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화장은 왜 지우는 것이 더 중요할까
글 신규옥(을지대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 사진 셔터스톡
입력 2017/02/09 09:00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
한때 화장품 광고 카피로 사용돼 지금까지도 귀에 익은 문구다. 실제로 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많을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한 적이 있다. 한 화장품 회사에서 우리나라 20~34세 여성 540명에게 화장 지우는 것에 대해 조사했더니, 10명 중 6명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화장을 지우지 않은 채 잠이 들고, 그중 7.2%는 무려 일주일에 여섯 번 이상 화장한 채로 잔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설문 응답자 500여 명이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조금 충격적이었다.
화장은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곱게 단장한 얼굴로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투 같은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침에 기껏 공들여 한 화장을 지우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기도 하다.
피부는 제각각인데, 클렌징 방법은 하나뿐?
하지만 피부 건강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면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아나운서로 일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매일 아침 TV 뉴스를 진행하기 위해 꼬박 한 시간이 넘도록 화장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부가 가장 좋을 20대 꽃다운 나이에 뭘 그리 손질할 게 많았나 싶지만, 그때는 브라운관에 가장 예쁘게 나오는 얼굴 색조를 맞추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두드리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데 할애했다. 피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하등 쓸모없는 메이크업 제품들을 덕지덕지 얼굴에 붙이고 있자니 참으로 무겁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을 게다.
‘클렌징(cleansing)’, 사전에는 ‘얼굴의 화장을 깨끗이 닦아 내는 일이나 그렇게 하는 데에 사용하는 화장품’을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피부 미용을 가르치는 내게는 피부 관리의 첫 단계로 인식되는 매우 중요한 용어이다. 사실 앞서 말한 저 유명한 카피는 클렌징 화장품의 성장과 괘를 같이 한다. 이전에는 ‘어떻게 하면 입술이나 눈을 예쁘게 보이게 할까’ 하는 색조 위주의 화장이 메인이었다면, 유행이 자신의 생김새를 드러내는 내추럴 화장으로 바뀌면서 피부 자체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그런 붐을 타고 상품화된 것이 바로 클렌징 화장품이다. 이렇게 산업화와 광고 사이에서 피부 관리 정보를 받다 보니 지금도 “연예인 누구누구가 이런 방법으로 화장을 지운다더라”는 말이 나오면 관련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연예인이 한다는 세안법에는 해당 연예인의 이름까지 붙여 유행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의 생김새도 다 제각각인데, 어떻게 각기 타고난 피부 성질이 다르고 화장법까지 다 다른 우리가 누구와 똑같은 클렌징 방법을 쓰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된 클렌징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졌다.
피지막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것이 ‘좋은 클렌징’
제대로 된 클렌징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피부 타입을 알아야 한다. 피부 타입은 일반적으로 지성(脂性)·중성(中性)·건성(乾性)·복합성(複合性) 피부로 나뉜다. 피부 타입을 알 수 있는 가장 수월한 방법은 세안하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두 시간 정도 지난 뒤에 자신의 얼굴 땅김 정도를 체크하면 된다. 이렇게 지성이니 건성이니 하는 명칭 속에 피부 관리의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피부가 기름지거나 건조하거나 하는 식의 특성으로 분류하도록 만드는 기준, ‘피지’에 주목하면 된다.
얼굴을 번들거리게 만드는 노폐물 정도로만 인식되는 피지는 사실 피부 방어를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적절한 수소이온 농도(pH)를 유지하도록 해서 미생물 침입을 막아주고, 마찰 등의 물리적 자극에 유연성을 갖게 하며, 그 속에 들어 있는 ‘우로칸산’이라는 물질은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천연의 자외선차단제 역할까지 한다. 그러니 피지를 적절하게 제거하면서도 피지막의 보호 작용을 완전히 깨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클렌징의 핵심이다.
피지가 과다하게 분비된 지성피부는 피지를 없애기 위해 유분이 적은 워터나 젤 타입의 클렌저를 써야 한다. 반면 피지 분비가 너무 적은 건성 피부는 유분이 많은 크림이나 로션 타입의 클렌저를 사용하고, 가볍고 부드럽게 문질러 닦아내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도 깔끔히 씻긴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미지근한 물을 얼굴에 튕겨주듯 끼얹으면서 물마사지를 하면 된다.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세안해야만 개운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로 이 ‘뽀드득 세안법’이 피부 보호막인 피지막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설거지를 생각해보자.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설거지할 때 그릇의 기름기나 오염은 모두 제거되지만 내 손은 금방 거칠어지는 것을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맨손으로 설거지를 많이 하면 할수록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처럼 피지를 모두 제거한 얼굴 상태는 방어막이 모두 걷힌 무방비 상태로 볼 수 있다. 외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을 진하게, 오랜 시간 하고 있다가 지우는 연예인들의 특별한 상황에 맞춰진 세안법은 오히려 우리에게는 피해야 할 세안법이 될 수 있다.
내 피부의 소리에 귀 귀울이자
또 하나 유의할 점은 피부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다. 누가 모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작 피부 관리 시에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젊을 때 피지가 넘쳐나서 고생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 클렌징의 무게감을 줄여야 한다. 만 25세를 정점으로 피부 노화가 시작되는데 피지 분비도 조금씩 줄어들다가 점차 노인성 건조피부로 바뀐다. 그 단계에 접어들면 충분한 보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피부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몸 가장 바깥을 담당하고 있는 피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외부 환경에 잘 대처하고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피부 관리를 계획하고 있다면 병원 문을 두드리기 전에 내 피부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지금껏 잘못 알고 있거나 알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클렌징 습관 하나만 바꿔도 올해 피부건강 지수를 최소 1년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신규옥 을지대학교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한국미용학회 이사이며, 미용산업문화학회 부회장이다. 원주MBC 편성제작국 아나운서를 지낸 적이 있고, 《New 피부과학》, 《미용인을 위한 New 해부생리학》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