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약을 함께 복용해도 괜찮을까? 자주 묻는 질문이지만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약끼리 충돌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함께 복용해도 될지 여부가 달라진다. 약의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약을 함께 복용하면 효과 또는 부작용이 더 강해지는 경우와, 반대로 효과가 더 약해지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약의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제산제가 있다.

제산제는 상호작용 문제를 일으키는 약의 대표 격이다. 어떤 때는 둘이 사이가 너무 좋아서 문제다. 제산제를 항생제(테트라사이클린, 플루오로퀴놀론)와 함께 복용할 때가 그렇다. 제산제와 사이좋게 결합한 항생제는 우리 몸속 세균을 잡을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장을 타고 쭉 빠져나가 버린다. 제산제가 다른 약들이 일할 환경을 바꿔놓아서 탈이 날 때도 있다.


장에서 녹도록 설계된 변비약과 제산제를 함께 복용하면 장에서 녹아야 할 약이 위에서 녹아서 위장 자극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위산이 충분해서 산성 환경일 때 흡수되는 약(항진균제, 철분제)은 제산제로 인하여 위산이 중화되면 흡수가 감소할 수도 있다. 몸에 들어와서 일하고 싶은데, 제산제로 인해 길이 막히는 셈이다.
상호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둘을 떨어뜨리는 게 최선이다. 다른 약을 먼저 먹고, 2~4시간이 지나 제산제를 복용하거나, 제산제를 먼저 썼다면 3~4시간이 지나서 다른 약을 복용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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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이 영화에서 알려준 상식

겨우 몸안에 들어와서 일 좀 하려고 했더니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약이 훼방하는 때도 있다. 소염진통제가 고혈압치료제의 효과를 떨어뜨릴 때가 그런 경우다. 고혈압치료제가 혈압을 떨어뜨리려고 애쓰는 와중에 소염진통제가 신장에서 염분을 걸러내는 것을 방해하면 혈압 조절이 어려워진다. 가끔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으나 지속적으로 복용한다면 고혈압치료제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상담이 필요하다.

코감기약처럼 혈관을 수축시키는 약도 혈압을 높여서 고혈압치료제의 직무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혈당을 낮추려는 당뇨치료제의 노력에 반하여 혈당을 높여버리는 약도 있다. 스테로이드, 경구 피임약, 이뇨제, 갑상선호르몬제는 모두 혈당을 높일 수 있어서, 혈당 관리를 어렵게 한다. 잘 조절되고 있던 혈당에 갑자기 문제가 생길 경우, 새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비슷한 일을 하는 약들이 함께 만나서 문제가 될 때도 있다. 힘이 한쪽으로 쏠려버리면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협심증에 쓰는 니트로글리세린과 발기부전 치료약 간의 상호작용이 대표적이다. 명배우 잭 니콜슨이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오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라는 2003년 영화 속 한 장면을 보자. 꽃중년의 부유한 독신남 해리(잭 니콜슨)는 미모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가 갑작스런 흉통에 응급실로 실려간다.


의사(키아누 리브스)는 혈관확장제 니트로글리세린을 투여하기 전에 혹시라도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지 질문하는데, 대답하려는 찰나 애인이 눈앞에 보인다. 주인공 해리는 어떻게든 자존심을 지켜 보려고 약을 안 먹었다고 하는데, 의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한 사람이 니트로글리세린을 주사로 맞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약물 상호작용 이야기에 깜짝 놀란 잭 니콜슨은 얼른니트로글리세린 링거 주삿바늘을 뽑고 마치 발작이 난 것처럼 연기한다. 실제로 발기부전치료제 복용 중일때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약을 복용 중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둘 다 혈관 확장약이라서 혈압을 심하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면제와 감기약 함께 먹지 않아야

두 약이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약인 경우도 힘이 쏠리는 부작용이 생긴다. 알레르기 증상완화에 사용하는 항히스타민제는 멀미약과 함께 먹을때 주의해야 한다. 실은 멀미약도 같은 항히스타민제이기 때문이다. 멀미약과 알레르기약을 함께 복용하면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이 더 심해져서 여러 시간 동안 나른하고 졸린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수면제를 복용하는 동안에 감기약,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 다른 항히스타민제를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 것이나, 술과 약을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수면제나 신경안정제처럼 진정 작용이 있는 약들은 특히 술마실 때 피해야 한다. 알코올의 진정작용이 이들 약의 진정 효과에 더해져서 과도하게 졸리고 정신 기능, 운동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술과 약을 함께 하면, 다음날 숙취가 더 심해지거나 오래갈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이라고 부르는 계열의 신경안정제는 술을 마시면 체내로 흡수가 더 잘 되어서 이로 인해 부작용이 더 심해지기도 하니, 특히 술과 병용을 피해야 한다.


당뇨약과 다른 약을 복용할 때 주의가 필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뇨약이 인슐린 분비나 작용을 촉진시켜 혈당을 떨어뜨리는데 다른 약도 덩달아 혈당을 낮추면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당뇨 환자는 알코올, 항생제, 혈압약을 복용할 때주의가 필요하다.




약이 자기 일에 충실하게 하려면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때가 있고, 병용하면 위험한 경우도 있다. 서로 다른 약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함께 복용해도 될지 여부가 달라진다. 우리 몸안에 좋은 일을 하라고 들여 보낸 약들이 직분을 잊고 끼리끼리 뭉쳐서 물의를 빚기도 하며, 반목과 충돌을 일으킬 때도 있고, 쏠림현상으로 인해 문제가 불거질 때도 있다.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약도 그렇다. 여러 약이 협력해서 더 좋은 치료 효과를 나타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약들이 각각 제 할 일을 할 때가 최선이다.


약끼리 너무 친하게 달라붙어도 곤란하고, 서로 반대 작용이나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을 한 번에 여럿 복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글에서 다룬 것들 외에도 다양한 약의 상호작용이 있다. 어떤 약은 다른 약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해서 부작용을 늘리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약은 다른 약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높여서 약효를 떨어 뜨리기도 한다. 이 모든 상호작용을 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자신이 복용 중인 모든 약들의 리스트를 들고 약국에 가서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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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정재훈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