑에 펼쳐져 있는 영롱한 호수도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이렇게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사이 중간 지점의 산장에 다다랐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미리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과일, 그리고 산장에서 얻을 수 있는 럼주가 들어 있는 허브티로 산상의 정찬을 즐겼다. 안개 속에서 희끗희끗 보이는 산과 계곡, 그 가운데 또렷하게 보이는 멋진 산장, 그리고 깍깍 울고 있는 까마귀와 함께하는 식사는 그럴듯했다.
돌로미테에 울려 퍼진 아리아
낭만 깃든 점심을 마치고 또 안개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우리는 너른 초원을 만났다. 신기하게도 그곳에서는 계곡 물소리가 창창하게 들려왔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심정으로 털썩 주저앉아 명상을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자연에서 주는 자극을 온몸으로 느꼈다. 안개 때문에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청각은 더욱 또렷해졌다. 먼발치의 계곡 물 소리는 점점 다가와 폭포수가 되었다. 휙휙 바람소리도 귓전을 때렸다. 안개 향기도 맡을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의 숨소리까지 느끼며 자연과 하나됨을 경험했다. 10여 분을 보내고 눈을 뜨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혀 있었다. 먼발치의 계곡은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명상을 마치고 길을 재촉했다. 안개가 걷히면서 커다란 바위가 드러났다. 살짝살짝 보이는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났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놀라고 감탄하면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로카텔리 산장이 보였다. 놀랍게도 계곡을 거쳐 올라오는 트레킹코스 팀도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로카텔리 산장에서 만났다.
로카텔리 산장은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자타공인 돌로미테 최고 명소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뿐 아니라, 자그마한 산중 호수 2개와 트레치메를 호위하듯 선 바위 무리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360도로 탁 트인 전망은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어줬다. 붉은 지붕의 산장과 산중의 작은 성당, 그리고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테라스 등이 한데 모인 모습은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닌 듯했다.
일행은 산장에 짐을 풀고 식사를 기다리며 아직 구름에 가려진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를 보기 위해 산중 호수를 가볍게 걸었다. 호수에 비친 모습은 방향을 바꿀 때마다 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다.
산책을 마치고 산장 앞 초원에 모였다. 석양과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의 모습을 기다렸다. 그 순간 일행 중 누군가가 이탈리아 가곡 한 곡조를 불렀다. 천상의 아리아! 우리 곁으로 각국의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같이 호흡하며 자연을 느꼈다. 노래는 흘러흘러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까지 닿았을 것이다. ‘건강하기 위해 걷는 게 아니라 멋진 곳을 걷기 위해 건강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TIP 헬스조선 ‘이탈리아 돌로미테 알프스 트레킹’ 떠나볼까?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6월 30일~7월 8일(7박9일) ‘이탈리아 돌로미테 알프스 트레킹’을 진행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대표적인 휴양도시 ‘코르티나 담페초’와 동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마을 ‘오르티세이’를 중심으로 돌로미테 산군(山群)' 중에서도 정수로 손꼽히는 구간만 골라 걷는다. 알프스에서 가장 넓은 초원 지대를 자랑하는 알페 디 시우시와 세체다 전망대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산책하듯 걸으며 푸른 초원과 선홍빛 암릉의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감상한다. 거대한 세 봉우리(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를 마주하는 로카텔리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와 별 무리가 평생 잊지 못할 알프스의 낭만을 선사한다.
이탈리아 3대 와인 산지 중 하나인 베로나 와이너리 방문과 가르다 호수에 위치한 휴양마을 시르미오네 1박 포함.
1인 참가비 550만원(유류할증료·가이드 경비 포함).
문의 헬스조선 비타투어 사이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